그렇게 살지 않겠다

[페미니스트의 탄생 01.] 쌓여온 다짐들

by 틂씨




-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 아까울 것 같은데..

- 아니요, 괜찮으니까 잘라주세요.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는 아깝지 않겠느냐고 여러 번 물었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두발 자유화가 실행되기 전에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에 중학생은 무조건 머리를 귀 밑 3cm로 잘라야 했다. 굵고 숱 많은 곱슬머리를 가진 나는, 단발머리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비슷한 머릿결을 가진 엄마의 어린 시절 단발머리 사진이 무척 촌스럽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몽실이 머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삼각 김밥? 곱슬머리의 단발은 어떻게 해도 세련되지 않다. 어떤 모습이 될지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머리를 자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신 길었던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다. 사내아이들 머리처럼. 목 뒤에서 지-잉 하고 낮게 울리는 클리퍼의 진동 소리는 낯설었지만, 설렜다.


나름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적어도, 단발머리를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남동생의 커다란 운동화와 티셔츠, 힙합 바지(흘러내릴 정도로 큰 사이즈가 유행이었다)를 빌려 입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도 덩치도 작은 편이다 보니 초등학교 남학생처럼 보였다. 4 정거장의 거리지만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하굣길 버스에서 친구들은 '남자들은 긴 생머리 여자를 좋아한다는데, 너 어떡하려고 그래?' 하고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걔네가 뭘 좋아하던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건데?'라는 식으로 답했다. 커서 생각이 바뀔지는 몰랐어도, 그 순간의 답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길을 걸을 때면, 가끔 사람들이 나의 성별을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곤 했다. 종종 화장실에서 나를 흘끔흘끔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운동을 하느냐, 묻기도 했다. 짧은 머리의 여학생은 여러 가지 의미로 눈길을 많이 받았다.






(전) 남자 친구들과는 종종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내가 원한 것은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과 신뢰였는데, 돌아오는 것은 주로 인형처럼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었다. 내켜서 잘해주는 마음에는 위계가 있다. 바로 '당사자가 원하는 동안' 한정이라는 것. 그런 마음은 수틀리면 쉽게 사라진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애정의 본질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누군가의 예뻐해 주는 마음'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관계는 오히려 한껏 사랑받는 일 보다 요원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는, 남자의 성공이나 유학을 위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고 '사랑'이라는 이름 옆에 남는 여자 캐릭터가 많았다. 이상한 부분이라면, 반대로 여자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남자 캐릭터는 본 적이 없다는 것. 어느 분야의 유명인사를 인터뷰하면, 실은 부인도 고학력 고스펙이었으나 결혼해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그만두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흔하고 흔했다. 어째서 반대의 스토리는 없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괜히 옆에 있는 엄마에게 분을 터뜨렸다. 엄마, 나는 절대로 남자 때문에 인생의 주체성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그럼 엄마는 당신 세대의 마음으로 한마디를 했다. 넌 뭘 그렇게 유별나냐, 서로 도와서 같이 잘 되면 좋고 그런 거지, 그렇게 뻣뻣하게 살면 부러지는 거다, 유연하게 살아야지. 등등등. 그럼 난 또 굳이 지지 않고, 괜찮아 그럴 바에야 내 맘대로 살다가 부러지고 말지 뭐. 답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스스로 주체성을 포기하거나 불공평한 희생을 하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산다. 그것이 궁극의 행복을 보장해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중에 뒤돌아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삶을 살지는 않게 되겠지.




세상에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따지고 보면 불평등한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그런 부분에 남들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삶은 언제나 필요한 때에도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삶에 가까웠고, 그럴 때마다 의문은 칼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왔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 그러고 살아, 사회가 원래 그런데 어떻게 해, 남들은 가만있는데 왜 네가 나서. 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야말로 싸움닭처럼, 건드리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하는 태도로 눈에 힘을 주고 살아왔다. 그게 좋아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겪어야 할 차별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네덜란드에 오고 나서, 스무 살부터 다시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잘랐다. 석회수 덕에 뻣뻣해진 머릿결을 감당할 수 없어서, 긴 머리 손질에 들어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자꾸만 바닥에 떨어지는 굵고 검은 머리칼이 얇디얇은 금발에 비해 너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해서 같이 이상하고도 실용적인 이유로. 하지만 무엇보다 아무도 숏컷한 여자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아마 한국에서였다면 극복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겠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내게 왜 여자인데 머리를 짧게 자르느냐고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묻지 않는다.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겉모습으로 프레임을 씌우지도 않는다. 그저 머리를 자른 날, '너랑 잘 어울린다, 쿨해 보여!' 하는 소소한 칭찬을 몇 번 받았을 뿐이다.


애초에 화장을 하거나 하이힐을 신으며 한껏 꾸미는 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으므로, 이것을 어떤 운동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삶이, 아파 보인다거나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삶이,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디폴트라는 점은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여성의 인권과 평등권이 한국보다 비교적 높은 나라에서 살면서, 내 안의 의식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많은 생각을 앞으로는 더욱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적어나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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