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
해외에 거주하면서부터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가 모두 장거리 연애를 하는 것 마냥 어렵고 조심스러워졌다. 7시간의 시차가 있는 이 곳에서, 나의 밤은 그들의 아침이고 나의 아침은 그들의 저녁이다. 어느 한쪽의 시간에만 늘 맞출 수도 없을뿐더러, 서로의 마음과 상태가 시간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머무를지, 언제 떠날지를 예측할 수 없던 나는 pre-paid 핸드폰을 개통했다. 한 달에 몇 번 하지 않는 전화 통화를 위해 해외 전화 무제한 무료 같은 옵션을 지불할 돈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위해서는 007 작전처럼 서로의 상황을 예측해서 약속을 잡아야 했다. 오히려 직접 만나는 것보다 더 까다로웠다. 정확한 타이밍을 잡지 않으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곤 했다. 서로가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시간대에, wifi가 가능하고 통화가 가능한 곳에서, 상대와 연결을 기다린다. 내가 시간이 가장 여유로울 때, 한국은 늘 새벽이라 모두 잠들어 있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역동적인 낮 시간이 나의 새벽이었다.
사실 전화를 거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그냥, 혹은 보고 싶어서,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런 이유 없는 통화는 나의 옵션에서 사라졌다. 카톡의 알림음도 껐다. 새벽에 오는 단체 카톡에 깨거나 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왔던 카톡에 답을 한다. 부스스한 아침을 맞는 나의 말들은 그들의 나른한 오후에 전해진다. 표정과 목소리가 사라지고 글로만 쓰여진 언어가 온전히 제 뜻을 품고 완벽하게 전해질 리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주 사소한 마침표와 음절 하나에도 미세하게 마음이 상하고, 뜻은 미묘하게 바뀐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과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물론 그것은 단지 시차와 거리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에도,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라면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연락 만으로도 기꺼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배려와 이해를 위해 노력했다면 상황은 나았을까? 하지만 적당한 사이보다 오히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관계부터 삐그덕거렸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줘도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확하게 추측하기 어렵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이슈를 이 곳에서 100% 쫓아갈 수 없는 것처럼.
몸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지만, 한국말로만 전할 수 있는 혹은 그렇게 해소되어야 하는 감정과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었다. 서른 해 넘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부족한 영어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마음 밑바닥의 디테일한 감정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나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에는 제약이 너무 많았다.
현지의 친구들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물론 따로 있었다.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들. 한국의 친구들에게 디테일한 감정을 전할 수는 있었으나, 그들에게 이 곳의 생활과 다른 문화 차이, 이방인으로써 닥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매번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곳의 이야기는 이 곳에서 풀어야 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나는 어디에서도 100% 이해받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졌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벽하게 흡수되지 않은 채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느 자리에 두 발을 딛고 서야 하나. 경계와 경계 사이에 선,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존재가 된 느낌.
이제 남은 인연은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의 숫자.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대하고 싶어서 있는 힘을 다하지만, 그러다가도 종종 전해지는 나의 무거운 마음들이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들, 머릿속에 맴도는 이야기들을 사람에게 쏟아내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넓고 다양한 세상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지만, 동시에 그 모든 곳에 어떻게든 발을 딛고 있다. 교집합이 답이 아니라면 합집합은 어떨까? 어디서든 지금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을 살아야지.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