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룰루랄라 Jun 18. 2023

일기 쓰는 사십대

주말에는 평소보다 하루가 빠르게 지나는 느낌이다. 뭐 좀 하고 뭐 좀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있다. 오늘도 그런 하루다. 아침에 일어나서 만두 산책 시키고 병원 갔다 와서 오빠와의 점심 약속에 나갔다가 교보문고 들려서 책 사고 들어오니 벌써 5시다. 써 놓고 보니 그래도 한 게 많네. 오늘은 일기 쓰기를 몇 달 간 하면서 느낀 점을 써 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무슨 일기를 다 커서 쓰나 했는데 하루하루 써 나가다 보니 일기에 애정이 생긴다. 



내가 느낀 일기 쓰기의 좋은 점. 


1. 유체 이탈의 정기적 경험 

일기는 마치 내 몸에서 빠져나와 나를 옆에서 보는 듯한 경험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옆에서 바라보게 된다. 명상이 좋은 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데 일기도 같은 힘이 있는 듯 하다. 


2. 하루하루 빚어가는 나

일기를 쓰면 하루를 회상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많아진다. 쓰는 시간에 따라 관점도 달라진다. 주로 저녁에 쓰면 있었던 일을 돌아보고 오전에 쓰면 어제에 대한 반성이나 그날 하루를 계획하게 된다. 내가 하루하루를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살았는지, 살고 싶은 지를 생각하게 된다. 과거를 바라볼 때는 어떤 것은 잘 했으니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못난 행동은 다시는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오전에 계획을 하며 글을 쓰면 백 프로는 아니더라도 쓴 게 무의식중에 남아서 그래도 많은 부분을 쓴 대로 사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셀프 칭찬으로 내 기를 살리기도 셀프 다짐으로 내 삶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뭐 물론 가끔은 아주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싶은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평가하는 듯한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그냥 일기 쓰는 것을 쉬면 된다.  


3. 여기저기 뜯어보면 이쁘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일어난 일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말로 분노나 의문을 쏟아내며 동조나 칭찬을 원하거나 속으로 비난하거나 화내거나 뿌듯해 하거나 즐거워하기는 했어도 가만히 앉아 글 앞에서 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시간 없이 달려왔다. 이제야 일기를 쓰며 매일 만나는 나는 가엾기도 장하기도 멋지기도 짠하기도 찐득하기도 안쓰럽기도 사랑스럽기도 하다. 


4. 마흔 썸씽의 흔들리는 나를 기억해 줘. 

어떤 날은 유치하기 그지없고 어떤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뭐 했는지 메모만 나기는 식으로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줄이기도 어떤 날은 한 페이지에 가득 찬 분노와 한심, 다짐과 후회, 칭찬과 비난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마흔이 넘으면 인생의 이치를 알고 해결법을 많이 알고 있을 줄 알았던 나의 일기장에는 온갖 사소하면서도 큰 인생의 고민과 아직도 흔들리는 사십 대의 여자가, 직업인이, 아내가, 딸이 들어있다. 아마도 오십 대가 되어 이 일기장을 보면 풋풋했던 나의 사십 대가 그리울 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힘이 되어 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일기를 쓴다. 오늘은 ...   


작가의 이전글 내가 책을 좋아하는 다섯 가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