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디자이너의_비밀
에디터가 미술치료를 받았을 때 상담사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가족과 집을 떠오르는대로 그려보세요.” 내가 그린 집의 모습, 창문의 개수, 지붕의 모양이 곧 내 마음의 상태였다. 그 사람의 집을 보면 고민과 아픔이 보인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몸이 아플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약을 먹거나 밥을 평소보다 더 꼭꼭 씹어먹는 정도뿐. 그렇다면 마음이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인엑스 디자인의 현원명 소장은 스스로를 공간치유사라고 소개한다. 공간을 통해 우울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거나 아픈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공간을 바꿈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현원명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많이 긴장된다고 했었는데
그렇다. 남들 앞에서 직업에 대해 나서서 말하는 게 여전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아직 경험해야 할 분야도 많고 이해해야 할 분야도 많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말하기엔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더 단련이 되고 70세 가까이 되어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편한 얘기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처음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우연하고 막연한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어쩌다가 인테리어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겪어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로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일을 했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직업으로서의 디자이너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8살에 청주에서 책상 하나 갖다놓고 시작했다.
28살? 청주에서?
일찍 일을 시작한 편이다. 청주가 고향이다.
일을 시작해보니 어땠나?
처음부터 큰 일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패턴으로 그림도 그리고 벽화도 그리고 그랬다. 작은 일이지만 입체적으로 결과물이 나오니까 성취감이 생겼다. 이 일이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떠나서 내 삶이 그 방향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설계감리만 하는데 그때는 시공까지 했으니 시공을 10년 넘게 한 셈이다.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공사를 하고 돈을 못 받게 된 일이 있었다. 꽤 큰 돈이었다. 크게 좌절하고 있었는데 신문에서 대학원 모집 공고를 봤다. 문득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와이프와 상의를 한 뒤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때는 유명한 건축가들도 잘 몰랐고, 디자이너로서의 가치관을 갖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게 대학원을 가게 된 이유인가
그런 셈이다.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건축가를 접하고 스스로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내가 알지 못했던 분야들도 알게 됐고, 디자인에 대해 큰 자극을 받았다. 그런 과정을 겪은 덕분에 온전히 '내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온전한 내 작업'이라, Paper3가 그런 작업인가
그렇다. 그 전에는 책을 보고 참고하고 그것들을 편집하는 일들도 많았다. 물론 그것도 작업이긴 하지만, 온전히 내 작업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Paper3 이전에 Paper2가 있었다. 대학원 1학기를 마칠 즈음에 Paper2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었고 같은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게 Paper3다.
그런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는 건가
일상과 삶이다. 음악, 책,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지인과의 대화가 될 수도 있다. 그 중 영감을 찾겠다는 의도가 깊이 관여되는 건 여행인 것 같다. 여행을 가서 고택(古宅)이나 전통 사찰 등을 주로 본다. 우리는 한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처럼 옛것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택이나 전통 공간을 둘어보면 자연과 건축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보이고 그걸 들여다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어렸을 때는 왜 우리 것이 아름답다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되고 눈에도 안 들어왔지만, 10여년 전부터 건축답사를 다니다보니 비교가 되면서 아름다운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스스로를 행복을 주는 사람이나 공간치유사로 소개한다고?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설계를 하기 전에 가족 구성원을 만나 인터뷰를 깊게 진행한다. 부부를 만나 대화하고 자녀와 얘기하고 요즘은 핵가족이라 그런 경우는 많이 없긴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대화한다. 그들 각자가 꿈꾸는 집에 대해 듣고 나름대로 정리하고 분석한다. 자녀와 대화가 잘되지 않는 집도 봤는데, 공간을 통해 그런 고민을 푸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다. 자연스럽게 집의 구성이 가족간에 소통이 될 수 있는 구성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를 공간치유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의사는 아픈 환자의 병을 고치고 우리는 공간을 통해서 우울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아픈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흔히 쓰는 힐링이라는 말이 인테리어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꿈을 실현해주는 직업같다. 우리가 설계하는 공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는 신선한 경험들을 함으로써 행복을 찾으면 좋겠다.
행복을 찾고 싶은 의뢰인들이 '인엑스'를 찾기 전에 어떤 걸 준비하면 좋을까.
예산 문제로 많이 고민을 한다. 그걸 풀어야 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마음을 열고 편하게 상담하듯이 온다면 계획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편하게 컨설팅을 할 수 있다. 벽을 치고 방어를 하며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일단은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하다. 인테리어 시장을 볼 때 색안경을 끼고 디자이너를 보는 게 현실이긴 한데 변화되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끝없는 소통으로 그 불안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란 설득의 연속인 것 같다.
그렇다. 구상한 계획대로 마찰없이 성공시켜야 하니까 의뢰인뿐만 아니라 작업을 하는 분들과도 소통을 계속해야 한다. 여기서 소통은 말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지금 예산으로 마감을 하면 겨울에 추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예상되는 요소를 말하고 설득을 해야 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예측이 안되는 요인이 많기 때문에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 소통과 설득이 중요하다.
요즘은 셀프인테리어도 유행이다.
자연스러운 시장의 변화이고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경리단길이나 연남동 등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에 가면 업주가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는데,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하나의 스타일이 자칫 트렌드화 되는 게 우려가 되긴 한다. 어딜 가나 '인더스트리얼'에 에폭시 마감이라는 비슷한 인테리어를 한다. 그런 스타일이 비용이 적게 들어가고, 오브제를 만들거나 조직하는 거 보다 쉬우니까 이해는 되지만, 모든 공간이 하나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건 우려된다. 셀프인테리어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 영역의 경계도 흐릿해지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공간디자인을 한 건 7-8년 전이다. 그때는 스스로에게 '내가 지금 디자이너의 길을 가는 건가'라는 질문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두 영역에서 크로스오버가 생기면서 그 경계가 옅어지는 것 같다.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도 인테리어 시장으로 넘어와서 일하고 있고, 공간이나 인테리어 설계를 하는 사람도 건축으로 영역을 넓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현상이 좀 더 활성화가 된다면 좋은 결과물들이 많이 나오는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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