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는 테베(Thebes)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델포이 신전에서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받은 라이오스 왕은 부하를 불러 아이를 죽이라 명했다. 차마 자기 손으로 아이를 죽이지 못한 부하는 아이의 복사뼈에 쇠못을 박아 국경의 산중에 내다 버렸다.
버림받은 아이는 우연히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의 왕 폴리보스에게 바쳐졌다. 발견 당시 상처로 발이 부어 있던 아이는 이후 ‘퉁퉁 부은 발’이란 뜻으로 오이디푸스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느덧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난 오이디푸스는 어느날 잔치에서 술 취한 이가 자신이 ‘폴리보스 왕의 친 아들이 아니’라고 떠들어대는 말을 듣게 된다.
폴리보스 왕에게 이 말이 사실인지를 물었으나 역정만 내자 오이디푸스는 아폴론의 신전에 가서 물었다. 신탁은 대답 대신 그에게 다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예언을 내렸다. 이를 자신을 길러준 폴리보스 왕을 죽인다는 뜻으로 오해한 그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났다. 아버지를 떠나면 아버지를 죽일 일이 없을 터이니.
정처없이 떠돌다 우연히 델포이로 가는 삼거리에서 네 명의 부하를 거느린 노인을 만났다. 무례한 노인이 길을 비키라며 오이디푸스를 때리자 혈기 왕성한 청년인 오이디푸스는 그들을 모두 때려눕혔다. 불행히도 네 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한 명의 부하는 도망쳤다. 이 때 죽은 노인이 바로 자신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이었다.
* <그리스 신화> 중 ‘오이디푸스‘의 줄거리 Part.1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은 위와 같이 유명한 주제 동기와 함께 시작된다. 어느 날 이 테마의 뜻을 묻는 제자에게 베토벤은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은 삶을 살았던 음악가는 이 곡을 작곡할 1807년 당시에는 거의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어쩌면 음악가에게 가장 치명적인 병일지도 모를 청력을 잃은 것에 대한 그의 절망감은 1802년 10월에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나는 일찍이 고립되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롭게 살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예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나를 붙드는 것은 예술, 바로 그것 뿐이다.”
죽음을 각오했던 그날 이후에도 그는 창작활동을 지속했고,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위의 ‘운명’ 교향곡을, 그가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상태였던 1824년에는 그 위대한 9번 교향곡 ‘합창’을 완성했다. "오 친구여, 이런 소리가 아니다! 좀 더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O Freunde, nicht diese Töne!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그의 삶이 “불행의 기계 장치”와도 같은 자신의 운명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가혹한 운명을 이겨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들려주듯이 아마 '운명의 굴레'란 것은 ‘크로노스의 거대한 낫’과 같이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시계의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제 갈길을 갈 뿐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음악가의 노래는 여기에 남아 당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문 두드리며 묻는다.
* 9번 교향곡 4악장의 도입부 이후, 위의 가사로 시작되는 바리톤 독창과 함께 합창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