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형태

by 인센토


만약 영혼에 형태가 있다면 어떤 모양일까? 개인적인 상상으로는 가장 먼저 동그란 빵이 떠오른다. 화덕이나 오븐 안에서 도톰하게 부풀어 오르는 빵, 그 동그마한 빵을 반으로 쪼개어 보면 뽀얀 속살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그런 겉은 투박하지만 마음은 부드러운 시골빵. 왜 굳이 밥이 아니고 빵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넛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운데가 뻥 뚫린 링 도너츠. 혹은 두 팔을 살포시 포개어 안은 듯 3개의 구멍이 나 있는 프레첼.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영혼의 이미지는 어딘가에 구멍이 난, 완벽한 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동그란 빵을 닮은 형상이다.


또 다른 형태는 소라 고둥이다. 물 속이나 바위 틈에 웅크리고 있다가 썰물이 나면 모래밭을 기어다니며 흔적을 남기는 갯고둥. 안은 물컹물컹하지만 겉은 딱딱한 껍질로 덮혀 있는 이런 고동의 이미지는 어딘가 영혼은 바다와 연관된 것이라는 원형적인 기억에 기인하는 듯 하다. 모든 생명이 태어난 곳이자 세상의 모든 물이 다시 돌아가는 곳, 넓고 푸른 엄마 바다.


영혼이라고 하면 이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물과 연관된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지만 옛날에는 우리 주변의 사물이나 동물을 닮은 것이기도 했다. 마을에서 행해지던 별신굿에는 온갖 잡신들이 등장하는데, 이 귀신들은 우리가 생활하는 곳곳에 깃들어 있다. 부엌에도, 뒷간에도, 빗자루에도, 장독대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영혼의 일부를 어딘가에 남겨두는 것이다. 사람의 손길과 마음의 흔적이 모여 사물에 혼魂이 깃든다는 생각은 어딘가 서늘하지만 한편으론 아름답기도 한다.


좀 더 멀리, 우리의 뿌리이기도 퉁구스족의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흔히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원형적 이야기가 나온다. (단군신화에도 나오듯이 아마 우리의 조상들의 기원은 보다 앞선 문명을 지닌 북방 민족과 곰을 숭배하는 토착 부족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으리라.) 그리고 이들은 태양, 달, 산, 물, 나무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사물이 자신의 정신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믿었다.


이들의 상상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지만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마치 밤이 되면 집을 나갔다가 아침이 되면 초췌한 몰골로 돌아오는 고양이처럼, 우리가 잠든 사이 꾸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꿈들처럼 영혼은 우리가 모르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밤하늘을 나는 물고기, 습기 묻은 눈을 깜빡이는 초록 도마뱀, 먼 바다를 유영하는 바다 거북, 어두운 숲을 헤매는 검은 표범들처럼 나이자 내가 아닌 영혼들은 잠시 우리의 몸에 깃들었다가 우리가 죽으면 다시 어딘가로 떠나가리라.


아마도 영혼을 볼 수는 없겠지만 만약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나의 삶이 그 영혼을 닮았으면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한 덩이 빵처럼, 느리지만 자신의 성장을 기록해나가는 나선형의 껍질처럼, 혹은 자신만의 모험을 마치고 내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든 이 따뜻한 생명처럼. 어쩌면 그런 것이리라. 자신의 영혼을 찾으러 떠난 여행자는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리라. 그가 찾던 모든 것은 바로 여기, 이타카Ithaca*에 있었음을.




















*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고한 감동이 깃들면

그것들은 너의 길을 가로막지 못할지니.

네가 그들을 영혼 속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라이스트리곤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너의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커다란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 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도 없으니.

페니키아의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추고

어여쁜 물건들을 사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너의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고 나서야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 주기를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아름다운 모험을 선사했다.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리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다.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다.

길 위에서 너는 지혜로운 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가 가르친 것을 이해하리라.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이타카> _ <구본형의 신화읽는 시간>에서 재인용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나의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