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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Nov 29. 2017

한 밤의 레스토랑 순례

카주라호의 아씨식당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 / 정인채


카주라호에 도착하자 도시는 이미 심연 속에 잠들어 있었다. 서둘러 숙소를 정해야 했다. 지갑이 얇은 장기 여행자는 가격이 적당한 곳부터 찾지만, 이번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빛이 귀한 인도는 도시의 밤도 어둡다. 도심의 원추 밖으로 벗어날수록 그 어둠은 칠흑과 같다. 덕분에 여행자의 하루는 대여섯 시면 마무리된다. 보이지 않는 낯선 곳엔 되도록 미련두지 않고, 서둘러 빛과 사람이 모여드는 곳으로 돌아간다. 겁이 많은 것만은 아니다. 이곳의 어둠이 여행자의 친구가 아니란 것을 잘 안다.


역에서 릭샤를 타고 이동하는데 거리의 모든 상점과 가옥들이 문을 걸어 잠갔다. 길거리의 개들만이 무엇에 그리 흥분되는지 거리를 독점한 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다. 야행성인 건 녀석들이나 나나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더운 낮엔 잠만 청하다가 돌변한 녀석들을 밤엔 가급적 마주치고 싶지 않다. 지독하게 인도다운 어둡고 이른 밤이었다. 그나마 하루 묶을 곳을 빨리 찾은 건 다행이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침낭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좀처럼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피곤했지만 도무지 참기 어려울 허기가 엄습했다. 첫 기차 여행이었다. 대륙 열차를 타본 적 없는 경험 미숙이랄까? 잔뜩 긴장한 채 제대로 먹은 것 없이 먼 길을 왔다. 일단 뭐든 좀 먹을 만한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어디든 한 곳이라도 아직 문을 열어두지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숙소 주인은 말했다. "아마 지금은 찾기 어려울 거요!" 


그럼에도 숙소 주인의 양해를 얻고 이미 굳게 내린 셔터를 올린 채 다시 어두운 거리로 나섰다. 한 무리 길거리 개들에 몸을 숨기며 골목골목을 탐색하는 굶주린 여행자는 흡사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았다. 그러므로 '아씨 식당'이라는 한글 간판을 발견했을 때는 기쁜 나머지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멀리 조그만 간판의 빛이 흘러나오자 긴가 민가 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눈을 조아렸다. 어둠 속에 피어난 아지랑이 같은 간판 속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라 이런 곳에서 한식당을 찾은 건 꽤나 극적이었다.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 / 정인채


'아씨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물불을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입맛부터 다셨다. 그런데 식당 안에 한국인은 보이지 않고 웬 인도인 사내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수가 한국인이라 '아씨 식당'이라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다. 적어도 이런저런 한식이 메뉴에 적혀 있었으니 그것으로 믿음이 갔다. 다양한 메뉴가 눈에 어른거렸지만 영업시간은 끝난 뒤였다. 가능한 메뉴가 별로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니 괜찮다면 아무거나 내주겠다며 앉으라고 했다. 라면 한 그릇 그리고 인도 고추와 고춧가루에 버무린 무김치가 찬으로 나왔다.


단지 형수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일까? 인도 향신료를 넣은 라면은 상상을 불허하는 맛이었다. 그래도 음식의 맛이란 때와 장소도 중요한 법이다. 무김치가 아닌 무와 고춧가루도 잘 먹었다. 허겁지겁 주워 먹었다. 너무 허겁지겁 먹다가 작은 인도 고추 하나를 짚어먹었는데, 그만 입에 불이 나고 말았다. 인도 고추가 그렇게 매운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에서 손꼽히는 매운맛을 보았다. 


카주라호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자전거로 그림 같은 자연 속을 달려 힌두교 사원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밀교의 색채를 담은 카마수트라도 이곳을 찾는 주된 목적이기도 했다. 햇살은 눈부시고 숲은 녹색으로 반짝였다. 아이들은 카마수트라 그림책과 기념품을 파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내게 카주라호는 '아씨 식당'과의 상봉으로 기억된다. 


결국 탈이 나 며칠 심한 고생을 했지만, 언제나 한 밤의 레스토랑 순례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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