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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an 22. 2018

기이한 수행자들의 나라?

기이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망이 가득한 곳

#리시케시에서


인도의 숱한 수행자 가운데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들이 많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떠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다니는 경우는 물론, 날카로운 쇠를 먹고 뜨거운 불을 삼키며 공중 부양하는 행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만큼 깨달음과 해탈로 향하는 고행의 길은 지난하다. 


그런데 왜 그럴까?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는 걸까? 외부의 시각에서 그 모습은 서커스의 진기명기나 매우 특이한 기행처럼 비치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때로 이미지는 왜곡되고, 심지어 누군가는 특정한 부분에서 착안해 자신의 부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가령 옴 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도 초창기 공중 부양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살짝 관점을 비틀어 그가 ‘무엇을 하냐’가 아닌 ‘얼마나 단련하느냐’에 주목하면 좀 더 이해해볼 만할 것이다. 사실 그 수단이 무엇이든 좋다. 어떤 한 가지를 택해 성실하게 거듭 수련하고, 그 달성 수준을 통해 수행의 깊이와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목적을 향한 과정과 노력에 방점은 둔 행위다. 


또한 경쟁이 심하다는 면도 주목해야 한다. 인도에선 대체 얼마나 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과 해탈을 추구할까? 믿음엔 귀중과 우열이 없고, 이미 깊고 건실한 믿음을 가졌겠지만, 바늘구멍과 같은 문을 통과하고자 갈구하는 길엔 끝이 없다. 가급적이면 고난도의 수행으로 완성도를 높이면 돋보이는 것이다. 기이한 것이 아니라 간절한 것이고, 더 척박한 환경에 몸을 던져 큰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야심 찬 수행이 아닐 수 없다.


범상치 않은 수행자들도 많지만, 전 국민이 신앙심 깊은 인도다. 실제 모든 이들이 그런 특별한 수행을 하진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다닌다. 밥을 먹다가 불을 삼키지 않고 공중부양을 하면서 출근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보내며 끝맺는다. 깨달음과 해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 또한 현생과 내생에 대한 소망을 품는다. 그것이 종교의 나라 인도에서의 보다 보편적인 일상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종교가 일상화된 곳인데, 수행자라면 대체 얼마나 달라야 할까? 


그러고 보면,

기이한 수행자의 나라는 실상 기이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망이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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