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발명이라는 영화가 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아예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어서, 모든 사람들은 진실만을 말한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고, 모두가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에서 거짓말을 하는 능력을 갖게 된 유일한 사람이 된 주인공은 곧 권력자가 된다.
거짓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주인공이 입밖에 내는 모든 말은 어떤 말을 해도 곧 진실로 인정받는다. 은행 계좌에 돈 한 푼 없어도, 계좌에 돈 있는 것이 확실하니 돈 내어달라고 하면 은행원은 당연히 전산이 잘못된 것으로 알고 돈을 내준다. 거짓말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주인공은 뜻하지 않게 종교를 만들게 된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죽음의 공포로 괴로워하자, 이를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던 주인공은 천국이 있으며 죽어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평안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임종을 맞는다.
이 장면을 지켜본 간호사에 의해 천국에 관한 주인공의 말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곧 종교가 만들어지고 주인공은 메시아로 추앙받는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종교가 거짓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종교의 본질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설정이 그렇다는 말이지만, 종교가 힘을 얻게 된 배경은 결국 나약한 인간의 마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볼 수 있으니 의미 있는 설정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설정한 이 장면은 인간 본성에 관한 성찰을 통해 일련의 사회현상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왜 사람들이 뻔한 거짓에 기꺼이 속아 넘어갈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고, 특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사이비 종교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빠져드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거짓도 의심할 생각이 없으니까.
종교가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임종을 앞둔 어머니에게 한 거짓말은 종교의 존재 이유를 잘 나타낸다. 종교는 어머니가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설령 거짓이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가는 길을 공포에 사로잡혀서가 아니라 평안한 마음으로 가도록 해주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러니 종교는 아마도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인류와 함께할 개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종교의 순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과 같은 비상시국에서 종교가 보여주고 있는 부작용은 상당히 크다.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이 폭발적 코로나 19 확산의 주범인 사실만 봐도 그렇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무시하고 종교집회를 강행하는 경우가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니 종교의 부작용이라 하겠다. 종교적 신념이야 당연히 지켜야 하겠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집회를 자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종교 집단에서 무리한 집회를 강행하며 마치 종교 탄압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종교의 자세가 아니다.
영화에서 제시했듯, 종교는 상당 부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공포를 완화시키고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기여하는 역할을 하여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한다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최근의 비상시국에서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바이러스가 확산하도록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일부 종교인은 특정한 정치 성향을 공공연히 내세우며 종교 집회인지 정치 집회인지조차 모호한 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이런 측면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일 뿐, 정상적인 종교인의 모습이 아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초래해서야 되겠는가. 일부의 일탈일 뿐이고 대부분의 종교는 사회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일부의 일탈도 작금의 비상시국에서는 허용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