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May 15. 2020

추락한 언론 신뢰도

지난 몇 주간 김정은 위원장 관련 언론 보도가 도를 넘은 느낌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근거한 기사를 쏟아냈고,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근거 없는 말을 대서특필했다. 물론 늘 그렇듯 이런 모든 보도는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김정은 위원장이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언론이 생명력은 보도의 진실성이다.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이 진실일 것이라 믿고, 그 결과로 언론은 신뢰를 얻고 영향력을 얻는다. 언론이 신뢰성을 잃으면 언론의 존재 이유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은 존재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다. 사실 이미 상실한 지 꽤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적 20일, 북도 미도 심상찮다."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이다. 마치 북한에 큰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암시하며 미국도 이에 대해 대응을 준비한다는 식의 제목이다. 기사 제목을 보면 한반도에 큰일이 발생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조선일보도 비슷한 보도를 이어갔다. 5월 2일 자 기사에서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의원 당선자의 말을 빌어 김정은이 사망한 것이 99% 확실하다고 썼다. 아울러 대만 정보기관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아프다고 보고했다는 것을 인용했다. 곧 김정은 위원장의 신변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무책임한 보도를 상당기간 이어간 셈이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보도가 그동안 끊임없이 이어졌기에 한국 언론은 신뢰를 상실했다. 김정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를 철석같이 믿었던 독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대다수 사람들은 전혀 신뢰하지 않았을뿐더러 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자 건강 이상 관련 보도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동안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이번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언론만 전혀 근거 없는 사실로 호들갑을 떨었을 뿐이다.


도대체 왜 한국 언론은 언론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지속적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을까? 마치 불안심리를 조장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나친 보도가 계속되었으니, 특정한 의도와 방향성을 가지고 기사를 작성했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런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편견으로 가득한 기사를 남발한 언론의 보도는 이미 만성이 된 느낌이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동안 사망설을 집요하게 유포하던 언론은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물론 아무런 사과나 반성이 없을 것은 그동안의 행태로 보아 명약관화한 일이다. 추락한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려면 그래도 반성하는 기사 한 줄은 나와야 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 정도의 양식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이다.


인터넷 기반의 언론들이야 클릭 수에 목숨을 걸어야 하니 온갖 자극적 기사로 도배를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 보수를 자처하는 메이저 일간지들의 보도 행태는 사회불안을 조장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의 공정성을 부르짖는 언론사들이 가장 편견을 갖고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고, 이것이 결국 한국 언론에 대한 전반적 불신을 초래했으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메이저 언론의 책임이 크다. 


메이저 언론사의 이번 김정은 위원장 관련 보도는 그동안 보여왔던 특정한 편향성을 넘어서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도를 넘었다. 지난 총선의 결과로 보수 일간지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마구잡이 식의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이미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신뢰를 받기는커녕 조롱거리로 전락한 언론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건재를 과시한 직후, 여러 매체에서 한국 언론이 망신당했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 댓글들도 무책임한 언론을 비난하는 글 일색이다. 이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국내 언론 보도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던 독자들은 외신을 훨씬 더 신뢰하고 있으며, 언론도 해외직구를 하겠다거나, BBC가 민족정론지라는 비판적이고 조롱 섞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편향된 보도를 일삼으며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언론의 시대가 마침내 완전히 저물고 있다. 코로나와 김정은이라는 큰 사건이 한국 언론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독자들은 이미 한국 언론에 사망선고를 내린 지 꽤 되었는데, 이참에 아예 스스로 언론은 죽었다고 부고 기사를 쓴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진 국민 한국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