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진화론을 정립하고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망설였다. 교회와 갈등을 빚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진화론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나치 독일에 의해 유대인을 인종 청소하는데 이용되었다는 전력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인종 차별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하여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주저하였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난 이후에야 가까스로 진화론에 씌워진 불합리한 편견이 다소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합당한 대우를 받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다.
우리의 육체가 진화의 산물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일부 종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과 행동양식을 좌우하는 뇌는 신체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화와는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 본성이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Nature vs Nurture)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해와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인간의 본성이 100% 완벽하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거나, 혹은 후천적 환경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은 이미 설자리가 없지만, 남녀 간의 차이에 대한 해석이 아직도 어느 한쪽에 치우쳐 시대착오적인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교육철학의 문제까지 제기한 편협한 논쟁이라면 더욱 불편하다. 더구나 언론이 그런 편견에 입각한 논쟁을 조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유감스럽게도 21세기 한국 언론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교육부에서 남녀 간의 차이에 대한 간단한 자료를 작성해서 배포했던 모양이다. 연합뉴스는 교육부의 자료가 문제가 있다며 지적하고 나섰고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의 요지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 입각해서 아빠는 사냥, 엄마는 양육에 더 적합하게 뇌가 진화했고 그 결과 남자와 여자의 뇌는 다르며, 여자가 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내용이다. 연합뉴스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엄마는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양육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고, 아빠는 사냥과 낯선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가 점차 다르게 진화했다"라고 주장했다. 여자의 뇌는 양육을 위해 공감과 의사소통에 더 적합하게 진화했고, 남자의 뇌는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논리·체계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데 더 적합하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카드 뉴스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공동체가 변화하면서 남녀로 양분된 양육 시스템의 '효율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아빠의 뇌는 여전히 공감 및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데, 이는 자녀와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아빠가 엄마 등으로부터 공감과 소통 방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끝맺었다.
기사에서 지적한 교육부 자료가 문제가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남녀 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그런 차이가 어느 한쪽 성의 우월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기사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교육부 자료는 그런 차이점을 적시하여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굳이 진화심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남자가 공감과 소통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남녀 차별로 이어지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억지로 남녀 차별로 해석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 말로 지극히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시각이다.
기사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이 항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언론은 오히려 그런 편견을 바로잡는 기사를 내보냈어야 했다. 연합뉴스 기사는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기사화를 했다고 보인다. 언론이 이런 왜곡된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가뜩이나 문제가 심각한 남녀 갈등이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남녀 간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차이를 부정하고 기계적이고 물리적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누구보다도 이런 억지 주장의 방지에 나서야 할 언론이 오히려 논쟁을 조장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러니 한국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듣고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기더기(기자+구더기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함량 미달 언론을 시급히 개혁해야 할 당위성이다. 항상 지적하듯이 언론의 자정작용을 기대하기 난망하니, 시민들과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