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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Dec 30. 2020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Ma Rainey's Black Bottom, 뜻밖에 발견한 보석

블루스 음악을 좋아한다. 우리 정서 "한"과 일맥상통하는 정서가 블루스에 녹아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제목을 보고 당연히 블루스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영화는 단순히 블루스를 다룬 음악영화가 아니라 다양한 주제를 의외로 깊이 있는 울림으로 전달한다. 블루스 음악의 향연을 기대했던 예상은 빗나갔지만, 기분 좋은 어긋남이다.


영화는 시카고 음반회사 녹음실이라는 제한된 무대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블루스 음악의 향연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밴드 멤버들과 마 레이니, 그리고 음반회사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조인데 영화는 묘하게 사람을 몰입하게 만든다.


인기 절정의 흑인 블루스 싱어 마 레이니는 백인 음반회사 사람들을 마구 몰아붙이고, 말 더듬이 조카를 녹음에 참여시켜 여러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등 얼핏 보면 극도로 혐오스러운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녀의 한없이 거만한 태도와 불합리하게 백인들을 몰아붙이는 것은 그녀가 자본주의 속성과 흑백 간 인종문제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곧 알아차리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이 백인들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녀의 재능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는 순간 버림받을 것임을 냉정하게 계산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가 코카콜라를 마시기 전에는 녹음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뜬금없는 강짜를 부리고, 말더듬이 조카를 고집해서 녹음을 지연시키고 음반회사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음반회사의 캐시카우로서 그녀는 그렇게 당당하게 불합리를 요구하고 관철시킬 자격이 있고, 또한 그녀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어차피 재능이 팔리지 않게 되는 순간 그녀는 비천한 흑인으로 무시받게 될 터이니 누릴 수 있을 때 누리겠다는 냉정한 계산이다.


재능 있는 트럼펫 주자 레니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 유명해지려는 야망을 가진 젊은이로, 음반회사 사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런 태도를 동료 밴드 멤버가 비웃자, 레니는 자신이 겪은 참담한 경험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왜 자신이 출세하여 백인들 위에 군림해야 하는지를 인종차별로 인한 비극적 가정사를 통해 드러낸다. 


영화는 이들 밴드 멤버들과 마 레이니,  음반 제작자들 간의 대화를 통해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동시에 인간 욕망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취하는 다양한 방법을 여러 색깔의 등장인물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런 구조의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몰입도를 유지한 이유는 뛰어난 배우들의 역량이 큰 몫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맞다. 영화의 원제인 Ma Rainey's Black Bottom은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고, 감독인 조지 C 울프는 토니상을 수상한 연극 무대 감독이기도 하다. 블루스 음악 영화를 기대했다가 발견한, 뜻밖의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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