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초코 좋아하세요? 이 질문은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핫한 주제라고 한다. 민트초코 맛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소속감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동지의식을 형성하는 놀이이자, 일종의 문화 현상이다.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은 민초단, 싫어하는 사람은 반민초단으로 갈린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상당히 뜨겁고 민감한 주제여서 요즘 유명인이라면 의례히 민트초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은 대표적인 반민초단, 아이유는 민초단으로 분류된다. 왜 민트초코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민트초코의 특성상 중립적 태도가 존재하지 않고 호불호가 명확하기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일종의 놀이 문화로, 인터넷 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놀이 문화는 사실 민트초코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먹는 것을 선호하느냐(부먹) 혹은 찍어 먹는 것을 선호하느냐(찍먹)에 따라 편을 가르는 소위 부먹/찍먹 놀이 문화는 민트초코 이전에 등장했던 인터넷 밈이었다. 비슷한 놀이는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취향을 나타내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부먹/찍먹, 민초단과 같은 인터넷 밈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 형성한 강한 유대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기성세대에게는 이런 인터넷 놀이가 낯선 문화이겠지만, 인터넷에서 형성된 느슨한 유대관계에서도 의미를 찾고 재미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문화라고 보겠다.
단순한 놀이에 그치면 그저 웃고 넘어가겠지만, 의외로 미디어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초단 논쟁에는 민트초코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즉 민트초코를 선호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는데, 인터넷 밈으로 확산되고 미디어에서 부풀리면서 관련 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온 것이다.
식품 유통업계에서 이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업계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출시된 민트초코 맛 신제품이 무려 100여 개에 달한다고 하니, 밀레니얼 세대의 놀이문화가 업계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유행했던 탕수육 부먹/찍먹 논쟁이 순수한 놀이로 끝난 것에 비해 민트초코는 업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놀이 문화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릴 수는 없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스쳐 지나가는 한때의 유행이겠지만, 이들의 놀이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소비문화의 주체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직 경제력이 부족한 세대이기에 이들이 단숨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젊은 세대가 영향력을 갖춰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때 국가 슬로건을 "다이내믹 코리아 Dynamic Korea"라고 정했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던 한국인데, 최근 들어 그런 역동성을 상실하고 심각하게 정체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가 과거에 비해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서 하나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데, 물론 이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퍼질 정도로 사회가 역동성을 잃었고, 부모의 계급과 부가 대물림되는 현상이 고착화되어 소위 흙수저들에게는 희망이 박탈당한 현실이 작금의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민트초코는 어쩌면 희망이 사라진 젊은 세대가, "소확행"이라는 단어에서 나타나듯,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만족하는 소심한 문화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들의 그런 놀이가 어쨌거나 업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들이 자신들 스스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자신감을 불러 넣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민트초코가 대한민국이 재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계기였다고 후세의 역사가들이 기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물론 비약이지만, 그만큼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서 우리 사회가 역동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