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지금은 잘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 부모님의 시대에는 그런 일이 자주 있었지요.
부부싸움이요.
가족이 모이면, 언쟁이 오고 가고,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소한 의견 다툼으로 큰소리가 오고 가면서 싸움이 되곤 하지요.
이상하게 어린 시절 제 부모님도 그런 일이 많았어요.
시작은 항상 사소한데, 이상하게 그게 큰 갈등을 불러오고 그렇게 언성이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되었지요.
그때는 그런 부부의 다툼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이 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요.
지금은 그래도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어서 아이 앞에서는 다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제 믿음일까요? 그런 가정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에요.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의 다툼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말이 있어요. 저 또한 그랬거든요. 이상하게 부모가 다툼을 할 때면, 제가 있어야 할 공간이 사라지는 기분이었고, 편안함과 안락함은 마치 동화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엇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의 모습을 보면 그때 다툼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것 같았어요. 조금이라도 표졍이 좋지 않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런 좋지 않은 기억의 흔적은 아직도 제가 살아가는 세상이 안전한 반석 위의 땅이 아니라, 곧 무너질 빙산의 어떤 조각 위에 있는 집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지요.
부모의 다툼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충분히 알고 있기에, 저는 그렇지 않은 부모가 되려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교직의 경험 덕분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부모님과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저의 하루하루는 항상 얼음장 위에 있는 삶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지요. 매일 이어지는 긴장감.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성인이 되고 변하듯이 부모님 또한 그렇더라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물리적 존재가 동일한 이상 과거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종종 감정적인 충돌이 발생하게 되더라고요. 일의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사고의 흐름에서 발생하는 갈등.
직장에서 생활하면서 일의 진행방식을 배운 제 방법론과 생존에 기반을 두고 일을 진행해 오셨던 부모의 방법론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일의 가치적 측면에서의 충돌도 발생하며, 사소한 표현의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요.
가장 많은 갈등은 아무래도 일의 진행 같아요.
가능하면 기록으로 남기고, 가능하면 수치화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획하려는 저와는 달리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일을 진행하셨던 부모님의 진행 방식에는 자주 갈등이 발생하게 되더라고요.
가끔 그런 갈등에 빠지면 마치 저 혼자서 세상의 어느 무인도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만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부모를 만나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건가? 나만 이런 좋지 않은 환경을 얻어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건가?
그러다가 얼마 전.
저와 비슷하게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며 그 일을 이어가는 친구를 만났어요.
역시나. 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더군요.
기존의 방법을 이어가고, 변화하지 않는 내일을 살아가려는 부모님과, 지금의 방법을 관찰하고 더 좋은 방업을 고민하는 자녀들. 그런 가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왜 그런 갈등이 발생할까요?
문득 깨닫게 된 답이 배움에 노출된 삶을 살아온 사람과 배움에 노출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세대의 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풀어서 말하면 이런 거예요.
사실, 부모님 세대는 무엇을 배운다는 게 힘들었지요. 특히, 지금처럼 어떤 가치적인 부분에 대한 배움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먹고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당시에는, 감각에 의존하고, 지인에 의한 물리적 범위에서의 정보 습득이 거의 대부분이었으며,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생존을 위한 선택만이 상당 부분이었어요.
그렇지만, 자녀 세대는 그렇지 않았지요.
부모님의 수고로움 덕분에 배움의 시기에 자주 노출되었어요.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며, 사교육을 받고,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공부하고, 자격을 취득했었지요.
생각해 보면, 자녀세대 대부분은 커리큘럼의 세대라고 조심스럽게 정의하고 싶어요.
교육과정이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지요. 그저, 전임자의 옆에서 눈치로 배우던 부모님의 세대와는 달랐어요. 매뉴얼이 있었고, 규정과 규범이 있었고, 상당 부분의 틀이 정해진 상황에서 극히 일부에서 소위 융통성이라는 능력이 활용되었거든요.
자연스럽게도.
먹고 살아가는 게 급급했던 과거보다는 그나마 먹고 살아가는 건 큰 염려가 아닌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수고와 힘겨움을 인내할 수 있는 어른들의 세대는 무엇을 배워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지에 대한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돌봄에 기초했으며 정형화된 틀에서 성장의 삶을 살았던 자녀 세대에게 정형화된 규칙과 규정이 없는 세상을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게 되었지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부모 세대는 그래도 과거보다는 좋은 세상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자녀 세대에게는 더 좋은 미래라는 게 고작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에 지금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위험도 감수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동일한 상황과 현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부모님의 농업을 이어가는 제 친구는, 모든 일을 손과 구식 기계로 하는 농사일에 IT를 도입하며 부모님과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지요. 농사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과 함께, IT기술을 이용해서 상당 부분을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좋은 효율을 만들자는 자녀의 의견이 충돌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제조업을 이어가는 제 경우는, 도매업자의 갑질에 놀아나기보다는 생산과 판매를 함께해서 독립된 브랜드로 생산과 판매를 모두 연결하자는 의견과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도매업자가 원가를 낮추자고 하는 것이니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참자는 부모님의 의견과 충돌하게 되었고요.
정답이 있을까요?
글쎄요. 사실, 어느 쪽이든 위험은 감수해야 하겠지요.
변화를 추구하는 가치가 정답도 아니고, 변화를 거부하는 가치가 정답이라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둘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어떤 선택과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함께 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요?
배우는 사람과 배우지 못하는 사람.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하나 확실한 것은, 배움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것을 지켜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