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성장하고 싶은 이야기
나만 알고 있는 N번째 이야기이다.
글을 쓰고, 저장을 하고, 발행을 하려고 다시 읽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지우고, 또 쓰고, 저장하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다시 읽어보고 또 지우고.
이제는 저장을 누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작정 발행을 눌러야지.
그런 마음으로 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쩌다가 내가 지금의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는지, 아니, 어쩌면 브랜드를 핑계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내 브랜드가 법적으로 공인되는 날에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었다.
교사로 지냈었고. 원대한 꿈을 가지고 퇴직을 결정했고. 꿈을 선택하려 하다가, 부모와 자녀의 존재를 생각하며 조금은 양보하겠다는 마음으로 제조업을 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만과 분노, 성찰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브랜드가 인간적이라는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글을 지운 이유를 말하자면.
여전히 나는 잘난 놈이었고,
여전히 내가 아닌 그들은 안타깝고 부족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적인 브랜드를 생각한다면서 그것의 방향을 상상하는 내 모습은 너무도 이기적이고, 교만한 존재였다.
교만함.
내 글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교만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저장된 글을 지웠다.
문장의 모음에 많은 시간이 투자되었지만, 하례한 시간의 가치보다 나의 교만이라는 치부가 더 부끄러웠기에, 그리고 그런 대단한 척하는 모습 속에서 나 또한 무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나의 부끄러움을 누군가 읽기 전에 지웠다.
다시 쓰기 시작하는 글이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자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절되지 못하는 시간의 연속성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게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함은 없으며 부족함 가운데 조금이라도 좋아지려는 노력을 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써 보려 한다.
이전과 다른 것은.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르며,
나는 맞고, 그들은 틀렸다는 이야기가 이니라.
내가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일을 통해서 부모님을 알아간다고 제목을 정했다.
그렇지만.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아이들을 관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친구들, 제자들, 선배들, 동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겪은 그들의 삶을 바탕으로, 나의 부모를 이해하는 과정이 결국 내가 아닌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이었으며,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내 부모를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어쩌면과 만약으로 이어지는.
그럼에도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입장에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