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취를 쌓아봐.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by Inclass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기에 가장 힘든 아이들은 아무래도 무기력한 아이들이었다.

방향도, 목표도 없는 아이들.


3월의 후반이 되던 어느 날,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에 돌아오는데 한 아이가 뒤 따라왔다.

다른 선생님께 볼일이 있어서 왔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반 아이였다. 핑계를 붙인다면, 학기 초였고, 학급에 30명이 넘는 아이들의 상담이 모두 끝난 게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그 아이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 아이가 하루에 다섯 마디 하도록 유도하는 게 1학기 후반부 학급 목표가 되었을까?


무기력하게 보이는 아이였다.

말이 없었고, 상담을 해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으며, 수업시간에도 무엇인가 지적당하지 않을 정도만 하는 아이였다.

의지가 없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런 아이였다.


사실.

그 아이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했다.

혹시나 교우관계가 좋지 않아서 무슨 일을 당하는 건 아닐까? 혹시나 내가 모르는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닐까?

급식 지도를 핑계로 살펴봤고, 교과 시간에도 수업 태도를 관찰하고, 청소시간에도 눈여겨봤으며, 다른 아이들의 상담을 하면서도 슬쩍 물어봤지만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무색무취의 아이라고 해야 할까?


그 무렵부터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왜 무기력하게 될까?

무엇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그 아이의 경우는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 아이가 삶에 어떤 적극성을 보이는 부분을 말이다. 부끄럽지만, 당시 나는 다양성에 대해서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어느 정도 인지했다 하더라도 깊이가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

나 또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입시와 진학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집단최면에 빠져있던 시기였으니까.




제조업, 자영업을 하면서 다른 가치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매일같이 일정하게, 성실하게 어제와 같은 오늘, 1년 전과 같은 내일, 항상 같은 그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양말을 만든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24시간 돌아가는 기계를 관리하고, 기계에서 나온 상품이 항상 일정한 사이즈와 탄력을 유지하도록 몸으로 기억해야 했고, 기온과 습도에 따라서 원사의 성향이 변하더라도 결과물은 동일하게 만들 수 있어야 했다.


방직뿐만이 아니라, 생산 관련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했다.


식당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 맛이 좋아서 계속 갔었는데, 확장이전 후에 맛이 변했다고 다른 식당을 알아보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 하던 일과는 달랐다.

물론, 교사 역시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시간표에 맞춰서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같은 과목을 지도하더라도, 학급마다, 해마다 아이들의 수준과 성향이 달랐기 때문에 변화를 줬었고, 수업 방식과 교육 프로그램에 항상 변화를 주면서 살아왔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서 표현 방법도 바꿨으며, 시대 가치의 변화에 따라서 아이들의 지도 방법에도 변화를 줬었다.


메이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3d프린팅을 배우고, 코딩을 공부하고, 메타버스. 가상현실에 대해서 공부하며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활동을 만들었으며, 그런 주제로 교사를 대상으로 강의도 하며 학교 교육이 이러한 기술 변화와 시대변화에 어떻게 준비하고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런 부분이 달랐다.

어제보다 좋은 내일을 위해서 고민하던 삶을 살았었는데, 새롭게 하게 된 일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오늘과 같은 내일, 내일과 같은 10년 뒤를 살아가라고 강요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으며 하루하루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삶에 피로를 느끼던 중에, 새롭게 하게 된 일은 특별한 고민 없이 어제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삶이 이어지다 보니 역시나 무기력해졌다.


역동적인 삶에 대한 갈증인지, 이런 삶이 내게 줄 미래가 지금 어른들의 모습과 다름없으리라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변화를 시도했다.

주먹구구로 하던 일에 시스템을 구현했다.

데이터로 바꾸고, 수치를 측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일이 조금씩 체계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절대적 불신. 변화에 대한 거부감.

결국. 지금보다 더 좋은 내일을 꿈꾸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고자 하는 본능의 충돌은 오히려 불협화음만 만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렸다.

지금 일을 하는 어른들은 곧 이 일을 그만하겠지만.

나는 어쩌면 그보다 오래 해야 하니까.

지금의 상태로 일을 받으면 나는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장난감을 받을게 뻔하니까.


스스로를 믿으며 공부하고, 시도하고, 고민하고, 몇 번이고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실패를 최소화하려 노력하며 조금씩 가능한 범위에서 변화를 줬다.


아무리 김장을 잘해도 발효의 시간이 걸리고,

아무리 뜨거운 물이 있어도 라면이 익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민하며 시스템을 만들어도 그것이 가동되고 성과를 보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절대적인 요소이다.


문제는 그런 절대적인 요소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물론,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염려였겠지만.

걱정에서 나오는 말이었겠지만.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말아라.”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응원과 인정, 격려가 아닌 원망이 묻어나는 그 말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그럼에도 변화에 대한 시도조차 못하게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라는 존재가 내 삶의 모든 것을 쥐고 나의 자율을 모두 막으려고 하는데 삶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 무렵 가끔 정말 가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는 회복탄성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에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왔다. 웃을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문득.

3월의 어느 날 내 뒤를 따라오던 그 아이가 생각났다.

1년을 보내면서 목소리도 잘 못 들었던 아이.

어쩌면 그 아이도 그런 성취를 느껴보지 못해서 그랬을까?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일까?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이 있다.

성공한 사람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저자 티모시 페리스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중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작은 성취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취지였다.


비슷한 이야기로,

얼마 전 개그맨 김영철이 얼마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짧은 공부 이후에 아침 라디오 생방송을 시작하는데, 매일 아침 소소하지만 그런 루틴을 완성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성취감을 쌓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성취감을 쌓아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미 작은 성취감을 채우며 시작한 사람과 정신없이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어쩌면 출발선부터가 다른 시작이 아닐까?


순간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서 삶이 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작은 성취감이 쌓여서 하루를 채운다면 그 사람의 삶은 얼마나 많은 성취와 긍정의 자존감을 채워질까?


때문에 나는 요즘 작은 루틴을 만들었다.

하루를 마치면 30분에서 40분의 유산소 운동을 하고, 20분 정도의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정말 소소한 이런 행동으로, 몸무게가 줄어들거나 몸의 라인이 좋아진다는 변화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루틴이 거의 3주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마치 내가 내게 성취감이라는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서 루틴을 지켜가는 기분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성을 만들기 위한 작은 벽돌은, 일상에서 채워가는 성취감으로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성취감이 모여서 결국 우리는 튼튼한 하나의 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작은 것부터 하나씩 채워가는 삶으로 내 성을 만들어서 외부에서 오는 자극으로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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