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면 그만이지
세탁기가 없는 건 아니다.
이불 빨래를 목적으로 한 대용량 세탁기가 집에 있다.
그럼에도 가끔.
동네 빨래방을 찾곤 한다.
처음에는 큰 이불 빨래를 한 번에 완료한다는 핑계와 함께 세탁을 기다리면서 글을 쓰는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여유로운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방문하게 된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빨래방을 찾았다.
사람이 없는 공간.
대형 세탁기가 이불을 깨끗하게 하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아이와 동네 산책도 하고, 몰래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아침에 먹을 빵도 사고.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여유로운 시간.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가만히 온도를 느끼고, 바람과 소리를 느끼며,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냥 온전하게 내 주변의 반응을 수용하는 기분.
어쩌면 그런 기분을 아이가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함께 빨래방에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나가 그런 시간이 있겠지만.
나 또한. 그러했다.
열심히 입시 준비를 했었고,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걱정하다가 교직 이수를 목적으로 또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임용을 목적으로 다시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 이후 기간제 교사로 지내면서 열심히 일 하면 정교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열심히 교직을 보냈다.
쉽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누구보다 노력하고 성취를 이뤄도 나를 끌어내리는 이유는 항상 존재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되어야지.
열심히 일 해서 정교사가 되어야지.
열심히 가르쳐서 멋진 선생이 되어야지.
그렇게 매일을 보냈었다.
아침 7시면 잠든 가족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게 조용하게 집에서 나왔고,
저녁 10시가 지나야 잠든 가족들이 깨지 않게 조용하게 집에 들어갔다.
주말이면 수업준비에 밀린 업무를 이유로 집 근처 카페에서 업무를 봐야 했었고,
교사의 특권이라는 방학에도 200명에서 300명 학생에 대한 400자 내외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한다고 모니터만 봐야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다고 나를 구하는 것도,
내 삶이 윤택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자기만족이었고 교사로서의 만족감과 지도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잠들어있는 아이의 종아리를 봤다.
한 손에 들어오던 오동통한 그 작은 종아리가, 일이라는 이유로 바쁘게 지내던 사이에 한 뼘이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졌던 그 해의 겨울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제조업을 하시던 부모님의 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물론, 10년 넘는 교직의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사교육에서 함께 하자는 사람도 있었고, 초임시절 함께 고생하던 지인들의 상당수가 부장이상에 교장 교감까지 있었으니 갈 수 있는 자리는 많았다.
그렇지만.
내 아이가 자라난 시간의 흐름을 부모님도 피하지는 못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교육에서 강사가 되는 것, 학교에서 교사가 되는 것. 양말을 방직하는 것.
모두가 먹고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었다.
더 많이 벌고, 더 적게 벌고는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는 것과 함께 쓰는 것도 중요했고, 얻는 것과 함께 잃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교직에서 얻는 사명감과 보람을 따라갈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내가 하는 일에 내가 설득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면 될 것 같았다.
가족과는 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부모님과 일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많은 충돌이 있었다. 서로 다른 일의 방식. 서로 다른 판단 기준.
물론, 아직 그러한 차이가 해결된 건 아니다. 여전히 충돌이 있고, 보람과 뿌듯함으로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기보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일이 더 많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가끔. 그리고 가끔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그렇게 부모님이 살아왔던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내려놓기.
어쩌면.
일의 가치가 충돌하는 이유는 더 좋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조급함에서 오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느려도 된다. 조금 미흡한 완성도를 보여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간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힘을 빼는 연습.
아이와 빨래방에 와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멍하게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도 보고,
빨래방 앞에 있는 놀이터도 다녀보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를 보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느끼면서
너와 내가 행복하게 보내는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느려도 괜찮다.
나도. 너도.
행복을 알고 누릴 수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