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핑계로 모두 관여해야 하는 건 아니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집 10살 어린이의 비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비염을 핑계로 눈을 이상하게 뒤집는 습관이 생겼다.
과연 비염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양쪽 눈을 대각선 우측으로 휙! 뒤집는 게 마치 신내림 받는 사람과 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런 현상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보니 틱장애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불편한 아이 같은 느낌을 주기에 그런 증상에 대해서 잔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비염 때문이라고 하던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자기도 인지하지 못 한 상황에 그런 증상을 보였고, 심하게는 거의 1분 간격으로 5~6회 이상의 눈 뒤집기 증상을 보였다.
잔소리를 해도, 끝이 없었고 오히려 증상에 가족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때려서라도 고쳐야 할 것인가?
만약 틱장애로 발전하면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과도한 주변인의 반응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틱장애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봤다.
그리고, 결정했다.
관여하지 않기로.
보름정도 기간을 두고, 그래도 심해지면 방법을 알아보자고.
신기한 건, 관여하지 않기로 하고 증상이 확연하게 사라졌다.
글쎄, 그 무렵부터 먹은 영양제 덕분인지, 기온이 변해서인지,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무엇이 원인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증상은 완화되었고, 언제부터인가 눈을 이상하게 뒤집는 행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적절한 무관심도 관심의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창 민감한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힘든 감정의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내가 만났던 보통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감정 변화에 대해서 항상 원인을 알아내려 한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랬어? 뭐 때문에 그랬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누구보다 논리적인 학문, 수학을 가르쳤던 나는 조금은 달랐다.
무슨 일이야? 지금 말하기 힘들어? 그럼 나중에 이야기해 줄래?
아니, 가끔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도 있어. 꼭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럴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정말 감정 기복의 원인을 따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재미있는 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아이들은 그 이유를 내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꼭 논리적이지 않는 경우에도 말이다.
무관심과 방관이 아니다.
때로는 무관심과 방관이 관심과 관여보다 더 힘든 경우도 있다. 어쩌면 무관심과 방관은 관심과 관여보다 더 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교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아이들의 실패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삶은 어떤 부분에서 더 빨리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아이는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아이들에게 오답노트를 만들라고, 본인의 단점과 약점을 보완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강조하지만, 아이들이 실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모는 항상 노심초사한다. 진짜 중요한 건, 아이가 실패하는 것이고 그 실패를 이겨내는 과정인데 말이다.
부모님과 제조업을 시작하고 가장 답답했던 부분도 그렇다.
어서 빨리 기계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정작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기계를 고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었다.
이건 이 정도로 조여야 하고, 이건 이 정도 각도로 맞춰야 한다고 하는데, 내 위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감각이라는 것도 상대적이라서 그때 그때 달랐다.
물론, 아버지의 논리도 이해는 간다.
마치 초보 운전자에게 핸들을 넘기는 것처럼, 기계 수리 과정에서 조금의 실수가 큰 문제로 연결되면 수십만 원 이상의 부속 가격이 증발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한다.
그렇다 보니 청소를 열심히 했다.
매일 아침 기계 청소를 하면서 기계의 구조를 관찰하고, 부속의 연결을 관찰했다. 가끔, 부모님이 자리를 비우면 일부 부품을 풀었다가 조여가며 나름의 방법을 익혔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을 다루는 건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기계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를 통해서 성장한다.
관심이라는 핑계로 실패의 경험을 갖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실패를 통해서 아이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보는 게 결코 쉬운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관여하는 그 에너지로 혹여나 실패하고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 어떨까?
마치 신내림을 경험한 것처럼 눈을 희번뜩 거리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서 아이에게 신경을 집중하면서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는 이후 상황까지 포용할 수 있도록 내가 수용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게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무관심이 항상 독은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관심이 항상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그냥 아무런 말 없이 옆에 앉아만 있어 주는 친구가, 수많은 말로 위로하는 친구보다 고마울 때가 있는 것처럼, 때로는 그냥 기다려 주는 게 가장 큰 응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