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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Mar 08. 2024

[대신쓰는 부모일기]2. 지금 필요한 건 '00'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직업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 편입니다. 보통 당장의 고민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레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어릴 적 기억, 부모님과 형제자매와의 관계, 학창 시절과 공부, 연애와 이별의 과정, 취업과 결혼 또는 이혼, 갖가지 상실과 트라우마, 꿈과 목표, 소망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펼쳐졌다 좁혀지길 반복하죠.


그러다 보니 이 시구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근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듣는 게 일인 내가 정작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는 얼마나 듣고 있지? 사람을 이해하는 게 일인 내가 정작 엄마, 아빠의 일생 얼마나 알고 있지?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서 좀 이래저래 알아봤죠, 시중에 부모님 문답 자서전 식의 선물 상품들도 많더군요. 대체로 여러 질문들이 적힌 공책에 부모님이 직접 적으시게 하는 것들이더라고요. 괜찮겠다 싶었지만 과연 부모님이 이걸 적으실까에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짬짬이 하나씩 쓰는 재미도 있으실 수 있지만 눈도 침침하시고 번거로워하실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또 부모님께 숙제처럼 던져놓고 전 아무것도 안 하는 모양새도 제가 원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직접 묻고 부모님께서 답하시는 걸 기록하자, 그 참에 엄마아빠랑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자고 마음먹게 된 겁니다.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떠나보낸 친구의 조언도 한몫했죠. "두 분 가시고 보니, 어떠니?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우린 뭘 하는 게 좋을까?", "이야기, 대화. 옛날 일에 대한 회고. 서로 오해가 있으면 풀고 좋았다고 얘기하기."


질문들은 워낙 시중에 있는 저런 상품들에서 소개되는 것들도 좋으니 빌려 쓰면 되겠거니와, 묻고 듣는 건 제 전공이니 자연스레 그때그때 새롭게 만들어질 것도 있을 것이기에 그리 어렵게 여겨지진 않았으니까요. "그래! 올해는 논문이나 다른 글 말고 부모님 이야기를 기록하자!"라고 다짐도 하게 됐죠.


그렇게 야심 차게(?) 부모님께 여쮜 볼 질문 리스트를 품고 친정에 방문한 지난 1월의 어느 날. 근데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었습니다. 뭐였을까요? 부모님께서 싫어하신다? 혹은 얘기를 안 하신다? 땡.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입이 도통 안 떨어지는 거예요. 뭔가 어색 민망할 것도 같고 어떻게 반응하실지 걱정도 되고 그러면서 제깍제깍 잘도 가는 시간을 보면 그냥 지내던 대로 있다 얼른 내 집으로 가서 편히 쉬자며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죠.    


지금껏 직업상, 연구활동상, 혹은 기타 등등의 이유로 참 많은 사람들을 소위 '인터뷰'하며 살아온 지라 내심 인터뷰하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는 사람이었는데, 네. 제게 가장 어려운 '인터뷰이'는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부모님이었던 겁니다. 어쩜 평소 그런 얘기들을 자연스레 해오신 분들이라면 저처럼 쫄보의 마음까지 느끼시진 않을 거 같아요. 허나 일상이나 그때그때의 필요한 대화 말고 부모님의 생각, 감정, 기억이나 추억 등등 좀 더 속내를 여쭤보고 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은 불효녀인 저로선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진짜 핵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묻고 답을 듣는단 건,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것들도 감당한단 걸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엄마가 이 질문에 화를 내시면 나는 어쩌지? 혹은 내가 서운해질 수도 있는 얘길 하심 어떡하지? 등등... 나 자신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너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라면 확신, 그리하여 무엇이든 감당하겠다는 결심이라면 결심이 있어야는 거죠.  


흠. 어쩌다 보니 좀 거창하게 얘기가 흘렀습니다만. 그리하여 부모님 이야기를 들을라 친다면 우선 필요한 건?


네.  바로 '용기' 한 스푼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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