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MBTI로 말하자면 'P'형답게 꼼꼼한 계획을 짜는 편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 큰 덩어리의 계획 두어 개는 세워두고 한 해를 시작하는 편입니다. 올해는 글을 일주일에 한개씩은 쓰는 루틴을 만들어보자, 논문을 1편은 써보자, 말하기 전에 3초 호흡하고 내 감정을 먼저 알아채는 습관을 들여보자, 운동과 식단관리 잘 해서 몸무게를 1키로만 빼보자 등등... 보통은 그렇게 나를 위한 계획들이었다면 올해는 좀 달리 세워봤습니다.
부모님께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드시게 하자.
한 달에 두 번은 찾아뵙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자.
계절마다 여행이나 나들이를 모시고 가자.
이렇게 부모님을 위한, 아니 사실은 누구보다 나를 위한 계획을 세워보게 된 거죠.
뵐 때마다 부쩍부쩍 늙으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내면에서는 소리 하나가 들려온 지 좀 됐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런 조급함이, 올해의 목표를 만들었을까요? 24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 새로운 목표들 중 어느 하나 시작도 안 했다면 이 글은 쓰지 못했을 거 같습니다만, 다행히 두 개는 시작했답니다.
우선 제철음식. 지금이 대구철이라죠? 몇 해 전 부산 출장지에서 현지인 손에 이끌려 먹어본 대구 지리(맑은탕). 항상 매운탕으로만 먹어왔지, 그렇게 뽀오얀 우유빛깔의 대구 지리가 오히려 대구살의 부드러운 맛을 더 살리면서 몸을 따뜻하게 보해주는 느낌마저 준단걸 처음 느낀 저는 몇년 째 '아, 이 맛있는 걸 부모님께도 맛뵈드리고 싶다'는 생각만 해왔었죠.
그래서 목표란 게 필요한 걸까요? 목표를 세우니 계속 걸리적거리며 신경이 쓰였던 터라 꼼지락 움직이게 됐습니다. 그 식당에서 생대구를 택배 주문해봤었던 동료에게 정보와 후기를 묻고, 식당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해보고... (뭐 대단한 걸 한 건 아니지만, 아실 거예요. 또 이런 자잘한 것들이 어떨 땐 참 안된단 것을) 그리하여 결국! 지난 주말에 부모님께 택배를 보내드린 것입니다! 짝짝짝(자축의 박수).
부산으로 여행을 모시고 가 맛뵈드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단 아쉬움도 있지만, 뭐 일단은 시작이 반이고 아쉬운 대로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나으니까요. 비록 부산으로 가진 못했지만, 원래는 계획에 없던 친정길을 대구지리 맛볼 핑계삼아 가게 되었고, "역시 냉동과는 다르다~", "맛있네~"를 연발하며 그 따숩고 뽀얀 대구지리로 한끼 맛있는 식사 같이 했으니 그 정도면 그런대로 90점은 줄 수 있지 않을런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표현 안 하기로는 '대한민국 1등 내꺼'인 아버지로부터 "덕분에 아주 잘 먹었다, 고맙다"는 문자까지 받았으니 뭐, 까짓꺼 100점 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 시작한 것이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 흠. 근데 이건 대구탕처럼 돈을 들여 할 수 있는 것과는 제법 차원이 다른 목표로, 꽤 많은 용기도 필요하더군요. 어쨌든 그것도 시작을 하게 됐죠, 비록 한 10분? 20분? 짧은 시간이었지만요. 게다가 저 대구 지리를 먹으러 간 날에도 더 해봤으면 좋았겠지만 속으로만 움찔움찔하고 게으름 피다가 또 끝내는 평소처럼 TV만 보다가 돌아오긴 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밖엔 못하겠지만요. 그래도 시작했다는 데 다시금 의의를 두면서...!
이 얘긴 다음에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