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미국 서부 로드 트립
여행 계획을 세우던 남편에게 처음 들은 그 이름, 산타 바바라라니. 왠지 그곳에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것만 같았다. 이름만으로도 마음에 바람을 불어주는 도시, 우리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산타 바바라로 떠났다. 캘리포니아라하면 로스 앤젤러스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큰 도시를 떠올리지만 그 사이에 위치한 산타 바바라는 포근한 여유가 넘치는 작은 도시다. 석양이 질 무렵 도착해 숙소 근처 Carpenteria State 라는 해변에 차를 댔다. 하얀 모래사장 너머 오렌지빛 석양으로 물든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남편과 나, 후배가 별다른 말 없이 바다를 바라봤던 그 순간, 나는 문득 이 환상적인 장면 앞에 다른 때와 달리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만의 이유가 있다. 나는 여행에서만큼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고 나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싶어했다. 그랬기에 누군가와 동행하는 여행을 썩 내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나이 스물셋 처음으로 먼 곳으로 간 여행지는 동유럽이었다. 기차를 타고 이동 중 어떤 한국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내릴 때 쯤에는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같이 다니자는 제안을 했다. 단번에 거절 할 수 없어 역을 벗어나자마자 그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그대로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내 자신이 때로는 유난을 떠는 것 같기도 했지만, 관계로부터의 피로는 일상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으니까.
그래서 이번 여행은 나에게 있어 작은 도전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 대학 후배 셋이 보름 남짓한 시간을 함께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염려한 것은 우리들의 '합'이었다. 남편은 굉장히 남자다우면서도 추진력이 있고 어느때나 돌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또한 여행을 가기 전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는 편이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감에 압도되어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과도하게 신경쓴 나머지 정작 스스로가 예민해지는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다. 후배는 나와 거진 8년 정도를 친언니, 친동생처럼 지냈지만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원래도 다소 여성적이었지만 취업 후 그녀의 직업이 더욱더 그녀를 친절이 몸에 베도록 만든 것 같았다. 남편과 후배는 우리의 결혼식 전후 한 두번 만난 것이 전부였고,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 왔으니 사실상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 여행을 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해외 여행지는 어떤 이에겐 평생 다시 올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곳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이기심이 자주 이빨을 드러내곤 한다. 단체활동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절제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바를 마냥 놓칠 수만은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선 일방적인 배려보단 적절한 타협과 조율이 필요하다. 결국 동행자들의 하모니가 그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도 갈등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여행을 진두지휘하던 남편은 우리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정신이 없었고, 나는 (늘 그랬듯) 그런 남편의 기민함을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 의지했다. 마음 여린 후배는 그런 우리 부부의 신경전 속에 낑겨 슬금슬금 눈치를 봐야했을 것이다. 그러다 산타 바바라로 출발하기 전날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우리의 갈등은 폭발하고야 말았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Fisherman's Wharf 라는 곳을 둘러보고자 차에서 내렸다. 조금 걷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남편에게 다시 차에 가서 겉옷을 챙겨와야겠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그 한마디가 이 여행의 긴장을 누그러뜨린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다. 남편은 특유의 화가 서린 눈빛으로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여기 있어."하고 차에 가서 옷을 챙겨 왔다. 그 후로 몇 분이 흘렀을까, 말 한 마디 없이 걷길래 내가 왜 화가 난것이냐고 물었다. "됐다"는 말을 반복하자 나도 참을 수 없어 "계속 이렇게 갈거면 난 안간다"며 걸음을 멈췄다. 내가 "우리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소라야(후배 이름). 넌 잠시 다른 데 가서 구경하고 있어."라 말하자 눈치 빠른 후배는 "두분, 저는 걱정마세요."라고는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근처 광장 계단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예상대로 두 사람을 신경쓰는 와중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불편한 것은 평소 자신의 성질대로 말하는 자신에게 한없이 고분고분하기만 한 후배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게 대체 무슨 못되먹은 생각이냐 할 수 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은 자신에게 욕을 할 지언정 과도한 예의보단 자신을 편하게 대해주는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우리와 다른 성향의 후배 앞에선 맘놓고 우리를 드러낼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가 나쁜 사람인 것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산타 바바라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챙겨온 컵라면과 햇반 등 주전부리를 펼쳐놓고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남편이 첫잔을 들이키더니 우리가 싸웠을때 당황했느냐고 후배에게 물었다. 그러곤 이제 편하게 이야기하겠다며 "너가 너무 착한게 싫다. 좀 못되게 굴어봐라."고 솔직히 말했다. 후배는 "형부, 저도 마음에 안드는 사람한텐 막 싸대요."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그간 여성스럽기만 했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에 박장대소했다. 만약 거기서 후배가 어찌할 줄 모르며 눈물이라도 떨구었다면 이 여행은 완전히 망한 것이었다. 후배는 그녀 나름대로 우리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 와중에 여행은 여행대로 즐겨야 했으니 여간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목구멍에 낀 생선 가시를 뱉듯 오고가는 술 한 잔 속에 서로의 입장 표명을 하고나서야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끈끈해졌다.
여행의 중간 지점이었던 산타 바바라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준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산타 바바라의 마법에 걸린듯 비로소 이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 시작했다. 20대의 나는 혼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 골몰해야만 참다운 여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볼 때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때로 그 기쁨을 배로 만들어주더라. 또한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눠 먹고 단순히 즐거워하는 일만으로도 여행은 쉽게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행의 힘.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내가 오래 알고 지내던 이의 다른 면을 알게 해주고, 그 사람을 한 뼘 더 깊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해준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 이번 여행은 혼자만의 기억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간의 추억들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