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뭄바이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인도였어. 너희가 태어나기 훠어어얼씬 전 대학생 때였지. 그전까지 제주행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었는데 갑자기 집에다가 여름방학에 인도에 갈까 한다고 말했어. 그다음 날부터 매일 식탁에선 오늘은 인도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인도의 사망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브리핑이 있었지. 나의 계획이 어딘가 잘 못 되었음을 깨달았어. 아, 행동 없는 계획은 얼마나 저지되기 쉬운가. 여름방학과 학기 내 알바를 해서 모은 얼마간의 돈으로 일단 비행기표를 끊고 집에는 통보하는 것이 옳은 순서였지. (나의 시행착오를 듣고 기억하렴! 조오흔 거 가르친다, 하는 너희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홍콩에서 갈아탄 비행기가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 상형문자처럼 낯선 글자, 짐작할 수도 없는 그들의 대화, 여성들이 입고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리. 그 아름다운 색감에 공항의 습도에 그 낯선 언어와 소음들에 나의 작은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어. 다음 날 뭄바이 시장에 가서 노랑과 녹색 빛의 천을 골라 펀자비 드레스(Punjabi dress)를 하나 맞췄어. 나도 그들의 옷을 입고 싶었거든. 재봉사님이 어찌나 몸에 꼭 맞게 만들어 주셨는지 옷을 입고 벗는 것은 불편했지만 그 옷만 입으면 나는 인도의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한 달간의 인도 여행 동안 사건 사고와 새로운 경험들로 매일매일 내 세상을 업데이트했어. (지금처럼 어딘가 좀 비뚤어진 경직된 고모를 생각하면 안 돼. 나도 말랑하고 유연했다고!)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을 만나 식당에서 서로 요리 레시피를 교환하는 것도 보고, 익숙한 일상을 등지고 훌쩍 떠나온 언니를, 동물 사진을 찍는 사진가를, 내 손에 헤나를 그려주던 다정한 인도 소녀를, 교묘하게 추근대던 느끼한 아저씨를, 발리우드 배우를 꿈꾸는 여인을 만났지. 이상하고 재미있고 놀랍고 멋진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갔고 부딪혔고 어울렸어.
어느 날은 콩나물시루 같은 3등석 기차에서 누군가 내 엉덩이를 만진 것도 같았는데, 또 어떤 날은 나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나의 가방을 모두 지켜봐 주기도 했지. 어느 도시에선 동네 행사에 초대받아 밤하늘에서 밑에서 춤을 추었고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을 대접받기도 했어. 화려한 말솜씨에 홀려 필요도 없는 전등갓이나 동물조각 따위를 비싼 값에 사기도 했지만. 나에게 인도는 밑도 끝도 없는 거짓과 몸 둘 바 모르겠는 호의와 숨 막히는 아름다움과 내 경계를 넘는 더러움이 한데 어우러진, 혼란하게 경이로운 곳이었어. 내가 알던 모든 것을 부수고 평범의 정의를 다시 써야 했지. 사람 사는 모습의 범위가 얼마나 넓어졌는지 두드려 맞는 느낌이었어.
집에 돌아와 거울을 봤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을 본 것 같았어. 내 모험이 끝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눈물도 조끔 났어. 인도에서 열심히 입고 다니던 새파란 어부바지와 낙타가죽 샌들이 그곳에서는 분명 이상하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왜 이렇게 튀는지 알 수가 없었어. 물만 묻어도 파란 물을 토해내던 바지에서 파란 물이 더 이상 빠지게 되지 않을 즘에 인도 앓이가 희미해졌던 것 같아.
너희들도 언젠가 그동안의 너희를 세상을 무너뜨리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어떤 생각이나 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럼 평생 그것을 짝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내가 이 지구의 다른 어딘가를 항상 꿈꾸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