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산치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노 쁘라블럼, 쁘라블럼스 인 파키스탄! (문제없어, 문제는 파키스탄에 있지)’이었어. (처음엔 그 억양과 특유의 제스처가 마냥 웃겼는데, 두 나라가 역사, 종교, 영토 분쟁이 엮여서 오랜 시간 적대적인 관계라는 건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지) 흐릿해진 내 기억 속엔, 기약 없는 기차의 연착도 몸짓 한 번에 한 번에 오르내리는 물건 값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상황도 노 프라블럼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안에 모든 것이 유연한 곳이었어. 내가 인도와 궁합이 좋았던 것은 사실 나에게 단단히 어그러질 계획이 애당초 없었다는 점일 거야. 노 플랜과 노 프라블럼은 사이가 틀어질 수 없어. 너희처럼 퍽 닮은, 사이좋은 이란성쌍둥이 같거든.
마치 꿈속의 일처럼, 산치라는 도시는 꽤 생생한데 어쩌다가 그곳에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 아마 적당한 교통편이 있어서 무작정 이동한 게 아닌가 싶어. 산치는 부처의 일생을 담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스투파가 있었고 타국에서도 성지순례를 올 만큼 유명한 곳이었지. 나는 스리랑칸 부디스트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어. 불자가 아니라도 스리랑칸이 아니라도 노 쁘라블럼, 어쨌든 나에게도 침대 하나를 내어 주는 유연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사실 산치에서는 할 일이 참 없었어.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식당에 가도 나는 대부분 첫 손님이었고, 음식을 주문하면 그제야 재료를 사러 시장으로 가는 일도 있었지. 갓 사온 재료로 만든 카레가 얼마나 맛있는지. 느릿느릿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동네 아이들과 크리켓이라도 한 판 하고 돌아와 씻으면 벤치에 누워 머리를 늘어뜨리고 말렸어. 스님들이 지나가며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시기도 했지.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그러면 ‘nothing means everything (무無가 곧 전체지)’이라며 그저 게으른 나의 빈둥거림조차 수련하듯 생각해 주셨어. 저녁이 되면 지는 해를 구경하러 스투파에 올라갔어. 노을을 보는 것, 산치에 있는 며칠 동안은 정말 그게 전부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에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몰랐지. 여행자의 특혜겠지만, 잔뜩 힘을 뺀 하루가 이렇게 충만할 수 있다는 기쁨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
스투파에 간 마지막 날엔 스투파를 관리하는 여성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지. 고맙게도 그녀의 오빠가 스쿠터를 타고 데리러 왔어. 셋이 스쿠터를 타고 나는 괴성을 지르고 둘은 깔깔대며 웃었던 그곳의 언덕길이 종종 생간 나. 그녀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아름다운 옷들도 구경하고 인도의 흥겨운 음악을 들었지. 그렇게 좋아했던 산치를 떠나는 날은 스님들이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오셨었어.
고모- 심심해! 를 입에 달고 사는 너희를 보면 나도 심심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던 때가 있었나 더듬어봐.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데설궂었던’ 어린 날의 나는 분명 너희보다 더 천방지축이었을 텐데 언제부터 심심한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인도의 산치에서부터였을지도 모르지. 너희가 언젠가 나와 같이 심심함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하고 아련한 과거를 추억하며 미래를 꿈꿔보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