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리뷰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여름

by 인디즈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경계들이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용돈을 얼마 받는지 이야기했을 때, 나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용돈을 받는 친구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던 경험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 같은 줄 알았는데, 미묘한 위계가 있음을 최초로 깨달았던 순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옅어지더라도 그 씁쓸하고도 위축되는 감각은 피부가 기억한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13살, 15살 소년들에게 남성 사회의 위계질서를 투영해 그러한 미묘한 경계를 가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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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은 다름 아닌 신발이다. 주인공 '기준'이 가진 아디다스 슈퍼스타. 왜 하필 신발이어야 했을까?

어릴 적 초등학교 복도의 신발장을 떠올려본다. 누구는 가지런히 두었고, 누구는 대충 두어 한 짝이 누워 있다. 떨어진 신발 한 짝이 복도에 덩그러니 있기도 한다. 누군가의 신발은 다 해어지고 꼬질꼬질 때가 타 있다. 누군가의 신발은 유명 브랜드의 로고가 그려져 있고 잘 관리된 듯 깨끗하다.

신발만 봐도 알 수 있다. 신발을 둔 아이들이 어떤 성격인지, 그리고 가정 형편은 어떠한지. 안 그래도 발육이 빨라 신발을 자주 바꿔야 하는 나이에, 매번 그런 신발을 신겨주려면 가정에 상당한 경제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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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들 앞에서는 경계가 허물어진다. 아니, 허물어진다기보다는 애초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영문 형제의 집을 바라보는 세 명의 남성 사이에서 선명하게 대조되는 점이다.

기준은 자신의 집과 영문의 집이 어떤 점에서 다른가에 별 관심이 없다. 차이를 언뜻 느끼기는 하겠지만,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관심 있는 건 단지 게임 실력이다.

하지만 영문을 보복하기 위해 찾아온 옆 동네의 불량 소년이나 기준의 아빠는 어떠한가? 아마 고등학생일 것으로 추정되는 불량 소년들은, 영문의 집에 무단 침입해 처음 뱉는 대사가 이것이다. '거지 새끼가?‘
기준의 아빠 또한 영문의 집을 눈으로 쓱 훑어보며, 무시하는 뉘앙스가 은근하게 깔린 태도로 영문에게 말을 건다.

그래서 관객은 모든 사건을 겪은 후에도 '네가 쟤들이랑 같은 줄 알아?'라고 혼내는 경찰에게 여전히 '뭐가 다른데요?'라며 스스럼없이 맞받아치는 기준에게 놀랄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 우리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대답이기 때문에.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절은 이때가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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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의 대답을 단지 철없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경제적 우위에 있는 기준은 왜 영문을 흉내내고 싶었을까? 영문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위축되고 씁쓸함을 느껴야 할까.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잃은 것이 없는 기준과 삶이 송두리째 뒤틀린 영문이 남아 있다. 가장 명확한 차이는 기준은 떠나지만 영문은 시골에 남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다. 떠날 수 있는 자와 남아야만 하는 자 사이의 경계. 기준이 언젠가 그 경계를 깨닫게 될 때, 과연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뭐가 다른데요?"라고 묻는, 기준의 아직은 순수한 목소리가 맴돈다.




인디즈의 독립영화 리뷰

# 김보민 bebaed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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