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오
- 여보슈, 게 아무도 안 계시우? 형님! 놀부 형님! 나, 흥부 왔소잉.
큰 집 앞에 도착한 지 일각이 더 지났는데도 대문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인기척이 있나 싶어 아버지와 난 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처럼 대궐 같은 집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 아부지, 이상해여! 저번에 왔을 때엔 할아범이 나와 문을 열었는디, 오늘은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네여?
- 그러게 말이다잉. 어찌 된 일인지 도통 알 수 없구먼. 뭔 변고라도 있는겨?
- 아부지, 안 되겠시유. 담장에라도 매달려서 안을 좀 살펴봐야겄슈.
- 용순아! 아가, 그러다 다칠라 아서라. 그만두거라잉.
나는 걱정하는 아버지의 말에 개의치 않고 무작정 대문 옆 담벼락으로 다가갔다. 발 뒤꿈치를 추켜들고 담장 기와에 두 손을 뻗었다. 가까스로 손끝이 겨우 닿았지만 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아버지가 멀찍이서 머뭇대며 쳐다보다가 성큼 내 곁으로 다가와 양다리를 벌리고 섰다. 그리고 내 허리춤 밑으로 양손을 넣고 둥글게 감싸 안아 붙잡은 다음, 나를 있는 힘껏 위로 들어 올렸다. 이내 내 발이 땅에서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양팔에 힘을 주고 담장 위를 손바닥으로 짚으며 올라갔다. 비로소 큰 집 앞마당이 한눈에 훤히 보였다.
쿵덕, 쿵덕. 큼지막한 떡메를 들고 위아래로 번갈아 절구에 내리치는 사내가 보였다. 큰 아버지, 놀부였다. 그 곁에 큰 어머니가 엉거주춤 앉은 자세로 절구 속 떡을 요리조리 뒤집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 내외가 마당 가운데서 떡방아를 찧고 있었다. 큰 아버지 머리에는 검은 정자관이 씌어져 있었다. 그게 머리 뒤로 삐딱하게 기울어진 채로 이리저리 들썩이는데 금방이라도 훌렁 벗겨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큰 아버지 바로 곁에서 흰 무명천을 머리에 뒤집어쓴 큰 어머니가 본래부터 툭 튀어나온 입술을 앞으로 더 쭉 내밀고 뭐라, 뭐라 투덜대고 있었다. 큰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떡메를 치다가 갑자기 못마땅한 표정으로 떡메를 절구통에 내동댕이치면서 소릴 질렀다.
- 아니, 이 여편네가 시방 똑바로 안 하는겨? 박자를 딱딱 맞춰서 해야제.
- 나 원참! 생일 상으로 대충 국이랑 밥만 차려서 잡수면 되지 뭐, 무슨 떡을 해 먹는다고 이 난리유?
- 시끄러워잉! 뭔 말이 이리 많은겨! 입 다물고 얼른 떡이나 제대로 뒤집으잉.
- 에고고, 내 팔자야! 이것들이 싹 다 야반도주를 해갖고, 내가 미쳐서 환장하겄네. 에구구구!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길이 없어 고갤 옆으로 숙이고 담벼락에 기대 서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내게서 순간 당황한 기색을 읽은 아버지가 안에 있는 사람을 크게 불러보라 다그쳤다. 나는 입가에 두 손을 둥글게 오므리고 윗배에 힘을 끌어모아 힘껏 소리쳤다.
- 큰 아부지! 큰 아부지! 예 좀 보셔유. 저희가 왔는디, 얼른 문 좀 열어주셔여! 예?
아직까지 덩치가 작긴 해도 내 목소리 하나는 천둥처럼 우렁찼던 걸까. 떡메를 치느라 아무 소리도 못 듣던 놀부 아버지가 갑자기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담장 쪽으로 고갤 돌렸다.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지고 입이 헤벌어져서 '네가 왜 거기 있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 네 이년! 넌 누군데 불쑥 내 집 담장 위로 올라온 거여? 필시 우리 집 재물을 훔치러 온 도둑인 게로구나 잉!
큰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떡메 방망이를 거꾸로 세워 잡고 금세 내게 달려들 것처럼 씩씩대며 소리쳤다. 큰 어머니도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부근에 내려놓았던 커다란 나무 밥주걱을 덥석 집더니 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꽥 소리를 질렀다.
나는 둘이 거의 동시에 고함을 질러대는 바람에 벙어리처럼 입을 옴짝달싹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두 내외가 흥분해서 꽥꽥 소리치고 날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꼭, 나 죽겠다 울부짖는 돼지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 아녀여! 지는 용순이어유! 작은 집 셋째 딸, 흥부 아부지 딸이란 말이어유! 울 아부지도 지랑 같이 오셨슈.
- 잉, 흥부? 변변찮은 그 놈, 흥부 말이제?
내 말을 담 밑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담 너머로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 형님, 지 왔소! 문 좀 열어주셔잉! 오늘이 형님 생신이라 동생이 감축드리러 왔당게요!
드디어 대문이 열렸다. 심술보로 말하자면, 우리 큰 어머니도 큰 아버지 다음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숱 많고 짙은 눈썹 끝이 양쪽 관자놀이를 향해 치켜 올라가 있고, 화장 분을 칠해 가리긴 했으나 검은 기미가 낀 눈가 주름, 위아래 수시로 우릴 훑는 탁한 눈동자. 문을 열어주러 나온 큰 어머니의 잔뜩 찌푸린 얼굴에서 이미 아버지와 나를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아니, 작은 서방님! 아침부터 뭐 할라 오셨소? 우리 집에 오라고 기별한 적이 없는디 별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