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

조폭 영화답지 않은 멋 부림

by IndigoB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 중

오직 하나

술잔 속 떠올랐다 흩어지는 얼굴

처음부터 흔들렸던 마음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


거친 남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어두운 조직에서

완벽하고 깔끔한 일처리로

보스에게 인정받던 남자

어느 날

지시받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명령을 어긴다.


이를 눈치채고

모멸감(?)을 느낀 보스가

남자를 죽여 제거하려 하고,

남자는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항변해 보지만

여전히 보스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악에 받친 남자가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목숨을 구하고

보스를 찾아가

자신에게 왜 그랬냐고

분노를 터트리며 반격한다.


남자는

결국 자멸의 길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너무나 달콤했기에

깨고 싶지 않은 슬픈 꿈을 꾸며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는다.


개봉한 지 십수 년도 더 지난 영화이다.


당시 조폭 갱단 소재 영화가

정통, 코믹, 가족물 등 여러 형태로 제작되어

연달아 히트했다.


그중에서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뭔가 달랐다.


감독이

욕심을 부린 같다.

주인공 스타일과 인물 대사

멋있는 느낌을 주려 뽕을 잔뜩 넣었다.


뭘 또,

이렇게까지 힘주고 멋 부리면서

대본 직접 쓰고 영화를 찍었을까.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린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이 죽는 누아르다.

홍콩 영화 《천장지구》의 유덕화가

떠오른다.


사실 나는

폭력조직을 미화하는 영화 대부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 유명한 《 대부 》 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친구들끼리

결국 서로 배신하고 죽이는 내용인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는

걸쭉한 부산 사투리에

지역적, 시대적 정서를 잘 버무려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계도와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 현장에서 군대에서처럼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이를 당연시 여기며 폭력을 받아들이던

그 시절 세대들의 공감을 이끌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를 제대로 관람한 적 없다.

그저 유명해진 대사 몇 마디를

여기저기서 패러디한 걸 접한 게 전부다.


《달콤한 인생》 에서

주인공은

폭력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일반적 조폭 이미지를 따른 인물이 아니다.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듯한 호텔은

거대 조직 보스가 소유한 사업체다.

그의 부하들이

나이트클럽, 레스토랑 등을 각자

도맡아 운영한다.

그중 호텔 레스토랑을 주인공이 맡고 있다.


그리고

보스의 젊은 애인, 20대 첼리스트를

따라다니며 챙기고

감시, 보고까지 하도록

지시를 받은 남자는

조용히 그리고 묵묵하게 일을 수행한다.


음대생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자는

가끔씩 집으로 찾아오는

보스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사는데,

그녀는 어쩌다 숨겨진 내연녀가 된 걸까.


맑고 청순한 얼굴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는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다.


남자의 마음이 점차 흔들리고,

그녀가 따로 만나는 남자가 있는지

알아본 후 보고하고 처리하라는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일을 무마시킨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살인청부업자가 갑자기 나타나

다짜고짜 사과하라고, 남자에게 요구한다.

주인공은

이 뜬금없는 요구를 제대로 묵살하고 무시한다.

그 이후부터 그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친다.


스포일러가 되면 곤란하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련다.


보스가

'모욕감 운운' 하는 대사는

재수 없을 만큼 겉멋 든 애매모호한 대답이라

자꾸 곱씹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 답은 최근 발간한 각본집 부록에 있었다.


나는

남성향 조폭 소재 영화가

《 달콤한 인생 》 이전, 이후로

나뉘었다 생각한다.

거친 수컷(?)들 이야기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끝까지 지켜봤던

나름의 가치과 매력이 있었던 작품이다.


주인공이

창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허공에다 섀도복싱하는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앞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사실은

그저 주인공의 상상이나 꿈이 아니었냐는,

관객들 간 논란이 일었던 엔딩 씬이기도 하다.

제목이 역설적이다.

달콤한 인생을 꿈꾸지만

현실은 알고 보면 시궁창 같고

차라리 쓰디쓴 병맛에 가깝다.

너무 달콤했기에 깨고 난 후 슬픈 꿈.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어 슬픈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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