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보다 사냥에만 더 몰두하는 사회
제작: 2012년 덴마크 영화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
주연: 매즈 미켈슨 -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개봉당시 관람하지 못했다가 최근에야 찾아보게 되었다. 주연배우 '매즈 미켈슨'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이야기는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이 직접 아동학자에게서 입수한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시골 마을 유치원 교사 '루카스'가 어느 소녀의 거짓말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고를 당하는 내용이다.
※ 일부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대략적 줄거리는 이렇다.
한 시골 동네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루카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온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이 많은 개 패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남자다. 그는 유치원에 출근하자마자 모든 아이들이 몰려와 그에게 귀여운 장난을 거는 등 유치원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교사이다. 그는 아내와 이혼한 상태로 아들과 양육권 문제로 분쟁이 있었으나 아들이 아버지와 살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유치원에 새로 부임한 여교사, 나디아와 서로 호감을 느끼고 교제하면서 한창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
한편 루카스의 친구 중 한 명인 테오에게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혈기왕성한 큰아들 토스튼과 유치원생인 막내딸 클라라가 있었다. 클라라는 바닥에 금이 많이 그어진 보도블록 길을 꺼리며 유치원도 스스로 찾아가지 못할 만큼 내성적이고 혼자 놀곤 하는 아이였다. 클라라는 가끔 루카스와 등굣길에 같이 가거나 그의 개와 함께 산책을 즐기기도 했는데, 루카스는 교사인 동시에 친구의 딸인 클라라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이에 클라라는 루카스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낀다.
어느 날 부모님이 외출하고 집에 없을 때 토스튼이 친구와 함께 아이패드로 음란물을 보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방으로 달려가다가 길목에 있던 클라라에게 어떤 남자의 성기와 구강성교 하는 여성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거 완전 막대기 같지 않냐?"라며 짓궂게 놀리고 지나간다. 클라라는 그 즉시 난생처음 본 성(性)의 적나라한 모습에 심히 충격을 받은 듯 어쩔 줄 몰라 당황한다. 이 일은 이후에 클라라가 루카스에 대해 거짓말을 꾸며낼 때 큰 영향을 준다.
루카스에게 호감이 있던 클라라는 유치원에서 루카스를 위한 선물을 몰래 그의 옷에 넣어두고,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잠깐 죽은 척하고 누워있는 그에게 살짝 다가가 입술에다 키스를 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우려를 느낀 루카스가 클라라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는데 네가 준 거니?"라고 묻는다. 하지만 클라라는 본인이 준 게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에 루카스는 선물에 클라라라고 쓰여있지 않느냐며 다시 묻고 클라라는 다른 애들이 장난친 거라며 둘러댄다. 루카스는 정중하고 엄하게 선물을 도로 가져갈 것을 요구하며 "입에 키스를 하는 건 엄마랑 아빠랑만 하고 다시는 하지 말라"며 잘 타이른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서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한다.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클라라는 밤늦게 유치원에서 부모를 기다리던 중, 마침 유치원 원장이 곁에 있을 때 아래와 같이 말한다.
- 루카스 선생님이 싫어요. 멍청하고 못 생겼어요. 고추도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원장은 "너네 오빠와 아빠도 있잖니"라고 되묻는다. 이에 클라라가 상당히 중요한 언급을 하는데...
- 선생님 고추는 앞으로 뻗어 있었어요. 막대기처럼.
떡밥을 제대로 물은 원장이 곧바로 루카스를 호출하고 그에게 "아이들 중 누가 당신의 성기를 봤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위 파악을 위해 며칠 집에서 쉬도록 지시한다. 루카스는 떨떠름하고 억울했지만 자신이 결백하다는 생각에 일단 원장의 명령을 받아들인다. 루카스를 귀가시킨 원장은 바로 클라라를 부른 뒤 아동 상담원을 찾는다. 상담원이 클라라에게 원장에게 진술한 내용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데, 클라라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계속 반복한다. 원장과 상담원은 머뭇거리는 클라라에게 유도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강요함으로써 루카스의 성추행 혐의를 거의 확실시한다.
이 클라라의 진술과 답변은 상당히 애매모호하게 표현되며,
곧이곧대로 믿기엔 힘든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른들, 특히 유치원 원장은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믿음 하에 클라라가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리고 루카스는 아들 마쿠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는데, 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루카스의 혐의를 마쿠스의 어머니에게 알려줬다고 울먹거린다. 루카스가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서지만 이미 원장이 마을 사람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루카스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퍼트린 후였다. 원장이 벌써 경찰에 신고 접수까지 했고, 루카스를 역겨운 아동 성범죄자로 취급하며 그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그 와중에 원장 입에서 클라라의 이름을 듣게 된 루카스. 그는 낙담하면서 유치원밖으로 쫓겨 나간다. 평소 그에게 장난을 걸며 달려들던 아이들이 온 데 간데없고, 모두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유치원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루카스는 그 길로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친구인 테오를 찾아가는데, 테오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의 딸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린 클라라의 말이 맞는 것 같다며 냉정하게 그를 문전박대한다.
그리고 원장은 루카스의 연인인 나디아를 따로 불러 루카스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발언을 한다. 나디아가 진실을 알고자 직접 루카스의 집에 가는데, 때마침 클라라가 패니와 산책을 하고 싶다며 루카스 집을 찾아온다. 이에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정말 그런 얘길 원장에게 했냐고 묻고, 역시 클라라는 아리송한 대답으로 일관한다. 결국 루카스는 차분하게 클라라를 타일러 돌려보낸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디아가 루카스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루카스는 지금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냐며 실망한 얼굴로 나디아를 내쫓는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클라라가
'그거 다 지어낸 말이었다'라고
엄마에게 실토하지만,
클라라 엄마는 애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러는 걸로만 생각하고
딸의 말을 귀담아듣질 않는다.
이제 클라라도 주변인들의 의견을 듣다가 정말 자기가 루카스에게 나쁜 일을 당했다는 착각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클라라는 루카스와 만날 때마다 울면서도 자기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조차도 헷갈려한다. 이후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경멸스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직장까지 잃는 등 폐인 생활을 하게 되는데......
▶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어
믿음의 붕괴, 거짓말에 대한 객관적 검증 결여, 의심, 불신, 혐오, 마녀사냥, 주관적 확증편향, 편견, 아버지의 명예 실추,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자세, 사회적인 낙인,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
▶ 영화를 보면서 주의 깊게 볼만한 장면
- 미성숙하고 감정이 불안한 클라라를 오히려 달래고 지켜주려 하는 루카스 : 성숙하고 훌륭한 어른의 모습
- 마트에서 사람들이 루카스를 홀대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장면 : 부당한 폭력을 참고 견디며 때를 기다리는 루카스.
-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로 가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과 예배를 보는 루카스 :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힘들게 견디면서 결백을 밝힐 기회를 기다리는 영웅적인 면모
▶ 결말까지 보고 나서 느낀 점
고립된 루카스...... 그리고 시작되는 마녀사냥.
미성숙한 사고를 하는 어른들이 확증편향적인 편견에 의해 속단해 버리고, 지우지 못할 낙인과 따돌림, 폭력을 아무리 '말'로 항변하려 해도 귀를 닫은 채 듣지 않으며 '폭력'으로 앙갚음하려는 사람들. 관객이자 관찰자의 눈으로 보고 있자면 공동체의 정의가 늘 맞는 것인가?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 교회 예배 장면에서 억울함과 원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루카스의 시선, 여전히 의심과 미움으로 따가운 사람들의 시선,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관객)의 시선이 한데 어지럽게 뒤엉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 고발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 어딘가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뜨끔하고 서늘해진다.
거짓말에 속아, 의심만을 했고,
사실을 외면했으며,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
사냥의 타깃은 동물이 아닌 '인간',
사냥을 위해 쓰이는 건 총이 아닌 '말'
#THE_HUNT #더헌트 #덴마크영화 #마녀사냥 #확증편향 #허위고발 #사회문제 #매즈미켈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