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이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 몇과 뒷산에 올랐다. 높은 산도 아니었고 능선을 따라 길이 나 있어서 힘들지 않게 중턱까지 올라 시내를 바라보며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땀이 식은 후 다시 산을 오르려다 보니 저만치 앞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슬슬 뒷걸음질을 치는데 녀석이 스스로 똬리를 풀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뒤돌아 산 아래로 내달았다. 살짝 돌아보니 녀석도 나를 향해 속력을 내는 중이었다. 결국 오른쪽 발목을 물렸다.
그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어지는 기억은 능선에 주저앉아 양말을 벗고 뱀에 물린 자리를 부여잡은 내 모습이다. 두 개의 구멍이 생겨 있었다. 피가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독사는 아니었는지 그 때문에 병원엘 가거나 앓아누운 기억은 없다. 하지만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던 뱀을 그 사건 뒤로 더 싫어하게 되었다. 동물원에 가서 뱀을 보면 혐오감과 함께 발목 언저리가 어쩐지 가려운 느낌이 들곤 했다. 어느 여름 향림사 근처 늪에서 조그만 물뱀을 본 적이 있는데 기겁을 하며 도망쳤던 기억도 난다. 우습지만 뱀은 길든 짧든 뱀이고 두렵다.
아이로니컬 하게도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아버지가 목장을 경영하신 적이 있는데 그 목장 뒷산에는 뱀이 무척 많았다. 목동들을 따라 건초를 베러 지게를 지고 산길을 걷다가 발 밑이 물컹하다 싶으면 십중팔구 뱀이었다. 능사는 1미터 남짓한 긴 녀석이 많고 토실했고, 초사는 짧지만 화살처럼 빨랐다. 밭 일을 하다가 보면 가끔 날다시피 도망치는 녀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뱀에 물린 적이 있어서 조심한 탓인지 목장에서 뱀에 물린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소 파동으로 목장을 접었고 다시 도시로 이사했다. 그 후로 다시 농촌살이를 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