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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록 속에 감사를 쌓아가는 덕분 선생님

"여학생 스포츠클럽 파이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이에요"

by 인디스쿨
발령 첫 날,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선생님만의 치트키는 무엇인가요? 덕분 선생님의 치트키는 다름아닌 ‘축구’였습니다. 덕분 선생님은 “선생님과 축구 할래?” 한 마디로 아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덕분 선생님의 지난 교직 여정과 지금의 여정에는 ‘교사’와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이 뒤따르는 중인데요. 덕분 선생님은 매일의 기록으로 선생님의 여정을 단단하게, 또 부드럽게 지나는 중입니다. 다른 한 축에서는 선생님이 담당하는 ‘여학생 스포츠 클럽’이 선생님을 지탱해주고 있고요. 경남에서 6년 째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덕분 선생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려요.


뷰: 선생님 안녕하세요, 바쁜 월요일 저녁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덕분: 안녕하세요, 인디스쿨에서 ‘덕분이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경남 창녕에서 근무하고 있고, 올해로 6년차 교사가 되었습니다.


뷰: 현재 학교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덕분: 체육 관련 업무와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가 제게는 두 번째 학교인데 무척 즐겁게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만 하더라도 교사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교사의 업무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무척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12.27.54.png 스승의날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뷰: ‘할 만 하다’가 아니라 ‘즐겁다!’니, 강한 긍정이라고 느껴져요. 어떤 일이 선생님을 즐겁게 하는지 궁금해요.지금부터 선생님의 교직 여정을 같이 톺아보면 좋겠습니다.

덕분: 좋습니다!


뷰: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교사가 되셨어요?

덕분: 어린시절 저를 떠올려보면 ‘교사’,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운동하는 걸 정말 좋아했던 반면 공부와는 거리가 있는 학생이었거든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학원 수학 선생님을 만나면서 변했어요. 제가 선생님에게 반해버렸고,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거든요. 멋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성적이 정말 많이 올랐어요. 공부를 못하던 제가 어느 순간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어요. 항상 달고 살던 공부 열등감이라는 것을 선생님 덕분에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선생님이라는 존재로 사람이 이렇게나 바뀔 수 있다니! 그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요. 그때부터 교사를 꿈꿨어요.


뷰: 그때 만난 수학선생님께서 선생님의 변화의 원동력이 되어주신 셈이군요. 많은 교사 중 초등교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덕분: 사실 초등교사는 제가 희망하던 교사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저는 중등 수학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입시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차선으로 교대에 진학했어요. 원하던 결과가 아니니 당연히 불만도 많았어요. 입시 준비를 하면서 워낙 많은 진을 쏟은 터라 임용에 쏟을 힘이 남아있기는 한 것인지 자신이 없기도 했고요. 대학 진학하고 2년은 방황을 했어요.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12.28.10.png 야외 체육 수업, 열심히 설명하는 선생님과 귀 기울여 듣는 아이들

뷰: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학창시절부터 줄곧 입시에 열심히 매진한 만큼 허탈함이 컸을 것 같아요. 2년간의 방황기를 어떻게 훌훌 털고 일어나셨어요?

덕분: 첫 실습 때 교육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어요. 제가 중등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성적을 올려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중학교 시절 성적이 수직 상승하고 우등생이 되면서 제 삶이 바뀌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변한 제 삶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후회와 고민이 공존했어요. 저는 운동을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였거든요. 운동은 물론이고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데 공부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니 어떤 욕망이 저를 억누르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실습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학생을 성장하게 하는 건 성적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오히려 즐거운 경험, 선생님과의 건강한 유대로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걸 봤어요. 성적으로 아이들 인생을 바꾼다는 제 교육관이 잘못된 생각이란 걸 알 수 있었고요.


뷰: 기억에 남는 실습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덕분: 첫날 받았던 충격이 잊히지 않아요. 어떻게 첫날부터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죠? 그 모습이 어린 시절 제 모습 같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그리고 공개수업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공개수업 끝나고 완전 망한 것 같아서 풀이 죽어 있었어요. 그런데 담당 선생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선생님, 망했다고 하지 마세요. 수업 시간에 발표 한 번 하지 않던 아이가 선생님 수업이라고 집중해서 듣고, 손 들고 나와서 문제도 풀었어요. 그러니까 망했다고 생각하지 마셔요.” 한 번의 공개수업이었지만 실습생이던 제게 동기부여를 주기에 충분했어요. 이때를 계기로 반수하겠다는 마음도 접고, 부모님과의 마찰도 줄이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뷰: 실습에서 은인 같은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신 거네요. 첫 발령 받았던 순간 기억하세요? 실습의 기억이 좋았던 지라 기대하는 바가 더 크셨을 것 같아요.

덕분: 당연히 기억하죠. 잊을 수 없어요. 6학급 학교의 3학년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학급 수는 적었지만 학급당 학생 수는 18명으로 적지 않은 편이었죠. 9월 발령으로 2학기 때 투입이 되었는데, 그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폭탄 반이었어요. 아이들 한 명 한 명 개성과 문제 행동이 남달랐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신규이던 제게 아이들을 이겨낼 심지도, 힘도 없었어요. 아이들을 제지하는 것도 어려웠고, 아이들이 소리치면 도리어 제가 자리를 피해 버리는 식이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예방주사를 제대로 놔주셔서 감사하기도 해요. 그 이후로는 정말 어떤 학급, 어떤 아이를 만나도 다 견뎌낼 수 있었거든요.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12.28.19.png

뷰: 굉장한 예방주사를 맞으셨군요. 발령 첫날 선생님만의 치트키를 아이들에게 쓰셨다고 들었어요.

덕분: 첫 발령을 앞두고 아이들과 어떻게 친해질까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저 역시 고민을 하다가 치트키를 꺼냈어요. “선생님이랑 축구할래?”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아이들이 제가 공을 잘 차기도 하고, 선생님이랑 공 차는 것 자체가 좋으니 나중에는 “선생님 공 안 차요?” 물어보는 지경이 되었어요. 점심시간마다 아이들과 공을 찼어요. 제가 원피스를 입고 출근하는 날에는 공을 안 차는데, 원피스를 입고 오면 옷을 보자마자 아쉬워하더라구요.


뷰: 선생님과의 축구, 그것도 어쩌다 한 번 나오는 ‘특식’ 같은 축구가 아니라 매일 같이 축구라니…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겠어요.

덕분: 아이들뿐 아니라 제게도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아이들과 공을 차면 즐겁거든요. 남자들과 같이 공을 차야 한다거나 경기를 뛰어야 한다거나 하면 실력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공을 차면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서로가 순수하게 공을 차는 거예요. 지금은 무릎이 아파서 공을 잘 못 차고 있는데, 바라기는 아이들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 ‘남자아이들 vs 저와 여자아이들’로 팀을 꾸려 경기를 해보고 싶어요.


뷰: “파트너와 함께하는 운동은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관계 만족도를 높여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의 유대감,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남다를 것 같아요.

덕분: 유대감은 확실한 한 팀이에요.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함께 공 찰 수 있게 끼워주기도 하고 다른 학년들이 여자아이들이랑 공 차기 싫어서 쫓아 보내면 남자아이들이 여자 아이들 편을 들어줘요. 운동장은 다같이 쓰고 오늘은 5학년 쓰는 날이니까 여자아이들도 공 찰 수 있다고 똑부러지게 말해요. 서로를 챙기고 서로에 대한 애착이 참 단단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운동할 때 만큼은 승부에 살짝 눈이 감기워서 서로를 상처 입히는 일도 있어요. 상대를 존중하는 스포츠 펄슨십은 아직 부족해서 앞으로는 그 마음을 제일 중요하게 심어주고 싶어요.


뷰: 하지만 앞서 말씀해주셨듯 매일이 지금처럼 즐거운 교직생활이었던 건 아니라고 하셨었죠. 힘든 시간도 있으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 시간을 극복하셨는지 궁금해요.

덕분: 대다수 선생님들께서 힘들어 하시는 듯 저 역시 버거운 시절이 있었어요. 업무도 힘들었고, 민원도 많아서 딱 1년만 하고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할 정도로 밀접하게 일을 해야 하는 환경이었어요. 그러다보니 힘든만큼 보람이 크기도 했지만 더 버텨낼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무슨 복이 터졌는지 2023년은 첫날부터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느낌이 끝까지 갔습니다. 학교에서의 모든 순간을 즐거워하며 하루하루 시간 가는 걸 아까워 하는 아이들, 제 존재와 교육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시는 학부모님, 제가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해주시는 관리자분을 만난 해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뷰: 좋은 학생, 학부모, 관리자… 모든 인연이 좋기란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덕분: 그러게요.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예요. 5학년 아이들이었는데 5학년 답지 않게 교사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 아이들이었어요. 그해 아이들에게 많이 격려 받고 배웠어요. 그해를 보내며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12.28.32.png 선생님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포스터

뷰: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덕분: 순간순간 아이들에게 배우는 게 많았어요. 일례로 당시 지도하기에 답답한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 옆에서 발 맞춰 함께해요. 한 아이는 수학 보충수업을 혼자 남아 들어서 부끄러워 하는 아이를 기다렸어요. 집 가는 방향이 완전히 다른데도요. 저보다도 아이들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줄 때면 답답하다고 한 숨 쉬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어요.


미술 시간에 동화책을 만드는데 한 아이가 '제가 만든 이 책은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부끄러워요.'라고 했어요. '부끄러움은 곧 성장을 말하는 거야. 부끄러움을 견디고 나면 나는 더 성장하거든. 선택을 하면 돼. 부끄러운 게 싫어서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건지 아니면 부끄러움이라는 찰나의 마음을 이겨내고 성장할 건지'.


꽤나 멋드러지게 대답을 했다고 했는데요, 잠자코 듣고 있던 짝꿍 아이가 '부끄러울 게 뭐 있어! 내가 열심히 했다는데!'라 소리치는 걸 듣고 놀랐어요. 최선을 다한 일에는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이에게서 배웠습니다. 있어보이는 백마디 말보다 한 마디 힘찬 말이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단 것도 알았구요. 게다가 아이들이 저를 격려하기도 했어요. “에이 선생님 뭐가 걱정이예요?잘 하시잖아요!”


한번은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학부모님께서 제게 너무 고마워하시는 거예요. 학교에서 굉장히 무뚝뚝한 남자 아이의 학부모님이셨는데, 무뚝뚝한 그 아이가 집에만 가면 그렇게 학교 이야기를 했대요. 아이가 학교와 학부모의 가교 역할을 해준 셈이죠. 학부모님께서 굉장히 고마워 하시면서 제 교육을 지지해주셨어요. ‘부디 오래도록 좋은 선생님으로 남아주세요’하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요. 그때 정말 큰 위로와 확신을 얻었어요. ‘내 교육이 틀린 게 아니구나. 조금 더 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확신이요.


뷰: 정말 선물 같은 한 해였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학생, 기억에 남는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동료 선생님도 계실까요?

덕분: 그럼요. 정말 많은데… 딱 세 분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첫 번째로는 4학년 실무실습 때 만난 김수미 선생님이예요. 수업 준비는 물론이고 아이들과의 상호작용까지, 제 눈엔 무엇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게 없는 선생님이셨어요. 6학년이 다루기 힘든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아이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고 관계 맺으시는 걸 보면서 ‘나도 아이들과 저렇게 지내야지!’하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어요. 임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고요. 김수미 선생님은 제 추구미 자체인 선생님이세요.


두 번째로는 첫 발령지에서 만난 교무부장 이강현 선생님이세요. 신규 때 제가 일을 정말 잘 못 했는데도 저녁 늦게까지 항상 도와주셨어요. “신규니까 못 하는 게 당연하지!”, “도와주고 거들어주는 게 선배 교사 역할 아니겠어?” 하시면서요. 도와주시는 것뿐 아니라 상담도 많이 해주셨어요. 정말 든든했죠. ‘내가 만약 교직에 쭉 있게 된다면, 꼭 우리 부장님 같은 선배가 되어야지. 힘들어 하는 후배들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이강현 선생님 덕분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기 이름을 달고 나가는 모든 작품이나 일에서는 최선을 다하기, 아이들은 아이니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기 등 다양한 방면에서 고민을 해결해 주시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지금 옆에 계시는 송성환 선생님이세요. 교직이든, 개인의 삶이든, 뭐 하나 대충하는 법 없이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세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귀감이 되고 동기부여가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을 항상 헤아려주시는 분이세요. 얼마 전, 제가 지도한 아이가 육상 800M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해 1등으로 들어왔는데 실격 판정이 났어요. 저는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를 툭툭 위로했는데, 부장님께서 자기 일처럼 종일 실격 당한 아이 걱정을 하시더라구요. 그런 진심 어린 모습이 귀감이 돼요. 선생님을 보면서 저 역시 교직과 개인의 삶, 두 마리 토끼를 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2.28.07.png 추구미 김수미 선생님의 학급 문집. 모든 선생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

뷰: 선생님 곁에는 소중한 인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좋은 분이셔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주변 사람들의 좋은 점을 잘 발견하시는 걸까요? 이런 소중한 인연들, 감사한 일들에 대해 매일매일 기록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덕분: 네, 그냥 두면 흘러가고 휘발되는 것들인데 기록으로 남겨두면 마음에 새길 수 있고, 새록새록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기도 해요. 2023년에 인디에서 <어린이 관찰일지>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매일 아이들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였는데요. 기록을 하려다보니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더 되돌아보게 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오히려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더라구요. 제 태도나 관점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하고요. 지금은 매일매일 하루 세 가지씩 감사한 일을 기록하는 감사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뷰: 매일 꾸준히 기록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비결이 있을까요?

덕분: 공들여서 쓰는 건 아니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편하게 써내려가요. ‘오늘 이렇게 감사한 일들이 많았네.’ ‘오늘 이런 친절을 받았구나.’ ‘운좋고 감사한 하루였네.’ 그럼 하루하루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출근길에 난폭 운전자를 만났을 때 예전 같으면 분명 욕을 했을 텐데 ‘사고 안 나서 다행이다. 이만하길 다행이네.’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오늘은 애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등교를 하고요. 예전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예요. 가장 큰 변화는 그만 두고 싶지 않아졌다는 거예요. 각자의 사정으로, 어려움 속에서 각자의 싸움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해요.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뷰: 사람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기록에 남긴 것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세요?

덕분: 아이들과 동화책 만들기 수업을 한 날이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다들 자기가 만든 이야기로 동화를 썼는데, 한 아이가 <선생님 일기>라는 제목으로 동화책을 만들었어요. 저를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동화를 쓴 거예요. 그걸 쭉 읽어 나가는데 이런 말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공 차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좋다. 뻥 차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선생님이 공을 차다가 안 다치시면 좋겠다.’ 아무래도 제가 남자 아이들과 공을 차니 ‘나도 같이 공을 차고 싶은데…’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안 다치시면 좋겠다’ ‘행복하시면 좋겠다’라니… 읽다가 속절없이 눈물이 터졌던 게 기억에 나요. 누군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준다는 사실에 뭉클했던 것 같아요.

스크린샷 2025-10-14 오후 2.29.32.png 선생님에 관한 동화책 <선생님 일기>

뷰: 그런 순간들이라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덕분: 사실 저는 기록 강박이 있어요. 일단 쓰고 일기장을 가득 채워야 마음이 편해져요. 채우는 일에 집중해서 작은 일도 쓰다 보니 작은 일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은 기록으로 남기면 그제서야 특별한 일이 되는 마법을 느낄 수 있어요.



뷰: 선생님이 계신 지역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창녕에서 계속 근무를 하고 계시지요? 창녕은 어떤 곳인가요?

덕분: 창녕은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리고 자부심 있게 말하건대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는 곳이에요.


뷰: 창녕은 제게 낯선 지명이예요. 창녕의 자연에 대해 먼저 소개해주세요.

덕분: 창녕에는 우포늪이라는 곳이 있어요. 우리나라 최대 자연 내륙 습지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핵심 구역이예요. 덕분에 아이들이 살아있는 공간에서 생태 교육을 생생하게 할 수 있어요. 3학년 체험학습은 반드시 우포늪에 가야 하기도 하고요. 다양한 생물을 직접 관찰하고, ‘생태 춤’이라는 춤을 추며 신나게 생태 교육을 받기도 하고요. 자연스레 아이들이 환경은 물론이고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20231108_092848.jpg 신나는 우포늪 체험. 다함께 '생태춤'을 추고 있다.

뷰: 창녕에 그렇게나 아름다운 곳이 있었군요. 혹 아이들이 창녕을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우포늪을 떠올리며 깊은 추억과 향수를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덕분: 그랬으면 좋겠어요. 다른 지역도 매한가지겠지만, 창녕 역시 인구 감소로 학교 규모가 작아지고 있어요. 아이들 교육과 적은 일자리를 이유로 매해 대구와 창원으로 빠져나가는 인구도 많고요. ‘어릴 적 창녕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창녕을 매력있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에요.

1760070824062.jpg 처음으로 교육감배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는 아이들

뷰: 앞서 창녕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고 했어요. 어떻게 알 수 있죠?

덕분: 제 사견이지만, 창녕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실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창원, 대구 등 주변 도시들은 연한이 있어요. 10년 정도 연한을 채우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하죠. 도시에서 연한을 먼저 채우신 선생님들께서는 창녕에 들어오려고 점수를 쌓으세요. 반대로 창녕에 계신 선생님들께서는 창원으로 가려고 점수를 쌓으시고요.

도시에서 점수를 쌓은 선생님들은 특색있는 교육 역량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수업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 참 재미있고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알찬 수업들이었어요. 점수 제도를 이야기하니 속물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혜택은 아이들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점수와 관련된 일을 보면 전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요. 점수 제도에서 한 발 떨어져 계신 선생님들도 참 좋으신 분들이세요. 경쟁에서 한 발 떨어져서 교육에 집중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시거든요.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다고 느껴져요. 교육 받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뷰: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좋은 환경, 좋은 선생님 아래서 잘 배우고 자라면 좋겠습니다만, 학령 인구가 줄면서 창녕 역시 고민이 깊겠지요?

덕분: 지금 저희 학교의 경우 전 학년 네 학급씩 확보가 되어 있는데, 당장 내년부터는 두세 학급으로 줄어들 예정이에요. 머지않아 창녕군 내 대부분 학교가 6학급이 될 것 같아요.


뷰: 학령 인구 감소는 개별 학교가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지요. 이러한 크고 작은 고민은 앞으로 계속 될텐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교사로 성장하고 싶으세요?

덕분: 교육자로서 소임을 다하는 삶, 내 몫을 해내며 도움을 청하는 후배 선생님을 돕는 삶,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아이들이 ‘어! 우리 선생님이다!’하며 반갑게 인사해오는 그런 삶이요.


뷰: 지금도 선생님께서는 그런 교육자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육 환경에 바라는 선생님의 특별한 바람이 있으세요?

덕분: 글쎄요. 큰 욕심은 없어요. 만약 어떤 일이 생겨서 교직을 떠나게 된다면, 글을 쓰고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여전히 교육 분야에 있고 싶네요. 그럴 일이 없다면 지금처럼 아이들과 공도 차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며 지내고 싶습니다. 만약 50살이 넘어서도 선생님을 하고 있다면 점심시간에 여자 아이들과 공을 차고 싶어요. 그때쯤이면 학생들이 공 차는 게 위험한 일이 아닌 여학생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재미있는 스포츠로 인정받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여학생을 위한 스포츠 클럽이 많이 생기고, 양성되는 것이에요. 아이들을 지도 하다보면 남학생과 여학생은 정말 많이 달라요.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려면 여학생을 위한 스포츠클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처음엔 낯설어 하지만, 스포츠를 배운 친구 한 명이 동심원 효과처럼 주변 아이들에게 운동을 알려 주면서 자연스레 스포츠와 금세 가까워질 수 있고요.

20250912_095508.jpg 체육 수업 중,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을 불러 포지션 설명과 작전을 짜는 풋살부 아이들

지금은 대부분의 학부모님들께서 딸래미 운동 시키는 것에 비협조적이기도 하고, 지도자들도 여학생 스포츠클럽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여학생 스포츠클럽 지도자가 많지 않아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적고요.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예요. 앞으로 여학생 스포츠클럽 파이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인 것 같습니다.

1760070824594.jpg 길었던 추석 연휴지만 내내 나와 열심히 공을 찬 아이들

뷰: 이 인터뷰를 보시고 전국에 계시는 여학생 스포츠클럽 담당 선생님들께서 반가워해주시면 좋겠어요. 점차 여학생들이 스포츠 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으시는 인디스쿨 회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려요.

덕분: 정말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초등교사’라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초등교사’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전국에 있는 아이들이 사람답게 성장하고 자라갈 수 있다고 믿기에 언제나 자랑스러워요.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시다면, 힘든 일을 얼른 털어버리시고 좋은 일이 속히 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어떤 기회로 만나게 되든 선생님으로 얼굴을 뵐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전국에 계신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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