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은혜

by 한영애

좋아하는 사장님이 경영하는 용산에 있는 풍미향에서 한바탕 고기를 굽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치맛살. 어느 부위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맛있다고 생각되는 부위를 사장님 오마카세로 주시는 대로 구워 먹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고 있던 지인을 만나 오랜만에 왁자지껄 떠들며 저녁한판을 막 치우고 돌아서는 길에 훈훈하게 함께 했던 오래 지난 시간들을 나누던 자리가 다시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의 자산운용이라는 시장에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칠 듯싶었습니다. 일본을 막 다녀온 뒤 무엇인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에, 다니던 회사가 무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던 일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세상의 변화 끝자락에서 지금 이것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할 것 같은 생각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다루어보지 않았던 해외투자라는 것이 막 동도 트기 전에 어찌어찌하여 불가피하게 다녀온 당시 일본에서 큰 세상의 변화를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지하 2층에서 해도 들지 않는 곳에 잠시 두었던 내 영혼이, 사업으로 처참하게 망가진 그 인생을 어떻게라도 살려보겠다고 꾸역꾸역 다녔던 직장에서, 엄청난 현금서비스가 월별로 돌아가고 있어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삶이 부서질 것 같은 불안감 속에 살던 내가, 내 능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새 사장님의 요청으로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일본을 다녀오게 되었고 19군데 일본의 금융기관들을 종류별로 만나고 나서 새로운 꿈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한국에 몇 개 되지도 않던 외국계 운용회사 중에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두었던 Fidelity와 새롭게 알게 된 Schroders에 원서를 내고 기다리다가 Schroders로 조인하게 되었습니다. 연봉이 비싸다고 해서 깎아서는 안 되는 연봉도 깎고 어찌어찌하여 그렇게 새롭게 꿈꾸던 외국회사에서 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외국계가 말이 외국계지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나는, 낮에는 사람들을 만나 나와 회사를 알려야 했던 내가, 업무가 끝난 늦은 밤이 되면, 퇴근 자락에 광화문 그 빌딩 앞에 서서 이 길을 잘 들어섰나? 이곳에서 바랬던 성공이라는 것을 맛볼 수 있을까? 밤마다 건물 옥상을 쳐다보며 되뇌던 날이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만난 그 인연으로 나는 바늘 같은 숨구멍을 발견했고, 새로운 세상에서 삶을 위한 멍석을 깔기 시작했고, 나만의 독특한 패턴으로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 때문에 그 이후로 20년을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살아올 수 있었고 지금도 나를 꿈꾸게 했던 그 일본에서 살며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합니다. 나와 내 가족이 필요한 것은 늘 챙겨주던 사람, 사람의 감추어진 그림자 뒷자락까지 내다보며 자신을 내어주던 사람, 그 베풂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베풂에 생색조차 내지 않는 사람. 나이는 나와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던 그 사람 덕에 내 인생에 한 자락 굵은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내가 기억이라는 것을 스스로 가지고 있을 그때까지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어느 부위인지도 모르는 고기를 구우며 왁자지껄 떠들며 그 사람과 저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잊어서는 안 되는, 거저 받은,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