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러운 것.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배당에서 뽀얀 피부를 가진 젊은 부부가 결혼을 합니다. 29살의 청년과 27살의 여인이 결혼을 합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혼인식 앞에서 떨리고 분주하고 그랬습니다. 아내가 될 여인 앞에 아무 인생에 대한 다짐도 없이 한시적으로 허용된 법의 틈 속에서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그 신고를 공식화했습니다. 한 가지만 약속을 했습니다. 아이를 가지면 아내는 무엇이든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 양육에 힘을 써 줄 수 있냐고, 그러면 나는 무슨 일을 해서든 가족을 위해 내 할 도리를 다 하겠다고. 아내가 될 여인은 약속을 했고 우리는 안 하면 안 되는 혼인식을 그렇게 치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두 딸이 태어났고, 그 사이에 사업이 있었고 쫄딱 망함이 또한 있었고, 처가살이 5년 가까이에, 삶의 고통이 마음을 너무 조여서 그 조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 북한산 야간산행이 처가살이 기간만큼 되었고, 아내가 두 딸과 해외로 나가 살기도 했고, 잠시 한국에 살다가 홍콩으로 모두 데리고 나가서 지금까지 해외에서 산지 10년이 넘은 시점에 서 있었던 곳은 동경 한복판 아카사카의 작은 집이었습니다.
아내는 고등학교 때 만났습니다. 천호대교를 걸어서 기독서점을 가는 길에 나누었던 이야기는 생각이 안 나지만 아마 그때 아내가 마음에 들어왔나 봅니다. 지지리도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던 제 인생에 아내가 처음으로 마음에 남았던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치관도 모호하고 인생을 향한 꿈도 명확하지 않았던 그때,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끄러워 말을 못 하고 그냥 마음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다, 먹고 살기 급급해서 다시 만난 여자가 지금의 아내였습니다.
돌아보면 살아주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거칠게 형성된 한 인간의 형상이 둥글둥글 해 질 때까지 옆에 있어 주기만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버렸거나 버림을 당했던 여인들과는 다르게 나도 버리지 않고 아내도 나를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가운데 우리의 결혼 생활에는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유독. 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아내가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도 했었겠지만 결혼 전에 약속했던 그 약속 한 가지, 나는 아버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가슴에 깊이 박힌 그 상처 하나 때문에 이 길을 잠잠히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게 벌써 29년이 되었습니다.
반 클립 앤 아펠스. 문득 한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 지난 29년 동안 결혼기념일을 아내와 축복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구나. 아내의 결혼허락에 감사해서 그 감사를 마음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었구나. 많이 미안한 마음에 반 클립 앤 아펠스를 온라인으로 들락거리며 29년을 함께 산 아내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고민하다 끝내 시간이 없어 못 하고 당일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선물을 사서 출장 가기 일주일 전에 저녁을 함께 하며 고백을 하려 했었습니다. 저녁 전에 반 클립 앤 아펠스를 가야 한다고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목걸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좋아한다고, 그 목걸이를 한 사람들 동창회 같은 것도 있을 정도로 국민 목걸이라고 하면서 안 사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29년 기념행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ㅎㅎ 대박.
이게 저였습니다. 고마워도 고맙다고 표현 못하는. 좋아도 좋다고 말 못 하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이큐 수준에 견줄만합니다. 그런 제가 아내와 29년을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68% 시간을 처음부터 제가 알기로는 한 마음을 가졌던 그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제게는.
지금까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옆에서 나란히 그 행복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아내와 함께 할 일들의 리스트를. 남은 인생동안 모두 다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