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억도 나지 않는데 기분만 나쁜 어린 시절

by 한영애

작은 한옥집이었습니다. 내 기억에 이 장면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떠오르는 가장 오래된 장면입니다. 그 한옥집에는 두루 둘러서 방들이 촘촘히 이어져 있었고, 그 방으로 들어가는 앞에 30 센티미티 남짓한 마루가 있어서 그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한옥집 방 한편 앞 마루에 앉아 있는데 조막만 한 손바닥에 십 원짜리 하나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십 원짜리는 눈깔사탕 10개와 바꿀 수 있는 큰돈이어서 그 십원을 꼭 쥐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옆 방에 사는 누나가, 늘 그 누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하고 매일 늦게 들어와서 늦게까지 자다가 일어나는 누나였는데, 나를 데리고 동네 구멍가게로 가서 그 십원을 사용할 기회를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바꾼 눈깔사탕을 하루 종일 입에 물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거기까지입니다. 직접 실물을 보면 그 집도 그 방도 그 누나도 모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아니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작은 다방에서 다방에서 일하는 누나들 틈에 섞여 누나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말들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일을 가야 하는 아버지가 나를 그 작은 다방 레지언니에게 맡겨 놓고 나간 듯싶습니다. 저녁에 나를 데리러는 오셨는지, 그래서 그 작은 한옥집 방으로 데려가서 밥 먹이고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늘 그 작은 다방에서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어느 아줌마가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뒤척이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나는 아줌마가 아버지 옆에 누워있곤 했었는데 언제가부터는 그 아줌마가 우리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동네를 쏘다니며 두리번거리던 때 어느 집 앞에 친절하게 놓고 간 서울우유병 하나가 눈에 띄어서 왜 우유를 이런 것에 놓고 갔을까 생각하며 무심코 병을 따서 마셨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날은 죽어라고 맞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아버지는 도둑질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사 주신 우유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돌아가셨는지 어느 날은 상여가 나가는데, 죽음이라는 것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나가는 상여의 모습만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참 우울하고 무섭고 불편한 것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던 집으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을 혼자 왔다고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는 길을 기억하고 반대로 돌아오기만 했는데, 그게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나 봅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얼굴에는 깨를 잔뜩 뿌려놓고 건빵바지를 입은 작은 아이 하나가 우리 집 방구석에 앉아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마 그 아이를 만난 첫 째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식구가 늘었고, 자고 일어나니 아줌마가 아기를 가졌고, 낮에는 학교를 다녀오면 그 작은 아이와 함께 지내야 했는데 그 아이는 처음 보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사사건건 의견이 달랐던 기억만 있습니다. 그만큼 서로 으르렁 거렸겠을 거고 지지 않으려고 대드는 그 작은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보려고 했던 기억만 납니다. 그 아이는 버스 맨 앞자리를 좋았고 버스만 타면 잠이 들었고, 잠이 들면 깨우기가 어려웠습니다. 갖은 협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는데, 그 아이를 깨워서 예상했던 정거장에서 버스에서 내리게 하는 것이 매일 죽을 만큼 싫은 일이었었습니다. 그런 그 아이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아줌마는 그 아이의 엄마고 그리고 나의 엄마가 되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엄마라는 말이 입에서 안 떨어져, 아마도 몇 달은 망설였나 봅니다. 아버지에게 죽어라고 맞고 나서야 어머니라고 입을 떼었으니.


이게 내 기억의 시작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인지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어디엔가 맡겨진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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