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6살(만 다섯 살-한국식 나이 계산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이 되는 딸아이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 인형을 좋아하고, 고양이 머리띠를 좋아한다. 그 종류도 형광 플라스틱, 재봉된 검은색, 며칠 전 화려한 반짝이 머리띠까지. 그리고 열심히 집에서나 어린이집에서나 항상 착용한다.
하지만 다행히(?!) 고양이를 키우자는 말은 안 한다. 자기가 고양이가 되어서 고양이처럼 기면서 “야옹 야용”, 혀를 ‘날름날름’ 거릴 뿐이다. 그것도 무릎으로 기면서 특히 “나는 아기 야옹이었데”라는 과거형을 써가면서 말이다. (아이들만의 문법과 표현은 이상하면서도 사랑스럽다.)
딸아이를 보면서 두 가지 상상을 해본다.
딸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까?
하나뿐이 없는 아이인데 나중에 엄마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물론 성인이 되면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나에게는 한없이 챙겨주어야 하는 딸아이처럼 느껴지고 그 시간이 아득하고 아련한 느낌마저 든다. 돌잡이 때도 생각했다. ‘무조건 실을 잡아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오래 건강하기만 해라’. 와이프는 돈을 잡길 원했다. “와이프는 매우 현실적이며 현명한 사람이다.”(결과는 와이프는 실망을 했고 나는 좋아했다. 그런데 실의 의미가 딸아이에게는 패션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요즘 너무나도 코디에 신경을 쓰는 아이가 되고 있다.)
아무튼 위에 질문 두 가지는 모두 “과학”이라는 분야와 연결되는 것 같다.
아이는 커서 – 과학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특히 양자역학을.
나는 죽으면 – 원자들이 흩어져 많은 곳으로 퍼질 것이다. (먼 옛날 우주에서 날아온 물질들이 내가 된 것처럼)
내 사랑하는 딸은 양자역학을 빨리 접했으면 좋겠다. 물론 아래와 같이 만만치 않고 어려운 내용임이 걱정되기도 한다.
・ 자연의 실상은 생각보다 디지털화되어있으며
・ 자연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러기에 확률로만 알 수 있는데 이 확률은 주관적 확률이 아닌 객관적 확률이란다.
・ 빛보다 빠르게 정보가 바뀌거나 전달될 수 있으며
・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이런 내용 들은
・ 그것은 자포자기 행위였다(막스 플랑크)
・ 달을 보지 않는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아인슈타인)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아인슈타인) VS 선생님이 상관할 바는 아닙니다(보어)
・ 도깨비 같은 원격 작용 없이 기술되어야 한다.(아인슈타인)
・ 어딘가에서 무언가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존 휠러)
등의 과학자들의 문장과 생각들로 연결되기도 한다.
위에 머리 아프게 적힌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보다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고의 방식이 잘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이상함을 느껴 봤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이상함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내용을 찾아보면서 나와 우주 자연 등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의 베일을 조금씩 제쳐가면서 맛보는 재미를 알아갔으면 좋겠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마치 노벨상 메달 뒷면의 그림처럼 말이다.
아이 옆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 마침 과학자들 사진이 표지에 있어 아이가 사진을 보고 누구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친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존 벨...” 아이는 혀 짧은 소리로 이름을 따라 해 주었다. 이게 뭐라고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와이프 퇴근 후 아이가 과학자 이름을 알고 있다며 와이프 앞에서 아이와 함께 시연해 보였다. 아이는 이름이 어려운 몇 명 제외하고 사진을 보고 이름을 제법 맞추었다. 와이프는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와이프는 매우 현실적이며 현명한 사람이다. 시크릿 쥬쥬의 주인공들 이름은 줄줄 읊어 내는 모습을 보면 과학자 이름을 줄줄 말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해 왔다.
아이의 진로를 따질 나이(6살)도 아니고 과학을 싫어하고 특히 양자역학을 머리 아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님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긍정의 스위치를 올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어 양자역학을 좋아하는 아직은 조그마한 딸아이를 상상해 본다. (실제로 키가 매우 작아 성장이 걱정이기도 하다)
이런 사랑하는 나의 딸이 나중에 집에 있는 고양이 인형보다 슈뢰딩거 고양이를 먼저 이야기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슈뢰딩거 고양이가 만만하지 않은 놈이다.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놈이니 말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이런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은 현상들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천천히 조금씩... 육아와 양자역학을
“슈뢰딩거 고양이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총을 집어 들려고 팔을 뻗는다.”(스티븐 호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