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엘아 어제 답장 잘 받았어.
아직은 남아있는 얼굴의 솜털이 조금씩 없어질 때마다, 그냥 쉽게 네가 나이가 들어가고 조금씩 커감에 따라. 아빠는 오히려 요구하는 게 더 많아지고 있는 거 같아. 외출을 하고 손은 씻었는지, 숙제는 했는지, 책가방은 챙겼는지. 이러한 당연한 것들을 확인하고, 안 했으면 조금은 얼굴을 찌푸리며 빨리하라고 재촉하는 아빠의 모습 속에서 아빠는 스스로 아엘이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단다.
아직 놀면서 세상의 많은 것을 몸으로 익히기도 부족한 세계와 시간 속에서 너를 책상 앞에만 가두고 있는 거 같아서, 그래서 안쓰럽고 미안할 뿐이야...
지금보다 어렸을 때 아엘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았을 때 너는 '공주'가 되고 싶다고 했지. 뭐 그때는 백설공주 옷을 입고 킥보드를 힘차게 달려 나가는 시기였으니까. 그때 아빠도 엄마도 너의 꿈을 응원하고 막지 않았는데, 지금은 네가 유튜버나, 웹툰작가, 아이돌, 사육사 등 너에게 가까운 다양한 미디어 속 사람들의 꿈을 이야기하면 쉽사리, 그래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어. '... 그래도 안정적으로 수입은 있어야 하는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맘속에서 너의 꿈을 멈추고자 하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곤 해.
너의 다양한 꿈을 응원하던 아빠의 모습이 없어진 거 같아. 이 또한 너무 미안한 거 너는 모를지도 몰라.
아직도 꿈을 직업으로 등호를 사용하여 판가름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이게 맞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는 합리화시키곤 한단다.
꿈은 직업이 아니고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혹은 정말 해보고 이루어보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꿈=직업이라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아빠도 그렇게 배우고 자라왔기에 이런 거 같아. 이런 부분을 좀만 아엘이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아빠는 아엘이가 맞춤법을 틀리며 아빠에게 편지를 써 줄 때마다 너무나 큰 세상을 마주한 기분이야.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너무나 순수한 세상이랄까? 지금의 너만이 느끼고 맞닿을 수 있는 그런 세상말이야 그러한 세상이 색색의 꽃과 색색의 달콤한 향기가 어우러진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야. 그래서 더더욱 맞춤법에 대한 이야기를 아엘이에게 따로 안 해주고 있단다. (물론 받아 쓰기 시험을 준비할 때는 아빠가 냉정해짐을 이해해 줘)
아빠가 요즘 많이 힘들어..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점점 지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아엘이를 키워가는 육아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빠 나름의 삶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정신없는 직장의 생활에서 거리를 좀 더 두어 번아웃의 불을 조금은 꺼야 하는 건지 계속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야..
아엘이도 나중에는 이해할 거야...라는 구태의연하고 나태한 문장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 그냥 우리 자주 말하는 것처럼, 서로 '괜찮아', '미안해'하는 것처럼 조금만 이해해 주기를 부탁해.
그래서 아빠는 이제 글을 쓰려고 해... 제목 봤어? 그냥 생존하려고 글을 쓰려고 해. 아엘이도 이제 초3이니까 생존이 무슨 뜻일지 알까? 살려고, 아빠가 살려고 글을 쓰려고 해... 얼핏 보면 부정적이고 얼핏 보면 긍정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아직 아엘이는 생존이라는 단어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잘 알지만... 어찌 보면 지금 순간순간 아엘이도 생존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할 때, 피구를 하면서 공에 맞지 않기 위해 몸을 쉼 없이 움직일 때, 나눗셈 수행평가를 세 자리까지 해야 하면서 두 자리 나눗셈과는 사뭇 다른 세계를 만날 때 나름에 노력과 힘듦을 겪고 있을 거라 생각해...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침에 식탁 위에 오늘도 힘내, 사랑해라는 메모뿐이지만 마음은 진심이야. 아엘이가 행복하게 생존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하고 바라...
아엘아 우리 둘 다 조금만 더 힘내보고 조금 더 생생하게 생존해 나아가자. 저녁에 보자 학교 잘 다녀와.
-나의 작은 우주 아엘이에게 그 우주를 너무 사랑하는 아빠가.
추신: 중요한 건 아빠가 어떤 글을 어떻게 쓸지는 모르겠어, 학교이야기? 아엘이가 물어보는 질문을 공감보다는 과학적 사실로만 대답해서 '아빠 MBTI는 T야?'라는 과학이야기?(심리학에서 MBTI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 했던가?? 아, 또 아빠는 과학이야 이러겠네...) 아니면 그냥 소설을 쓸지...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냥 쓸게!! 살아가기 위해. 살기 위해... 아빠도 너의 응원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