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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어둠 속, 너무 고요해서 먹먹한 느낌이 드는 심연의 끝에 한 아이가 있었다.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숙인 양갈래 머리의 어린 여자 아이. 이름도 모르는 낯선 아이를 향해 웅얼거리며 손을 내민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린 아이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속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이 불쑥 솟아오른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 당황해서 눈을 떴다. 둥글게 둘러앉은 스터디 멤버들 사이에서 나만 홀로 낯선 감정을 마주하고 있었다. 중앙에 자리한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고 안심하며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눈앞에 촛불이 일렁이는 모습이 흐릿해지며 다시금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유 모를 슬픔으로 터져 나오는 감정을 부여잡으며 아이를 향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다시 이름을 불러본다. 돌아본 아이의 눈동자가 또렷해지는 순간, 참았던 슬픔이 물밀 듯이 몰아쳤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들썩이는 작은 어깨를 품에 안고 같이 서럽게 울었다. 최면에 취한 듯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흐느끼다 지쳐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즈음,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한 기분이 느꼈다. 가슴속 깊이 남아있던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짜내어 버린 듯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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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러웠던 시간이었다. 남녀차별인 줄로만 알았던 남동생과의 차별은 알고 보니 계모의 내 자식 남의 자식에 대한 차별이었고, 언제나 나 홀로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랑을 갈구하기에 바빴다. 매일 두들겨 맞으면서도 시퍼렇게 멍든 자리에 약을 발라주는 그녀를 보며 사랑을 느꼈고, 어쩌다 있는 학교 행사에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많이 사랑했고, 사랑받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 세월에 대한 울분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어린 시절부터 내 삶에 드리워진 엄마의 그림자는 아무리 도망쳐도 떼어낼 수가 없었다.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매일같이 술에 찌들어 밤새 밖에서 헤매다가 동틀 무렵에 귀가하는 날이 허다했다. 덩치만 큰 어린아이였던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겨우 그 정도였다. 억울한 마음을 토로할 용기조차 없었다. 여전히 바보 같았던 나는 다음날 아침 콩나물국을 끓여주는 그녀에게 또다시 사랑을 느끼며 지난밤의 행동을 자책하기에 바빴다.
성장 과정에서 주 양육자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다. 까부는 아이를 보며 마음 깊이 올라오는 불안감이 어린 시절 내 모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던 내가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나대지 마라’였다. 중앙공원 꼭대기 벤치에서 수다를 나누는 동네 아줌마들 앞에 서서 김건모의 핑계를 부르며 춤을 추는 나를 질질 끌고 가 패대기치며 혼을 냈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들 앞에 나서면 안된다는 강박을 심어주었다. 이 강박이 대여섯 살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불안감으로 나타나서 아이 자체를 싫어하게 될 정도였다. 그런 내가 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덩치만 큰 어린아이가 되어 본인이 낳은 아이로부터 도망쳤다. 수도 없이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p.45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네. 시계 침을 되돌릴 수 없어. 만약 자네가 원인론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과거에 얽매인 채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을 걸세. 「미움받을 용기 중」
행복해지고 싶었다. ‘엄마’라는 이름에 얽매여 내 인생이 그지 같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내 아이에게 나의 감정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컸다.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전에 직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담담히 나를 안아주었다. 현재의 내가 남편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자유로워지자 내면 속 깊이 숨어있는 어린아이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가 시작되었다.
용기를 내서 찾아간 곳에서 명상을 이용한 내면 치유를 받았다. 두 달 동안 매주 인천과 잠실을 오갔다. 상담을 하는 3시간 동안 차 안에서 기다려주는 남편 덕분에 안심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 치유와 집단 치유를 번갈아 받던 어느 날, 드디어 모든 울분을 쏟아내며 그녀로부터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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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최초의 인간관계를 실패한 나에게 미움받을 용기란 정말 큰 과제다. 그녀와의 관계가 단절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미움받을 용기를 시험받고 있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뿌리 깊게 박힌 인정 욕구는 언제 어떻게든 나타나 내 안을 헤집어 놓는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날의 기억들은 여전히 날 괴롭히며 존재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함께 한다.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재를 선택하는 건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