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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Feb 18. 2016

​[딩크의 학교문제집] 3. 당선사례

교사가 된 이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일들은 종류도 다양하다. 학교폭력일 수도 있고 그저 내게 버거운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번 시리즈 제목은 [딩크의 학교문제집]이다.

내 교직경력은 <56655-6652-전담> 이다. 10년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들, 그당시 적어놨던 것들(안적었던 것도 많겠지만...)과 떠오르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정리해서 시리즈로 적어보려 한다.

이렇게 작성하다 보면 혹자는 내 경험을 공감하거나 혹자는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 비판도 할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만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수많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거나 혹은 위안을 얻기를 바라며 시작해보련다.

ps. 연도의 순서는 왔다갔다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딩크의 학교문제집] 3. 당선사례


#Prologue


2004년은 교직 첫 해이자 교사로서의 내 이상과 현실과의 치열한 다툼이기도 했다.

초등학교는 보통 상하반기 반장을 따로 뽑는다.(뭐 반장이라고 하기도 하고 회장이라고 하기도 하고 뭐 그렇지만...) 9월 발령이었던 나는 바로 반장선거와 맞딱드렸다.



반장선거는 그 반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거다

하지만 반장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 초등학교에서 엄청난 일을 하지 않는다

.(

이견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초등학교에서 반장으로서의 엄석대는 존재하기 어렵다

.) 

그런데도 아이들에게는 반장이란게 중요한 완장인가 보다

어느 순간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사전선거운동

(ex. 

반장선거때 나 뽑아줘

~“)

과 금품약속

(ex. 

떡볶이 사줄테니 나 뽑아줘

~”)

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서 반장선거를 보통은 기습적으로 실시한다

.(

뭐 문제는 기습적인 반장선거지만 주간학습안내에 나간다는게 문제기도 하지만

...)


그날도 그랬다. 반장이 되고 싶은 택이는 며칠 전부터 아이들에게 자신을 뽑아줄 것을 갈구했고 그렇게 반장선거는 시작되었다.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다. 택이는 성공했다. 또한 반장이 되고 싶었던 몇몇 아이들 중 지인이와 권수는 여자, 남자 부반장이 되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반장의 역할은 크게 세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남들보다 심부름을 많이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선생님께 인사를 시킬 수 있다는 것. 세 번째는 떠드는 아이들을 적을 수 있거나 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건요즘 거의 안할건데.._)


나는 학생들에게 권한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심부름도 여럿을 돌아가며 시킬 마음이었다. 인사도 번호가 돌아가면서 시킬 마음이었다. 또한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나갈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택이는 (자신이 생각하던) 반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지기 힘들었다. 뭐 사실 택이는 반장이 된 것 자체로 만족했는지 반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은 많지 않은 듯 하기도 했다.





#1. 1차전 - 됐어.


시작은 무엇부터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택이와 지인이와 권수를 불러서 반장선거가 끝난 날 이야기를 했다.

“너희는 반장, 부반장이 되었는데 이건 친구들이 너희 보고 열심히 하라고 뽑아준거다. 그러니 친구들을 열심히 도와주렴.”

그랬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 저 햄버거 애들한테 언제 넣을까요?”

“어?”

“엄마가 물어보래요”

“아냐. 괜찮아. 그런거 안해도 되. 너 햄버거 애들 사주려고 반장한 거 아니잖아?”

“....”

“니가 열심히 하면 그냥 그거로 되. 괜찮아.”

“.....”

드디어 시작된 문제. 반장턱...



#2. 2차전 - 키보드 배틀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메일이 하나 왔다. 택이 어머니셨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메일을 남겨놨던거 같은데 다시 찾아보니 없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택이 엄마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택이가 반장이 되어서 친구들에게 반장이 된 기념으로 햄버거와 콜라를 사주려고 하는데요. 어느때 보내야 할까요?





사실 이것보다 길기는 했지만 이메일을 받고 막막했다. 언제부터지? 반장선거를 하면 보답으로 먹을 것을 사주는 것이? 이건 일종의 당선사례인데... 어른들한테 참 안좋은 것만 배웠다는 느낌이다.


내가 어릴 적. (그 당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 직선제인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국회의원 선거는 집에 선물이 들어오는 기간이었다. 벽걸이시계, 도장 등 다양한 물건들이 집에 왔었다. 나는 그게 국회의원 선거인 줄 알았다. 금품을 마구 주는 것. 그리고 선거 후 붙는 플랭카드들. 그리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가 되면 후보들은 그렇게 전 국회의원을 욕을 한다.


나는 그게 싫었다. 첫 번째로 그렇게 선물 공세를 해서 뽑히면 본전을 뽑으려 한다는 것이 싫었다. 두 번째는 그 선물을 받고 제대로 안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싫었다. 세 번째로 다음 선거때 서로 디스전을 하는 그 모습들 자체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규였고 생각만 앞섰고 방법은 제대로 알지 못했었기에 나는 택이 어머님과 일주일 정도 매일 메일을 주고 받으며 논쟁(?)을 벌였다.



                    

어머님 저는 택이가 반장이 되었으면 반장으로서 열심히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반장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한턱을 내는 것은 기존 옳지 않은 정치인들이 하는 방식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햄버거를 얻어 먹으려고 반장이 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안해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반장 부반장 어머니들만 돈쓰시는 거 싫어요. 아이가 반장이 되었는데 왜 부모님이 돈을 쓰셔야 하죠?

옳지 않다고 봐요.

저는 싫어요. 요즘 국회의원들 당선사례도 그냥 플랭카드 하나 붙이는 정도인데요. 햄버거 턱은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의 말씀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택이가 반장을 하게 된 것은 아이들 덕인데 무언가 보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했으면 하는데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택이가 반장을 하게 된 것은 아이들 덕이 맞지요. 하지만 그 보답을 꼭 물질로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택이가 그만큼 더 열심히 반장일을 하면 되는거 아닐까요? 저는 아이들의 선택에 물질로 보답하는 건 아닌 듯 합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들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지는 않아서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운동회 같은 때에는 보통 반장부반장 엄마들이 돈 모아서 교실에 음료수 같은 걸 넣는데요. 그때도 하지 말까요?




                    

만약 반장부반장 어머니들만 하시는 거면 넣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변분들이 같이 하시면 모르겠지만요.

아이들 음료수 말고 그냥 얼음물 먹이는 게 더 시원해요.



#3. 3차전 - 카더라~


택이와도 해결했고 택이 어머니와도 해결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문제였다. 몇몇 녀석들이 슬금슬금 택이에게 이야기를 한다.





“야. 왜 우리는 햄버거 없어?”

“다른 반은 피자 쐈다는데? 우리는?”

택이는 곤란해 한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네가 햄버거 얻어먹으려고 택이 뽑았냐?”

“.....”

“아니면 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말아라.”



#4. 어디서부터지?


사실 햄버거는 그냥 먹을 수도 있다. 기분좋으니 한턱을 내는 것이 뭐가 나쁠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되고 햇수로 12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당선사례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는 그냥 햄버거가 아니다. 자신들이 뽑아준 대가이다. 어떤 일을 해주고 대가를 받는다면 나중에는 받은 대가를 비교하게 마련이며 더 큰 대가를 주겠다고 하는 사람을 밀어주게 될 거라 생각한다.


왜 눈 앞의 사탕과 먼 미래를 바꿔야 하나? 선거에서 가장 큰 대가는 내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반장선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리반의 반장을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하는게 아닌가? 그걸 햄버거 하나랑 바꾸는 건 너무나도 좋지 않은 선택이다.


사실 초등학교에서의 반장선거는 어쩌면 인기투표일 수 있다.(사실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인기투표인 경우가 많긴 하다.) 또한 반장의 권한이 엄석대처럼 많지도 않다. 반장을 뽑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Epilogue.


나는 반장선거 하기 전에 꼭 이야기를 해준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거야. 뭘 준다고 그 사람을 뽑아서는 안되. 그리고 안됐다고 슬퍼하지마. 선생님은 예전에 3학년 때 친구가 추천해서 반장선거를 나갔어. 선생님이 몇표 받았게? 한표야. 선생님 친구가 찍어줬지. 근데 선생님은 그 해 내내 친구들에게 놀림 받았어. 니가 찍었지?라고 말야. 그래도 괜찮아. 챙피하지 않았어. 챙피할 필요 없어. 한표도 받아본 내가 선생님도 하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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