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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덕 Jul 30. 2024

매일 밤 천사의 비밀

무음모드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살며시 현관 안으로 들어선다. 7월의 여름, 저녁이지만 땀은 송골송골하다. 집 안쪽 동태를 살피는데 그는 이미 무서운 속도로 뛰어와 중문을 열고 나를 덮쳐온다. 우악스레 잡힌 손에 끌려 어깨에 맨 가방도 풀지 못한 채 거실 한가운데 앉혀진다. 스마트폰을 꺼내면 바로 압수,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가 휘두르는 작은 손길에도 꼼짝도 못 하고 두 손은 봉인된 채, 나는 눈앞에 펼쳐진 ‘놀이시간’의 지령을 기다린다. “아따(이거)!”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그 즉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시무시한 블록을 쌓으라는 지시부터, 퍼즐을 함께 맞추고 자동차를 운전하라는 엄명까지, 나는 순식간에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도망갈 틈은 없다. 아이의 눈이 번뜩이는 그 순간, 나는 이미 포로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묵직해진 자신을 마땅히 안아 올리라고 명령한다. 어깨 위로 그를 추앙하며 집안 곳곳을 누비는 것은 마치 ‘매트릭스’의 고착화된 숙명적인 시스템에 순응하는 인간들처럼 느껴진다. 천장에 달린 우주선을 가리키며, 아이는 눈을 반짝인다. 벽에 붙어있는 행성 모형들과 각종 스위치들이 아이의 손끝에서 살아 움직인다. 나는 힘겹게 아이를 들어 올려 그 작은 손가락이 행성 모형들과 스위치들에 닿도록 한다. “아따(이거)!” “아이야(아니야)!“ 작은 손가락이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우주선의 불빛이 켜지고, 나는 그저 아이의 지시에 따를 뿐이다.


우주선 모험이 무르익고 어깨가 무너지기 직전, 그는 나를 향해 다가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이어지는 다양한 우주 탐험의 미션. 각종 스위치를 만지게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나는 그저 묵묵히 우주선 조종사가 되어 함께 모험을 떠난다.

드디어 모든 것이 갖추어진 듯 ”아빠! 우우우웅!(우주로 날아가는 소리)”하고 말하면서 아이의 얼굴이 천사처럼 밝아진다. 그 순간, 공포 영화의 긴장감은 한순간에 따뜻한 가족 영화의 장면으로 변한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태양빛이 비추는 것처럼, 아이의 웃음소리에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매일 밤 겪는 소동이자 축복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나를 잠시나마 아빠로 만들어준다. 때로는 험난한 이 시간이 나에게 잊고 있던 무언가를 보상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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