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 팔라초 아바텔리스

2025 몰타-시칠리아 여행 16

by 미술관 중독자

팔레르모에서 반드시 가볼 장소 중 하나였던 팔라초 아바텔리스.

15세기말 프란체스코 아바텔리스라는 사람의 저택이었는데 자손이 없어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시칠리아 미술관이 되었다.




IMG_5694.HEIC
IMG_5686.HEIC



La Kalsa지구(아랍어로 알-칼레사라고 부르던 동네. '순수한'이라는 뜻이라고)의 조용한 미술관.

이렇게 옛날 건물이 미술관이 된 경우, 분위기가 고풍스러워서 좋으나

아무래도 작품 배치가 좀 애매하게 될 수 있는데

여긴 전시를 이어서 보려면 비를 맞으며 반대편으로 가야한다는 문제가.

우산이랑 가방 둘 곳 있냐고 물어봤더니 저기 선반에 두세요, 하는데 그냥 뻥 뚫린 선반이었음.

그러나 나중에 메시나 작품을 보고 나선 내 머리통에 비 좀 맞는다고 뭐 큰일 나나, 싶었음.






IMG_5681.HEIC

<죽음의 승리>, 15세기 초, 팔레르모 다른 곳에 있던 프레스코화를 떼어 여기 전시 중.

한쪽 면이 6미터인, 벽 하나를 다 채우는 크기.

해골 모습을 한 죽음이 흰 말을 타고 지나가면 현세에서 제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던 자라도 쓰러져 죽는다. 귀족, 군인, 고위성직자, 값비싼 옷을 입은 여인들 모두 죽음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권세가의 큰 건물 벽을 생각하면, '항상 조심하고 겸손하고 준비해라'라는 자세일 수도 있겠고, 이탈리아인들 성향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죽음이 언젠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할 일은 해야지'였을수도 있을 것 같다.


IMG_5690.HEIC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조각가.

프란체스코 라우라나 Francesco Laurana.

1430년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나폴리와 프랑스를 거쳐 시칠리아에 자리잡고 활동.

흉상들의 매끈하고 순수한 선에 매료됐다.

매끈한 조각 뒤를 차분한 올리브그린으로 칠해놓은 미술관에도 박수를.


IMG_5692.HEIC
IMG_5688.HEIC




In Situ, 원래 자리에 있던 금빛 모자이크를 계속해서 봤지만

모자이크는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다.

나를 매혹한 사람의 매력을 분석하는 재미같은 거랄까.

여러 밝기와 채도의 파랑, 연분홍, 음영, 금빛 유리들의 크기는 내 새끼손톱 삼분의일 정도 크기다.

IMG_5696.HEIC
IMG_5697.HEIC
IMG_5701.HEIC

이 십자가상의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도 않고 오히려 부활하는 모습이네.

특이하다.





IMG_5698.HEIC
IMG_5699.HEIC

젖먹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인데, 그림 둘레에서 액자 역할을 하도록 그린 외곽 공간에

몬레알레와 팔레르모 곳곳 성당에서 본 벽 장식 모자이크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아이 요런 디테일쟁이들.



IMG_5695.HEIC
IMG_5685.HEIC

14세기 작품들을 독차지.

이슬람 영향이 드러나는 옛날 문.

나무를 저렇게 조각한 것도 놀랍고 나무가 상하지 않고 저렇게 남아 있는 것도 놀랍다.




IMG_5708.HEIC

안토넬로 다 메시나, 아눈치아타, 1475, 패널에 유채, 45x34,5 cm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

보통 이 순간을 그릴 때는 한쪽에 가브리엘 천사가, 성령을 뜻하는 비둘기도 함께 그려지는데

여긴 그 (놀랍고 기이한, 한편 두려운) 소식을 들은 젊은 여인만 있다.


이 고요한 작품을 나 혼자, 완전히 혼자 누리는 호사.


원래 미술관의 주인공 격인 작품은 초반에 배치하지 않고 루트의 거의 마지막에 배치한다.

아바텔리 저택에 새로 리노베이션해서 추가로 붙여 지은 건물 말고,

저택 부분 루트 마지막에 조용히 자리잡은 아눈치아타 방에 들어가서 이 작품을 보고 나의 감정은

놀람, 기쁨, 경외였다.

(사진으로 봐서 별 거 없어보인다면 당연히 나의 핸폰을 탓해야겠지만, 어쨌든, 실물을 봐야 감정이 사는 작품이 분명히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 시끄럽고 말 많은 시칠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빛나는 그림이 이렇게 자그마하고 고요한 작품이라니, 재밌었다.


IMG_5710.HEIC
IMG_5709.HEIC

이 젊은 여인 눈빛이 많은 걸 얘기하고 있어서

이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미술관 안에 17세기 작품도 많이 있었지만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여기니까. 이만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몬레알레, 금빛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