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책들이 있지요. 동화책이지만 어른에게도 진한 감동을 주는 그런 책이요. 저는 '안녕달' 님의 작품들이 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기도 하고, 작가님 특유의 정감 있는 그림도 사람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지만, 어른의 마음도 충분히 보듬어 주는 책들이지요.
이 책은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사는 할머니께서 메리라는 강아지를 키우며 사는 일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강아지를 옆에 앉혀 두고 밥도 먹고, 그 강아지가 자라서 새끼도 낳고, 동네 사람에게 그 새끼를 입양도 보내고, 가끔 놀러 오는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이고, 사실 뭐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사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따뜻하게 저려 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첫째 루비가 두 돌이 지나 이 책을 구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표지가 아래 그림처럼 생겼길래 별생각 없이 "시골집에 가면 이렇게 마당에서 멍멍이를 키워." 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런데 루비가 "시골집이 뭐야? 마당은 뭐야?" 라고 물어왔습니다.
메리 by 안녕달. 책표지
앗? 하고 약 1초간 생각이 멈추었어요.
제가 어릴 땐 저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시골집에 사시는 게 당연했고, 저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기에 그게 뭔지 궁금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 시골이 아닌 경우가 많고, 시골 어디쯤 사시더라도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분이 많이 계시니 마당이나 시골이 뭔지 모를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서 조금 신기하기도, 조금 안쓰럽기도 했습니다.삶의 형태가 변하면서 아이들이 기꺼이 누리고 알아야 할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직 아기인 줄만 알았던 루비가 책을 읽으며 "아가가 다른 집에 가서 메리가 정말 슬펐겠다." "할머니가 혼자서 밥을 먹기 정말 심심했겠다."
하며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많이 컸다 싶었는데. 그 순간조차도 지금은 사진 속에만 남아 있는 추억이네요. 이제는 본인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말에는 꽤나 논리적으로 말대답도 할 줄 아는 7살 언니가 되었거든요.
by 안녕달 / 처음 메리가 올 때 북적북적한 모습과 홀로 남은 메리와 할머니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무슨 느낌이 드냐고 물어보니,
"조금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꾹 참았어. 그런데 마당 있는 집에 살면 매일매일 뛰어놀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답니다.
조금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는 아이의 말이, 함께 책을 읽었던 제 마음과 꼭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너무너무 슬퍼서 엉엉 울게 되는 그런 책은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코 끝 찡해지는 그런 느낌을 저도 받았거든요. 특히 처음 메리가 집에 올 때 북적북적했던 집안의 모습과,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다 독립한 지금의 할머니 모습이 대조되며 그 외로움이 더 사무치게 느껴졌습니다. 새끼들을 다 보내고 홀로 남은 메리의 모습이, 큰 집을 홀로 지키시는 할머니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루비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마당 있은 집에 살면 안 돼?"라고 물어 왔고, 꼭 루비의 바람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희 가족은 지금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있네요^^
책에 대해 되새기다 보니, 이 책을 읽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날의 온도, 그날의 하늘, 그날 제 무릎 위에 앉아 뚫어지게 그림을 쳐다보던 아이의 체온.....
저는 왜 항상 그 순간에는 좀처럼 깨닫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가슴 시리게 깨닫게 되는 걸까요.
오늘 네 아이를 곁에 앉혀 두고 이 책을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 이번에는 그 소중한 순간을 하나하나 눈에, 손에, 가슴에 담아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