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딱히 단골집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없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물건을 사러 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내키는 데로 갔다. 주차하기 편한 곳에 갈 때도 있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갈 때도 있었다.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냥 상황에 맞게 갔다. '그 집이 그 집이지 뭐!'라는 생각으로. 같은 곳을 다시 가기도 하고 아님 다른 새로운 곳에 가기도 했다. 뜨내기처럼 이 집 저 집 아무 곳에나 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같은 집에 한두 번 더 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결혼 후 한 지역에서만 30년째 살고 있다. 단순하게 살아온 횟수로만 치면 단골집이 수두룩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의 생활 전반에 쏙 들어와 있는 식당, 옷가게, 참기름집, 떡집, 빵집, 세탁소, 문구점, 편의점, 마트 등의 대부분을 난 뜨내기손님처럼 돌아다닌다. 이런 내가 최근 1, 2년 사이에 정착해서 찾아가는 곳이 생겼다. 미용실, 안경점, 건어물가게 등 3곳과, 도서관 1곳이다. 이렇게 단골 비슷하게 되어가는 곳이 있음은 나에게 드문 일인 동시에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부터 '건어물 가게는 나의 단골집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수산시장 한편에 줄지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어물 가게 중 한 곳이다. 특별히 이 집에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가는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계속 다니게 되었다.
건어물 가게는 살이 탱탱한 신선한 제철 회를 사러 갈 때 들리고, 조개, 소라, 마른 생선을 사러 갈 때도 들르는 곳이다. 건어물을 살 생각이 없었는데도 수산시장만 가면 필수코스로 간다. 이 집의 특징은 건어물을 사면 동그랗게 말아서 작고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둔 건미역을 덤으로 챙겨주는 것이다. 덤이지만 제품이 훌륭하다. 난 주로 멸치와 아귀채, 곱창김을 사고 가끔은 다시마팩이나 반건조 오징어를 살 때도 있다.
특별히 나에게 귀한 취급받는 반건조 오징어는 내가 평소보다 꽤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사다 주는 선물용이다. 오징어에 뒤질세라 살이 도톰하고 적당하면서 양념이 된 쥐포가 있고, 아귀채는 찢어 놓은 것, 쥐포처럼 도톰하게 통으로 말린 것도 있다, 각각 한 폼 잡고 진열대 맨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줄 서 있는 멸치네. 시식용으로 입에 한 입 넣어 오물오물 씹으면 이상하게 자꾸 입에 줄줄이 들어가는 꼴뚜기네, 중독된다. 건미역은 미역국을 끓이면 뽀얀 국물이 나오는데 진국이다, 다시마는 티백도 있고, 길쭉하게 생긴 모양 그대로 말린 것도 있다. 그 외에도 갖가지 건어물로 가득 찬 집.
이곳. 다른 곳에서는 아닌데 유독 여기만 가면 내가 갑자기 단골이랍시고 작게 포장된 마른미역이나, 아귀채 시식용을 많이 챙겨주길 은근히 기대한다. 가게 사장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손님인데 나의 속마음은 늘 단골손님이다. 나도 모르게 대화 속에 넌지시 단골 냄새까지 솔솔 뿌려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다고 단골이 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나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도대체 그 가게에 일 년에 몇 번이나 가서 얼마어치의 물건을 사주냐?"라고 묻는다. "아. 내가 얼마나 자주 왔을까?, 일 년에 서너 번?" "그럼 이 가게에서 한번 물건 살 때마다 사용한 금액은? 고작 10만 원 남짓?"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단골이란 글자조차도 꺼낼 위치가 안된다. 이 가게에 나의 기여도가 고작 이쯤인데 단골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 단골의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 단골이 아님은 확인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