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존재가 내게 오는 의미
* 스포일러 주의! (외국에 살아서 먼저 봤습니다.)
1983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은 안드레 애치먼 Andre Aciman이라는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사랑이야기는 2007년 소설로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전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10년 뒤 스크린에 옮겨진 이야기는, 눈과 귀, 마음까지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수작으로 재탄생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면면에 눈이 부시고, 장면에 딱 들어맞는 음악이 귀를 적시고, 영화를 관통하는 사랑이야기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 결과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주제가상에 당당히 후보로 올랐다. 뭐, 이미 전 세계에서 50회가 넘는 수상을 했다고 하니, 쟁쟁한 작품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겠다. 그저 나의 바람일까.
자유분방한 피아노 연주, 책 읽기가 취미인 엘리오는, 아버지의 초대로 집에 오게 된 올리버가 처음엔 탐탁지 않다. 지적이고 잘생기고 매력이 넘쳐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미국인 교수로 등장하는 올리버가 시도 때도 없이 "Later"라고 말하는 게 "왠지 거만해 보이지 않는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지만, 결국 엘리오는 서투르지만 저돌적으로, 그래서 더욱 명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무릎베개를 하고 읽어주었던 프랑스 소설 속의 '고백'을 인용하면서.
* 엘리오!! 남자다!!!
서툴기에 더욱 빛나는 고백.
엘리오가 마을 한복판에서 서툴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여기서부터 나는 엘리오에게 잔뜩 빠져들고 말았다. 1983년이란 시대 배경, 17살 소년, 24살 이방인, 한 남자와 또 다른 남자.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라 해야 적절하겠다. 매력이 넘치는 예쁜 소녀와 갖게 되는 첫 경험이 설레는 나이. 먼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 끌리는 복잡한 마음. 어쩌면 슬픔과 비통, 좌절과 상처를 아직 고스란히 감당하기 힘든 나이에 내뱉는 '고백.' '아, 나는 과연 저런 날것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던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올리버를 먼저 퉁명스레 밀어낸 건 엘리오였고, 그런 엘리오의 고백을 밀어낸 건 올리버였지만, 결국 둘은 계속되는 우연 속에서 둘의 마음을 확인하고 깊은 사랑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 엘리오와 올리버가 함께 하는 모든 시퀀스들은 둘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의미'가 된다.
마을을 구경시켜주겠다는 엘리오.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풀리지 않는 논문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17살 소년에게 묻는 올리버. 자전거를 함께 타며 마을을 누비다 자신만의 비밀 독서공간을 보여주는 엘리오. 서로가 가장 유연하게 섞이는 공간인 '물' 속에서 틈날 때마다 수영을 하며 낮과 밤을 함께 하는 그 둘.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공간인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방을 함께 쓰는 둘. 닫혀있던 문이 가끔씩 열리기 시작하고, 쪽지를 주고 받고, 같은 듯 다른 공간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걷는 둘의 모습은 공간을 통해 관심과 존재,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해석한 명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상대방에게 조심스레 '공개'하고, 그 영역의 '문을 연다’는 설정은, 두 사람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사랑의 증표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며, 고민을 나누고,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 바퀴를, 때론 두 다리를 굴려나가는 둘의 모습은,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의미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름이란.
이름은 '존재'를 불러 깨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이름이 가진 상징성 덕에 자주 등장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존재’의 의미를 상징하는 영화의 제목 [Call Me By Your Name]. 이 제목은 영화 속 대사로도 등장하는데, 엘리오와 올리버가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던 바로 그날, 올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Call me by your name. I'll call you by mine."
다시 '이름'이란 주제를 꺼낸다. '이름'은 다름 아닌 '존재'다. 오죽하면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그토록 고심 끝에 짓곤 할까. 평생 '그 이름'으로 불릴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그게 바로 이름이니까. 올리버가 속삭였던 '나'를 '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그리고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르겠다는 고백은, 다름 아닌 두 사람의 완벽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본다. '너'는 '나', 그리고 '나'는 '너'라고 말하고 싶은 그 끈끈한 마음은, 둘 사이를 증거하는 가장 명확한 사랑의 확인이 아닐까.
존재가 오는 의미, 그리고 상실
어느덧 6주 동안 함께 했던 올리버가 떠나갈 채비를 하게 되고,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왜 이렇게 마지막에 와서야 나는 당신을 알아보고, 당신을 나를 사랑하게 됐는지" 묻는다. 떠나야 하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절절한 아쉬움. 둘의 '우정 아닌 우정'을 알게 된 엘리오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떠나는 올리버에게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기를 권하고, 둘은 마지막 '이별 여행'을 떠난다.
숨을 헐떡이며 산등성이를 있는 힘껏 내달리기도 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광장 한복판에서 한껏 춤을 추기도 하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둘. 이별을 실감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술을 진탕 마시고 토악질을 하기도 하고. 마침내 이별을 맞이한 기차역에서, 엘리오는 역설적으로 너무나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처연히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저 좀 데리러 와 줄 수 있어요?"
이별, 상실, 고통. 모든 아픔을 감당해 내고, 새로운 걸음을 내디뎌야 할 길이 뚝 끊긴 사람처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안아줘야 하기에 생기는 '성장통'
자신의 부모님이 둘 사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엘리오는 펑펑 울어버린다. 이게 내가 두 번째로 엘리오에게 반한 순간인데, 이토록 있는 그대로 솔직한 사랑의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은 게 첫 번째 이유요, 세상이 허락하기 힘든 둘의 사랑에 있어, '열일곱 살' 소년이 '숨기려는 감정'보다 '드러내려는 감정'이 더 두려울 텐데도 불구하고, 엘리오가 그 감정을 여실히 드러낸 용기에 감탄한 게 또 다른 이유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이 아들에게 나지막이 나눠주는 '감정'과 '인생' 이야기는, 엘리오의 눈가를 다시금 촉촉하게 만든다. 슬픔, 상처, 상실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안아주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대사는 정말 따뜻했고, 영화를 통틀어 크게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으로 꼽고 싶다. 이 장면이 내게는 왠지 엘리오가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뜨거웠던 40여 일간의 성장통 같은 사랑'을 거쳐, 이제 '한층 성숙해졌다는 의미를 담은 일종의 '성인식' 같았다.
세월이 흘러 자연이 숨을 죽이고 생명을 '상실'하는 겨울. 하누카를 맞이한 엘리오의 집에 걸려오는 한통의 전화, 여기서 내가 엘리오에게 세 번째 반하고 만다.
'I miss you.'
그리고 엘리오의 끝없는 속삭임.
'엘리오..엘리오..엘리오..엘리오..엘리오...엘리오..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아마 마음속으로 수천, 수만 번을 불렀을 '자신의 이름', 그 존재 '올리버'. 속삭일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너무나 먹먹한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마치 항상 변주하는 엘리오의 거친 피아노 연주처럼.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코 엔딩 크레딧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방식의 엔딩 크레딧에서 정말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가 함축하는 사랑의 감정을 숨죽여 토해내는 마지막 '분화구'라고 해야 할까. 아, 도저히 다른 수식어를 못 찾겠다.
그저, '사랑'.
이 영화를 '퀴어 로맨스'라고 정의한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맞다. '퀴어' 그리고 '로맨스'. 하지만 나는 그저 넓은 관점에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퀴어 로맨스를 다룬 또 다른 역작인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처음 보고 난 뒤, 더 깊이 알게 된 '사랑'과 '존재'의 의미가, 단지 다른 두 사람일 뿐인 엘리오와 올리버 사이에 그려질 뿐. 이 둘의 사랑은 어떤 색깔을 가진 사랑이라기보다 '오로지 나에게 뜨겁고 소중한 존재'를 그린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사람의 성장통을 다룬 드라마'였다. 적어도 내게는.
인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 심연, 그리고 상처, 그 후의 나아감을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원색적이지도 않게 잘 그려낸 이 작품이, 나는 그래서 정말 빼어난 '드라마'이자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품상'을 받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니픽쳐스 클래식의 혜안을 감히, 아주 칭찬한다.
* 정말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먹먹한 장면.
티모시 샬라메, 남우주연상을 기대, 아니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예전에 [원더]라는 영화를 보고 노아 주프Noah Jupe라는 2005년생 아역 배우의 놀라운 연기 덕에 강펀치를 얻어맞은 적이 있었는데, 티모시가 10살 많은 형이라 그런가. 1995년생인 티모시 샬라메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거의 핵폭탄급 연기로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영화 속에서 걸음걸이, 입술, 눈썹, 머리카락, 숨소리, 심지어 검지손가락, 엄지발가락으로도 미친 연기를 한다. 정말 간만에 눈부시도록 찬란한 배우를 알게 되서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인터스텔라]때 못 알아봐서 미안.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오늘이다. 티모시 샬라메의 건승을 진심을 다해 기대한다. 혹에라도 진짜 받게 되면 아마 아카데미 최연소 남우주연상이라지 아마. 뛰어난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쓰리빌보드 Three Billboards]도 훌륭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와 샐리 호킨스의 [셰이프 오브 워터 Shape of water]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샐리 호킨스 주연작은 [내 사랑 Maudie]이 훨씬 더 멋졌다. 자고 일어나면 티모시 샬라메의 수상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감성으로 영화 말하기'의 첫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상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