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팝니다.
[The Florida Project]가 원제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유명한 재즈 펑크 그룹 Kool & The Gang의 [Celebration]이란 경쾌한 곡으로 시작한다. "We gonna celebrate and have a good time, 모두 함께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요. It's time to come together, 모두 모여서. It's up to you, what's your pleasure. 즐거움은 당신의 몫이에요. Everyone around the world Come on! 온세상 사람들 모두 여기로 모여 즐겨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속 주인공들은 '꿈과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에서 조금만 길을 건너 내달리다 보면 닿을 거리에 살고 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환상과 꿈'을 파는 곳. 이곳에선 언제나 파티가 열리니 이 시간을 함께 즐기고,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모여 즐기자는 메시지. "Celebrate good times, come on!" 왠지 영화와 꽤 잘 어울려보인다.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어도 '쨍'하다고 느껴지는 플로리다의 기막힌 날씨, 알록달록한 동화나라에 온 착각을 주는 예쁜 건물들, 분명 그 끝엔 황금이 잔뜩 숨겨져 있을 거라 믿게 되는 무지개, 오렌지빛 석양. 거기에 보랏색, 하늘색, 노란색으로 채색된 예쁜 집들. 분명 이곳은 꿈과 환상의 나라일 거라 느껴진다. 주인공들도 빨강, 분홍, 초록, 파랑 등 나이에 걸맞는 발랄한 옷들을 입고 동네 이리저리를 힘차게 뛰어 다닌다. 마냥 귀엽고, 깔깔댈 나이. 우리 인생도 언제나 이렇게 '쨍'하게 맑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인공 네 꼬마들이 언제나 '즐거운 시간'만 보내도 모자랄 이 동화 같은 무지개 세상에서, 반대로 지독하고 처절한 '역설'의 축제를 그리고 있다.
매직캐슬, 퓨처랜드, 꿈의 나라 디즈니랜드. 허나,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주인공 무니는 엄마와 함께 보랏빛 모텔 '매직캐슬'에 살지만, 그곳에선 그 어떤 삶의 '마술'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니가 방에 있거나 말거나 매번 침대위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하루가 멀다하고 모텔에서 쫓겨날 위험에 처하는 엄마 헤일리. 전직은 스트립 댄서, 현재는 무직. 근처 도매상점에서 향수를 떼다 디즈니랜드 근처 호화 리조트 손님들에게 팔아 근근히 집세를 마련한다. 딸 무니의 손을 잡고, '향수를 사지 않을거면 이 불쌍한 아이에게 단돈 몇 달러라도 좀 쥐어달라'고 애걸하면서.
아랫층 스카티네는 어떤가. 스카티의 엄마 애슐리는 동네 조그만 식당에서 뼈빠지게 일하지만, 매니저가 되지 못해 어렵게 산다. 그런 애슐리가 일하러 나갈때마다 무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스카티. 아이들 봐주는 댓가로 애슐리는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 몰래 몰래 무니와 스카티의 끼니를 떼우게 한다. 그런대로 아이다운 즐거움을 느끼며 커나가는 스카티. 하지만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의 스카티는 어른들 몰래 여성의 전라가 새겨진 라이터를 구하게 되고, 결국 무니와 함께 어느 폐가의 벽난로에 불을 붙혀 방화를 저지르고, 엄마에게 사실을 들킨 후로 집안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된다.
매직캐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무니와 스쿠티, 그리고 뉴올리언즈로 이사가는 디키가, 옆동네 '퓨처랜드Future Land'로 놀러가 침 멀리 뱉기 놀이를 하다 우연히 알게된 또래 친구 젠시. 아, 젠시는 또 어떤가. 젠시는 흑인인 할머니와 산다. 젠시는 백인, 고로 젠시는 할머니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유인 즉슨, 젠시의 엄마가 15살에 젠시를 낳고 없어졌기 때문.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는 무니와 스카티가 아니면 이렇다할 친구도 없는 젠시. 젠시는 그렇게 '퓨처랜드Future Land'에 살지만, 젠시에겐 '미래Future'가 없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나라, 디즈니랜드 옆동네 아이들의 삶은 언제나 이렇게 불안하고 애잔하다.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속 아이들은 영화 정말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그런데 스크린을 마주한 우리에게는, 그런 유쾌한 아이들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가슴이 찢기는 슬픔을 던진다. 온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상상하는 꿈의 나라에서, 즐거움은 커녕 순간순간이 너무도 위태로운 아이들.
이 아이들의 동사Play엔 '목적어'가 없다.
처음 알게된 젠시에게 호감을 갖게 된 후, 젠시와 함께 놀아도 되냐며 젠시의 집을 찾은 무니와 스쿠티.
"Can we play with Jencey?"
젠시랑 놀아도 될까요?
젠시의 할머니는 이렇게 묻는다.
"What are you playing? You're kids from the purple place?" 뭐하고 놀건데? 너네 그 자주색 매직캐슬 애들이지?
"Hmm..we're just playing." 음.. 그냥 노는 건데요.
"So, what are you playing?" 그래서 뭘 하고 놀거냐 이말이야.
"We're playing!" 그냥 논다구요!
이 아이들의 '놀다'라는 동사엔 언제나 마땅한 '목적어'가 없다. 그게 너무 슬프다.
꿈을 팝니다. 우린 그래야 살아요.
마땅한 직업이 없어 적은 생활비조차도 만질 수 없는 헤일리와 무니. 월세도 아닌 일주일치 방값을 매번 밀리고 밀리다 보니, 모텔 매직캐슬 관리사무소의 바비에게 매번 질책을 당한다. 게다가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었던 향수판매를 리조트 보안관에게 걸리는 바람에, 돈이 나올 구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매직캐슬에서 영영 쫓겨날 신세가 되고 갈곳없이 궁지에 몰린 헤일리는 결국, 딸 무니에게 수영복파티를 하자며 찍은 나체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매춘을 시작하는데......
딸 무니가 라디오를 크게 틀고 목욕을 하고 있는 방에서 매춘으로 돈을 버는 헤일리. 무니에게 매춘마저 들키고 만다. 거기에 모자라 자신을 찾아온 남자의 가방에서 디즈니랜드 티켓 네장을 훔치고, 훔친 티켓을 되팔아 다음주 월세를 구한다. 누군가의 '꿈'을 훔치고 그 '꿈'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다시 되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모녀. 그돈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쇼핑을 하지만, 둘에게 가장 행복해 보였던 이순간이 또 역설적으로 가장 불행한 마지막처럼 느껴졌던건 나뿐일까.
결국 낯선 남자들의 수상한 방문이 이어지면서 헤일리의 부적절한 행동은 매직캐슬의 온 주민들에게 소문이 난다. 설상가상으로 디즈니랜드 티켓을 도둑맞은 남자가 다시 헤일리에게 찾아와 큰 소란을 피우면서, 헤일리의 삶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어딜가나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으니, '엄마' 노릇을 할수 없다는 신고가 들어가면서, 무니를 다른 집으로 입양시키려는 관계당국 사람들과 경찰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꿈의 나라로 가는 길. Seven Dwarfs Ln.
무니와 헤일리가 불법으로 향수를 팔다가 쫓겨난 순간, 스크린 속 도로표지판에 보이는 도로명은 바로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Seven Dwarfs Ln. 마치, 백설공주 이야기속 일곱 난쟁이가 금방이라도 나올것만 같은 곳에서, 무니와 헤일리에게 주어진 초라한 삶은 그 어떤 모양의 동화도 될 수 없다. 두 모녀에게 일곱 난쟁이 길은, 영원히 높다란 벽이다.
매일 꿈을 팔고, 꿈을 내던져야 살 수 있는 사람들. 머잖아 경찰이 들이닥칠 걸 예상했던 헤일리는 곧 무니와 이별할 걸 직감했는지, 무니를 디즈니랜드 근처의 호화 리조트 뷔페에 데려가, 배가 터지도록 먹이기로 작정한다. 너무 즐겁고 당당해서 오히려 더 슬픈 둘의 모습.
웨이트리스가 묻는다. "손님, 실례지만 방 호수가 뭔가요?"
"323호요."
"고맙습니다."
323호는 무니와 헤일리에게 유일한 보금자리인 '매직캐슬' 방번호다. 그 번호를 가짜로 사용해 사랑하는 딸에게 마지막 점심을 먹이는 헤일리. 온통 거짓인 숫자 323. 마치 이 두사람에게 '둘의 안식처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323호"는 둘의 마지막 행복을 '거짓'처럼 만들어 버리는 순간에 쓰이고 만다. 클로즈업된 화면 속에서 온갖 음식을 우겨 넣으며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무니. 새빠알간 딸기, 톡 터지는 라즈베리, 샛노란 오렌지 주스, 통통한 랍스터를 배터지게 먹으며 무니가 외친다.
"아, 여기 진짜 너무 좋네. 다음에 또 와요, 엄마."
무니는 또 다시 외친다. "THIS IS LIFE, MAN! 이런 게 인생이지!"
정말 슬프게도 두 모녀에게 '그런 인생'은, 꿈의 나라 속, 그 어디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자주빛으로 '포장'된 보금자리, '매직캐슬'
영화속에서는 퍼플 컬러Purple로 언급되는 자줏빛은 자연에서는 매우 희소하게 관찰할 수 있는 컬러라, '신령스러움'이나 '환상적인 현상'을 의미할 때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를 비추는 조명은 유독 퍼플 컬러로 가득하다. 공교롭게도 무니와 헤일리의 보금자리였던 매직캐슬은,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를 열망하듯 퍼플 컬러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곳엔 역설적으로 그 어떤 환상과 꿈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심리학에서는 또 퍼플 컬러가 '미래, 환상, 꿈'을 나타냄과 동시에, '현실적응, 실제인식' 등을 나타내는 양면적인 오묘한 컬러로 해석되기도 해서, '상상', '미래'를 뜻함과 동시에 '일상과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무니와 헤일리의 매직캐슬이 왜 온통 '퍼플' 컬러이면서, '퍼플 월드'라고 불렸는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이 둘에게는 매직캐슬이 '오갈데 없는 마지막 행복의 보금자리'이자, 그러면서도 '한껏 도망쳐버리고 싶은 슬픔의 공간'일 뿐이다. (출처: Color-meaning.com)
"Celebrate good times, come on!"
엄마 헤일리와의 이별, 그리고 자신의 입양사실을 알게 된 무니. 여기있는 어른들 모두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다 급기야 도망쳐 버리는데. 무니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바로 이제 하나 남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젠시'의 집. 숨을 헐떡이며 젠시네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무니.
"What's wrong, Moonee?" 무슨 일이야, 무니야?
"Please.. You're my best friend, and this may be the only time I'm going to see you again."
제발.... 너는 내 제일 좋은 친군데, 아마 이게 마지막으로 널 보는 걸거야.
"What's going on?" 무슨 일인데?
"I can't say it. Bye." 말을 못하겠어. 잘 있어..
정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혀까지 깨물고 서럽게 엉엉 우는 무니.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지만, 젠시는 직감적으로 무언갈 느낀것처럼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이제 곧 '매직캐슬'을 떠나야 하는 무니의 손을 꼭 잡고, 디즈니랜드로 힘차게 달려간다. 그것도 무니의 마지막 보금자리였던 '매직캐슬'로.
서로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세상에 쫓기듯 서둘러 달려나가는 둘의 흔들리는 뒷모습을 핸드헬드Handheld로 잡으며 엔딩으로 치닫는 배경음악은, 공교롭게도 다시 Kool & The Gang의 [Celebration]이다. 첫 장면을 꽉 채웠던 활기찬 비트는 사라지고, 이번엔 가슴을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현악이다. 그야말로 보는이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쳐댄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가 '지독하고 처절한 역설의 축제'라고 언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환상적인 나라에서, 역설적으로 단 한번도 환상적으로 살아보지 못했던 모두였다. 이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 모두 함께 축하할 순간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에. 그저 환상일 뿐이기 때문에.
언젠가, 과연 우리 꼬마 친구 무니에게, 정말 소리내어 목청껏 "Celebrate good times, come on!"을 부르며 춤을 출 날이 올수 있을까. 티셔츠에 새겨진 글씨처럼 “Follow Your Dream”을 품은 무니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총천연의 색감과 가슴을 때리는 음악, 마치 실제 주인공 같은 아이들의 연기로 보는이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드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감상평은 여기까지다. 감성으로 영화 말하기 두번째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