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일랜드 차밭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홍차의 산지, 카메론 하일랜드 차밭

by 타인의 청춘

말레이시아 관광청의 슬로건은 ‘진짜 아시아를 보려면, 말레이시아에 오 세요.(Malaysia, Truly Asia)’다. 천혜의 자연환경·맛있는 음식·친절한 사람들·문화 의 용광로·인종의 멜팅팟(Melting Pot) 등 말레이시아를 매력적인 ‘진짜 아시아’ 로 만들어주는 이유는 끝이 없다.


연평균 15~20도 산지에 차밭 조성


동남아 국가의 날씨를 떠올리면 작열하는 태양, 밤이 되어서야 조금 선선 해지는 날씨, 시원하게 쏟아지는 스콜 등이 연상되지 않을까 싶다. 일 년 내 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경험하는 말레이시아. 그런 말레이시아에 연평 균 기온이 15~20도를 오가는 곳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정말?’하고 되묻 곤 한다. 말레이시아 중북부 정글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남짓 구불구 불 이어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카메론 벨리(Cameron Valley)’라는 하얗고 커 다란 글씨가 나타난다. 언덕을 내려다보며 여유 있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 한 눈에 모두 담기 힘든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려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한가 롭다. 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푸른 고원지대, 카메론 하일 랜드다.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넓다.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1.3배 정 도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태국·싱가포르와 맞닿 아 있는 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나누는 동쪽의 보르네오 섬, 그 리고 동 말레이시아로 나뉜다. 서쪽과 동쪽을 오가려면 비행기로 2시간 이 상 비행을 해야 한다. 서 말레이시아가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동 말레이시아는 원주민과 자연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서로 상반된 매력을 자랑한다. 원시림과 각종 희귀동물로 가득한 동 말레이시아에서 가 장 높은 곳은 해발 4,095m의 키나발루 산(Mt. Kinabalu)이다. 반면 화려한 야 경과 드높은 마천루를 품고 있는 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2,180m의 구눙 용 블라르(Gunung Yong Belar) 다. 바로 그 인근에 카메론 하일랜 드가 자리하고 있다.


윌리엄 카메론이 발견


1885년 영국 정부의 지질 조사원이었던 윌리엄 카메론(William Cameron)은 서 말레이시아의 중심부에 자리한 페락 주와 파항 주의 경계를 찾아 정글을 탐험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가 탁 트인 풍광의 너른 지형을 발견했는데, 바로 카메론 하일랜드다. 지질 조사원 카 메론의 이름이 지명이 된 이유다. 이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건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나서다. 19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원시림이었던 곳에 길을 내 고, 1925년 조지 맥스웰(George Maxwell)이 역을 만드는 등 본격적인 개발에 나 섰다. 1931년에는 카메론 하일랜드로 이어지는 24km의 도로가 건설되고, 증기로 움직이는 중장비가 공급되면서 카메론 하일랜드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고원지대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험준한 고원지대가 개발되는 과정에는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 다. 그들은 무더위와 끝없이 싸워야했고, 말라리아와 뎅기열, 풍토병 등을 이 겨내야 했다. 카메론 하일랜드는 1928년 11월에 처음 개발을 시작했는데, 투 입된 인력만 3,000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공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400여 명이 열사병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공사비용 도 300만 달러가 소요되는 대공사였다고 전해지는데, 쉽지 않은 개발과 막 대한 공사비를 들여서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레이시아 전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생명의 씨앗들로, 푸른 찻잎과 빨갛게 영근 딸기, 은은한 보랏빛의 라벤더와 선명하도록 샛노란 옥수수였다.


1929년 설립된 영국 차 회사 ‘BOH’


이곳에 대규모 차밭을 만든 건 1929년 영국인이 세운 차 회사 ‘BOH’다. 이 회사는 말레이시아 차 브랜드를 대표한다. 가격도 저렴하면서 워낙 유명 해 한국 관광객들이 귀국할 때 한아름 구입하는 제품이기도 하다. ‘BOH’는 ‘Best of Highlands’를 의미하는데, 1929년부터 카메론 하일랜드 최고 의 차만 담았다는 자부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생산된 ‘BOH Tea’에만 특별히 ‘카메론 하일랜드’라는 이름이 쓰인다. 카메론 하일랜드의 차나무는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종이다. 이 종은 보통 16~20m까지 자라는데, 고원지대인 카메론 하일랜드에서는 1m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다. 낮은 키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닿기 쉬워 직접 수 확할 수 있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꾸준한 품질을 유지하며 대량생산을 하기에도 좋다. 이 지역 찻잎의 품질이 우수한 이유는 이런 환경에 있다. 먼 저 찻잎이 자라는 기간을 고려해 매일 새로운 구역에서 찻잎을 수확하더라 도 8~9일 정도 지나면 다시 처음 차밭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찻잎을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생육환경이 좋다. 또한 연중 차 생산량이 일정하고, 계절별 생산량의 격차가 적어서 수준 높은 차 품질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18번째의 차 생산 국가로, 세계 차 전체 생산량의 약 0.5%를 생산한다. ‘BOH’ 차 농장은 현재 1,200ha에서 연간 4,000t 정도 를 생산하는데 말레이시아 전체 생산량의 70% 수준이다. 전 세계 생산량으 로 계산하면 0.3%를 조금 넘는데, 하루에 550만 잔의 차를 마실 수 있는 분 량이다. 주로 홍차를 생산하는데, 색이 선명하고, 우려내면 황금빛이 감돈다. 입안을 감도는 풍미가 부드럽고 깔끔하다. 이외에 프리미엄 녹차·백차·우롱차·허브티·얼그레이티 등도 생산한다. 생산품의 80%는 국내에서 소비되고, 나머지를 미국·일본·싱가포르·브루나이·아랍에미리트 등에 수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대표 휴양지로 거듭나


이외에도 카메론 하일랜드에는 바랏 티(Bharat tea)로 알려져 있는 ‘카메론 밸리 티(Cameron Valley Tea)’ 농장이 있다. 이 농장은 일찍이 말레이시아로 건너 온 인도인이 1933년 설립했는데, 약 700ha 규모의 차밭에서 매년 약 900t 의 차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하는 차종류는 ‘BOH’ 농장과 비슷한데, 차맛 도 ‘BOH’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바랏 티에서는 카메론 밸리 티센터를 운영 하고 있는데, 주로 스리랑카나 남인도 풍의 차를 제공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딸기맛 차·오렌지맛 차·페퍼민트 차 등이 인기가 높다. EBS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장수 프로그램인 세계테마기행에서 말레이시 아를 다룬 횟수는 총 여덟 번이다. 그 중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곳이 바로 카메론 하일랜드다. 그만큼 카메론 하일랜드는 말레이시아에서 상징적 장소이자, 귀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기 때문이 다. 필자도 13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4년 간 거주할 당시 EBS 세계테마기행 ‘말레이시아·태국’ 편인 5부작 ‘오지 말레이 반도’에 출연한 바 있다. 이때 첫 에피소드로 카메론 하일랜드를 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카메론 하일랜드 가 나만 알고 싶은 곳, 특별한 휴식을 허락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려 22 일 간 길고 힘든 촬영을 하면서도 따뜻한 홍차, 달콤한 딸기 케이크, 바쁜 도 시의 일상을 잊게 해주는 초록 바다를 볼 수 있는 카메론 하일랜드 덕분에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카메론 하일랜드는 차 농장이 운영되면서 유럽인들이 몰려왔다. 1934년 에 이스턴(Eastern) 호텔이 문을 열었고, 이후 세월을 거치면서 말레이시아의 대표적 휴양지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 카메론 하일랜드는 상당한 규모로 넓 어졌다. 지역의 중심지는 타나 라타(Tanah Rata)인데, 쿠알라룸푸르나 이포 지 역에서 접근하기 편리해 리조트와 호텔이 몰려 있는 곳이다. 북쪽에는 캄풍 라자(Kampung Raja), 또 남쪽에는 카메론 하일랜드의 첫 마을인 링렛(Ringlet)이 있다. 또 대규모 농업지역인 키 팜(Kea Farm), 보티(Boh Tea)농장을 비롯해 딸기 농장·장미정원·나비정원 등으로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브린창(Brinchang)도 인 근에 있다. 홍차 사랑이 유별난 영국인들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게 된 카메론 하일랜 드가 홍차의 산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 다른 말로 하이 티(High Tea)를 즐기는 영국인들의 특성상, 비옥 한 고원지대에 녹차를 심고, 품질 좋은 녹차나 홍차를 만드는 티 플랜테이션 (Tea Plantation)을 시작하기에 카메론 하일랜드처럼 좋은 곳은 없었으리라. 하 지만 영국의 식민지 시절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카메론 하일랜드는 유명세를 떨쳤을 것이다. 차밭 대신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딸기가 생산되는 특산지 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카메론 하일랜드에는 라벤더·옥수수·선인장 등 말레이 시아에서 보기 힘든 작물을 직접 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시설이 많다. 만약 말레이시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카메론 하일랜드에 가서 녹차·홍차 등 품질 좋은 차뿐만 아니라, 라벤더로 만든 각종 제품, 딸기가 들어간 음료 나 디저트, 옥수수로 만든 특산품도 만나보길 권한다.


이주혁 EBS FM 모닝스페셜 작가. 말레이시아에 4년 간 거주하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말레 이시아 지역 전문가, 말레이시아 전문 작가 및 인플루언서(influencer)로 활동했다. EBS FM 라디 오 프로그램 ‘그곳은 어때 말레이시아’ DJ로 활약했고, EBS 세계테마기행 ‘오지 말레이 반도’ 큐레이터로 활약했다.



* 격월간지 금강신문 9-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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