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더해진 공간의 의미를 묻다 #003]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최인아 대표는 2016년 역삼동에 최인아책방을 열었다. 스타 카피라이터, 대기업 여성 최초 상무, 전부, 부사장 등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 그는 요즘 ‘책방 마님'으로 글을 쓰고, 책을 추천하고, 책방이라는 공간으로 다양한 시간을 기획한다. 오롯이 혼자 책 읽기 좋은 공간인 ‘혼자의 서재',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저자 행사, 음악회 등이 열리는 최인아책방에는 쉼이 필요하거나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글, 영상_콘텐츠매니저 여름
Q.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점을 만들면서, 책 읽는 공간으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를 염두에 뒀어요. 하나는 오프라인 책방이잖아요. 저만해도 책방을 열기 전에는 온라인에서 책을 샀어요. 당일에 배송받는 경험이 있다 보니, 온라인 시대에 사람들이 왜 책방에 올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책 너머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점점 공간에 관심이 많다는 게 읽혔고, 책이 좋아서 뿐만 아니라 ‘공간이 되게 좋다. 매력적이야. 숨이 쉬어져.’ 이런 동기로 책방 문을 열고 싶게 만들고 싶었어요.
또 하나 생각 한 건 혼자의 서재예요. 책방 한층 아래 별도로 만든 공간인데, 일 년 정도 됐어요. 생계가 해결되고 난 이후에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뭘까? 저는 시간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려면 공간이 필요해요. 우리가 지내는 공간을 보면 가족과 함께 지내는 사람은 가족과 있어서 혼자 있기 어렵고, 혼자 사는 사람은 그 공간이 너무 뻔해서 있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바깥에서 혼자서 한가롭게 책을 보거나 나에게 몰두하고 싶을 때, 딱 맞는 공간을 마련할 테니 필요할 때 오십시오. 이런 취지로 만들었죠.
Q. 서점과 서재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는 공간인데요. 이 공간에서 대표님께 특별히 더 의미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별장은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게 제일 좋다고 하잖아요. 자기 별장이 있는 사람은 늘 잔디를 뽑아야 해요. (웃음) 제가 정작 혼자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낸 게 이제껏 두 번이에요. 저에게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제가 공간으로 옮길 만큼 주목한 것은 시간이었어요.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고, 공간에서 우리가 뭘 누릴까? 생각해보니 또 시간이더라고요.
결국 시간과 공간은 만나는구나. 앞면과 뒷면이구나. 그러니 모처럼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을 가지려면 그에 맞춤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른 거죠. 제가 책방에 오는 사람에게 드리는 가치가 뭘까 생각해보면, 그게 시간이에요. 모처럼 서점에 와서 지적이고 우아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것. 때로는 좋은 책을 추천해서 그런 시간을 누리게 하고, 때론 콘서트로 때론 이런 혼자만의 공간을 제공해서 사람들에게 ‘내가 오늘 괜찮은 시간을 보냈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공간과 시간이 양면이라는 말씀에 동의하는 게, 의미 있는 공간에 관한 질문을 하면 으레 사람들이 오래전의 시간을 더듬어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이곳이 일터인 대표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있나요?
저는 좀 멀어요. 파주 헤이리에 있는 황인용 선생이 하는 카메라따. 거길 좋아해요. 가면 제가 오래 있어요. 책을 가져가거나, 정리 안 된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쓰다 오거나 해요. 일하던 시절에 저는 정말 재미없게 일만 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어요. 대신 보통의 월급쟁이보다는 긴 휴가를 다녔어요.
휴가나 휴직이 저한테는 가스를 빼는 장치였던 것 같아요. 아주 길게는 1년 동안 휴직한 적도 있고, 아무도 휴가를 쓰지 않을 때 2주, 혹은 두 달씩. 임원 때도 휴가 가고 그랬으니까. 한꺼번에 ‘휴’하고 왔어요. 저는 일상이 루틴하게 굴러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밤낮없이 확 일하고, 푹 쉬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렇게 쉬었어요.
Q. 이 인터뷰 역시 공간에 쌓인 시간의 의미를 살펴보자는 취지인데요. 혹시 사라졌지만, 대표님이 지키고 싶었던 공간이라면 어디인가요?
저는 어릴 때 서울 청파동에 살았어요. 제가 어릴 때 강남이 막 개발될 때라 애들이 다 강남으로 빠지는 거예요. 우리는 꽤 도심에 속했는데도, 학생 수가 계속 줄었어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 졸업생으로 효창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내가 뛰어놀았던 초등학교 있던 공간이 송두리째 없어졌네. 숙대가 그 땅을 사서 숙대 건물을 새로 지었죠.
가끔 숙대 근처에 가면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돌아본단 말이에요. 근데 학교가 없어. 저는 6년 동안 전학하지 않고 졸업했거든요. 서울서 나고 쭉 자랐으니 저에겐 고향이 청파동이에요. 그런데 내 어린 시절을 보낸 학교가 없어서 상실감이 컸어요. 졸업할 때 학생들이 다 울었어요. 아마 그 시절엔 그런 학교가 더러 있을 거예요.
Q. 어린 시절이라 더 상실감이 컸을 것 같아요.
우리는 학기를 다 마치고, 중학교에 가니까 그나마 덜 할 텐데, 아래 학년 아이들은 인근의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효창 초등학교 애들이 청파로 갈 때, 첫날 청파 학생들이 나와서 박수를 쳐줬대요. 근데 다 울면서 들어갔다는 거야.(웃음)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 식민지 백성마냥 똘똘 뭉쳐서 지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반장 선거에 나가면 친구 숫자가 적어서 다 떨어졌지만, 공부는 잘하자고 마음먹고, 자기들끼리 일등부터 쫙 차지했더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꼬맹이들이잖아요. 그렇게 어린 시절에 큰 걸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서울에서는 낮은 건물을 고스란히 보존하기는 어렵겠죠? 보통 사람들에게는 공간이 결국 살았던 흔적이 될 테니까. 모든 흔적을 가져갈 수 없다고 해도, 전부 없애기 전에 뼈대를 남기거나 리터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Q. 아이들 풍경이 눈에 선한데요.(웃음) 지난번에 공공그라운드에서 공간 이야기를 나눌 때 들은 이야기인데요. 런던에는 폐교 건물을 활용한 스쿨 아파트먼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의 추억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건물을 오피스텔처럼 임대하며 사용하고 있다고요.
공간이 더이상 하드웨어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자체로 콘텐츠고 소프트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쿨 아파트먼트가 딱 맞는 사례가 되겠네요. 간혹 현대사회를 이야기할 때, 분자화된 개인이 고립되어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공간에서부터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면, 나라는 아무개가 갑자기 툭 나온 게 아니라, 이어지는 시간 속에 나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내가 가면 내가 이렇게 남겠구나, 알게 되겠죠.
Q. 공간에 이야기가 쌓이면서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겠네요.
결국은 공간도 콘텐츠이고 소프트웨어에요. 그래서 공간에 관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이 많이 구하는 것 같아요. 아파트만 해도 똑같은 구조라고 해도, 그 안이 다른 경우도 많잖아요. 결국 어떤 생각과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서 똑같이 만들어진 아파트 공간조차도 굉장히 다르다는 거죠. 사람들이 한번 오게 하는 건 건물이라는 하드웨어지만, 자꾸 오게 하는 것은 그 너머의 이야기거든요.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하게 하는 어떤 콘텐츠가 있어? 이게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Q. 좋은 공간을 누리기 위해서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만큼이나, 내가 머무는 공간을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의 일상적인 공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결국 다시 시간이예요. 나에게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을까? 내가 무엇을 할 때 좋지? 그 질문을 해보면 좋겠어요.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내가 기쁜 시간을 보내려면, 여기 뭐가 있으면 좋을까? 혹은 뭐가 없어지면 좋을까? 배치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그런 질문이 우선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