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리아 엑스포제'의 최지은님
공공일호 4층은 코워킹 스페이스입니다. 붉은 색 벽돌이 둘러진 넓찍한 사무실 안에 파티션 없이 다양한 회사들이 모여서 일하는 공간입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를 비롯, 메디아티가 투자하는 다양한 미디어 스타트업과 1인 기업 등 다양한 유형의 조직이 모여 일하고 있습니다. 공공일호에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공공일호 인터뷰]에서 전해드립니다. 무엇보다 이 곳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요즘의 관심사,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사무실의 정적을 깨뜨리는 유창한 영어 소리.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코리아 엑스포제(Korea Exposé)의 최지은 님이 있습니다. 지은 님은 사진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콤부차를 좋아합니다. “자전거 타는 걸 정말 좋아한다”고 두어 번 강조했습니다. “요 며칠 날씨가 좋아서, 매일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얘기할 때 가장 신나는 표정이었던 지은 님과 ‘다른 경험’과 '다름'에 관해,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Q. 안녕하세요! 전 공공그라운드 콘텐츠 매니저 여름입니다. 지은 님, 소개해주세요.
A: 저는 지금 코리아 엑스포제에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저널리즘을 부전공했는데, 공부하면서 느낀 게 이걸로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였거든요.(웃음) 사회에 관심은 많았지만 막상 해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Q. 그런데 어떻게 코리아 엑스포제에 합류하게 됐나요?
A: 제가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대학은 홍콩에서 다녔는데, 작년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어요. 새벽에 페이스북을 보다 코리아 엑스포제에서 인턴 공고를 우연히 봤어요. 살면서 몇 년에 한 번씩 꽂히는 때가 있는데, 이게 딱 꽂힌 거예요. 새벽에 바로 이력서를 보냈어요. 마감이 끝난 인턴십인데도 공고가 떠 있길래, 아직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메일을 보냈어요. 세웅님은 아직도 저한테 농담하는 게, 제 이메일이 엄청 절박해 보였다는 거예요.(웃음)
인터뷰를 보고 2주 만에 일을 시작했어요. 영어로 일하는 게 저한테도 제한적인 게 있었어요. 저도 한국 생활을 더 오래 했으니까요. 더 어려운 일은 따로 있었어요. 제가 2012년 초에 외국에 나갔거든요. 그러니까 박근혜 정부 시기에 저는 한국에 없었고, 늘 한국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서 관심이 멀어졌어요. 부끄러운 말이지만요. 그러다 보니 정확히 어떻게 탄핵이 진행됐는지, 이런 것들을 모르겠는 거예요. 다행히 그때는 제가 친구도 없고(웃음) 일 마치면, 집에 가면 매일 지난 뉴스를 보고 정세를 살피는 일을 했어요. 4달 정도. 그런데 너무 다행히도 코리아 엑스포제 편집장 혜련 님이 인턴 기간 후에도 남아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때까지도 빨리 한국을 떠나고 싶었는데요.(웃음) 사실 3월에 일을 시작하고, 4월에 베를린 학교에 입학할 계획이 있었거든요. 고민이 됐지만, 인턴십은 끝나고 가자 싶었는데, 남아달라고 한 거예요. 고민을 하다가,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조금만 더 있어보자, 하고 남게 됐어요. 아직도 제 친구들은 저를 보고 ‘네가 여기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래요.(웃음) 저도 가끔은 나 왜 여기 있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항상 친구들과 하는 말이 한국 사회 답답한 면이 많고 바뀌어야 할 것 많은데,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얘깃거리가 늘 많고, 뭔가 항상 바뀌고. 페미니즘 관련해서도 가까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런 게 이야기되지 않거든요. 또 저는 한국 밖에 친구들이 많으니까, 제가 한국 사람 아이덴티티로 이런 이야기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다들 너무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해요. 아직도 사실은 ‘곧 떠날 거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 같아서 당분간 있을 예정입니다.
Q. 왜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A: 저는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회가 획일화되어 있고, 특정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알게 모르게 요구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는 그림을 그렸으니까, 뉴욕이나 활발하게 예술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홍콩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스페인에 머물렀어요. 다른 유럽 친구들과 교류해보니까, 세계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한 거예요. 저랑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이 이미 너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가진 게 너무 신기하고 부러웠어요. 그리고 홍콩에 가서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게 돼서 너무 행복했어요. 무엇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은 제 친구가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시내에서 울면서 걷고 있었대요. 지나가는 사람이 괜찮냐고 휴지도 주고, 앉아서 얘기도 들어주고 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누가 갑자기 길에서 울고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하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그런 게 당연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분위기가 달랐어요. 또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어렸을 땐, 쟁취적인 마음으로 한국 사회를 나 스스로 바꾸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거기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하고 있어요.
Q. 지은 님 역시 그런 시간들 덕분에 다른 삶의 경험, 이해의 폭이 넓어서일까요? 지은 님이 외국에서 느꼈던 ‘다름'의 느낌이 지은 님에게도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다른 사회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무엇이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세요?
A: 남의 눈을 덜 의식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받았던 게, 여자는 말라야 해. 하얘야 해. 친구들끼리도 놀리고 그런 게 싫었어요. 저는 피부가 되게 까만데, 외국에 나가니 사람들이 오히려 부러워하더라고요. 그렇다고 피부가 하얗다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각자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저도 그런 것을 배워나간 것 같아요. 유럽 친구들은 일단 생긴 것부터 다르기 때문에, 내가 남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죠.
고등학교 친구들이 거의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데요. 대학 들어갈 때에는 “쟤는 이 대학을 갔다, 못 갔다" 수근수근거리는 것도 힘들었어요. 옛날 같으면 “쟤는 어느 기업에 다닌대"라고 할 때,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은 저 자신이라서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거기서 끝인 거예요. 저는 한국 사회를 눈치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 삶에 있어서 눈치가 주는 스트레스가 확 떨어졌거든요.
멜번에 있을 때 매일 한국어와 영어로 글을 썼거든요. 그 시절 쓴 글 중에 제가 좋아하는 글이 있어요. 학교에 유기농 마켓이 매주 열렸어요. 근교 농부들이 와서 과일과 야채를 팔아요. 유기농 사과랑 배랑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거기 가보면 사과 모양이 다 이상해요. 그런데 그런 사과가 슈퍼마켓에 예쁜 모양의 사과보다 네 배 정도 비싼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도, 이것도 각자 나름의 미가 있구나. 이런 사과가 훨씬 더 맛있고 좋은 것인데, 슈퍼마켓 사과만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구나, 그런 글을 썼거든요. 친구들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나누고 싶어서 그 시절에는 그런 글을 썼어요.
Q. 눈치 보고 살지 말아야지, 해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행동들이 있잖아요. 말이나 생각으로만 괜찮아, 괜찮아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괜찮은 환경을 체험하거나, 괜찮은 사람들을 경험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A: 저는 정말 운이 좋아서 경험할 수 있었어요.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첫걸음인 것 같아요. ‘아, 나도 괜찮아. 이렇게 생겨도 괜찮아’하고 혼자 되뇌는 건 스스로한테 거는 주문이잖아요. 그건 한계가 있어요.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도 보면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있기도 하잖아요. 나만 볼 게 아니라, 사회를 전체로 넓혀서 보고, 스스로의 위치를 넓게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좀 튀어서 잘 안 입는 옷도 여행 가면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발상의 전환이 있으면 좋겠어요.
Q. 이 곳에서의 맥락을 가지고, 넓은 시야에서 보기 - 그런 관점으로 코리아 엑스포제에서도 일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코리아 엑스포제에서는 어떤 기사를 쓰시나요?
A: 코리아 엑스포제는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영문 미디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한국에서 자라면서 한국 사회를 삶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 한국 사회를 한 발짝 물러나서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미디어거든요. 외신 같은 경우 한국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기자가 통역사를 데리고 취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한정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갈증이 있었기 때문에 코리아 엑스포제가 처음 시작됐고, 일하면서 저도 많이 배워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싶은 것들을 취재하면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저 스스로도 간지러운 부분을 긁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코리아 엑스포제가 궁금한 분은 여기로: https://www.facebook.com/KoreaExpose)
Q. 지은 님이 특히 눈길이 가는 취재거리는 뭐예요?
A: 우리는 각자 모두만의 이야기가 있다. 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필터로 보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요.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저는 관심이 많아요. 작은 목소리를 찾아서 어떻게 하면 가깝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Q. 누구나 스스로의 기준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있잖아요. 지은 님 삶에서의 큰 목표는 뭐예요? 인생의 슬로건이랄까!
A: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는 삶이요.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집안 환경에서 자랐어요. 저녁 먹으면서 대화하고.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게 저에게 일부가 되어서 가끔은 생각이 많아서 힘들 때도 있는데. 생각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나한테 있는 것, 없는 것, 있을 것 이런 것들을 치열하게 생각하는 삶이 저한테는 의미 있어요. 제 친구들이 맨날 놀려요. 제가 제가 맨날 “왜"라는 말을 달고 산다는 거예요? 당연한 것도 “왜?”라고 던지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웃음)
Q. 코리아 엑스포제가 메디아티 투자를 받으면서 공공그라운드에 오게 된 거죠? 공공그라운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A: 저희가 원래 지하에 있었잖아요. 천장도 까져있는 지하에서 일하게 되니까 ‘와 진짜 스타트업 같다' 이러면서 팀원들이 다 좋아했어요. 작년 12월에 4층으로 올라왔는데, 그땐 팀도 커지고, 각자만의 책상이 생겼어요. 저한테는 첫 직장인데 점점 나아져가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어요. 저는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소셜라이징 하는 게 아직 어려워요. 그런데 공공그라운드 분들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셔서 고마웠어요. 한국에도 이런 사람들과 공간이 있구나 놀랍고 행복했어요. 여기 와보니 저보다 훨씬 열려있는 사람이 있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세이프 스페이스(safe space)라고 하잖아요. 심정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 달라도 서로 불편해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는 확신이 있는 공간.
Q.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A: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커서 영어 기사를 많이 찾아봐요. 뉴욕타임스 같은 거요. 책도 열심히 읽으려고 하고, 한국 밖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으러 다녀요. 제가 한국에 아직까지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인데, 그럴 때는 카메라를 들고 많이 돌아다녀요. 제가 SNS를 하지 않는데, 인스타 같은 곳에 사진을 올리면서 정리도 하고 큐레이팅도 하면 좋지 않을까 고민 중입니다. 자전거 타는 거 정말 좋아해서, 비오는 날이 아니면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고요! 또 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해요.
Q. 추천해줄 만한 다큐가 있나요?
A: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블 지니어스>라는 다큐요. 2003년도 미국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피자 배달원이 자기는 인질이고 자기 몸에 시한폭탄이 달려있다면서, 은행강도처럼 돈을 내놓으라고 해요. 은행에 경찰이 출동해서 그 사람을 둘러싸고 보니 진짜 시한폭탄을 두르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대치하다 30분 있다가 폭탄이 터져서 피자 배달원이 죽어요. 근데 그게 시작이에요! 에피소드가 네 개 정도 되는 네 시간 정도 있는 다큐멘터리인데, 갈수록 정말 흥미로워요. 가끔 너무 길다 싶은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이건 더 길었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은 다큐에요. 이 밖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루는, 예를 들어 낙태죄라든지 성폭력 범죄에 관련한 다큐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Q. 흥미롭네요! 꼭 찾아볼게요. 혹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뭘까요?
A: 콤부차라고 아세요?(웃음) 제가 건강한 거 되게 좋아해요. 콤부차는 발효 음료인데요. 이게 사실 하나 만들어놓으면 무한정 먹을 수 있거든요. 한국에서 만들 수 있더라고요. 제가 만들어서 무한정 마시고 싶어서 재료도 사뒀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올해 안에 꼭 이걸 만들려고요.
Q. 마지막으로 지은 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지은 님처럼 영어를 잘하는 방법이 있나요?(웃음)
A: 어렵지만,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웃음)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거든요. 그 언어로 사고해요. 그 언어로 생각을 굴리는 거예요.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그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반복하는? 그렇게 한 번씩 더 생각하는 게 영어로 사고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그런데 정말 그게 답이에요. 영어학원 다니는 건 그 순간만이잖아요. 남이랑 대화하지 않을 때도 그 언어로 머리를 써야 해요.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옛날에 스페인에서도 머물다 보니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스페인어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딱 시간을 내서 앉아있지 않아도 공부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네... 한번 열심히 머리에 굴려볼게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