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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그라운드 Dec 03. 2018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  

C Program 엄윤미 대표님

공공일호 4층은 코워킹 스페이스입니다. 붉은 색 벽돌이 둘러진 넓찍한 사무실 안에 파티션 없이 다양한 회사들이 모여서 일하는 공간입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를 비롯, 메디아티가 투자하는 다양한 미디어 스타트업과 1인 기업 등 다양한 유형의 조직이 모여 일하고 있습니다. 공공일호에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공공일호 인터뷰]에서 전해드립니다. 무엇보다 이 곳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요즘의 관심사,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공공일호 3층에 위치한 C Program의 러닝랩은 입구부터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마치 작은 서점에 온 것처럼 큐레이션 된 책들이 서가에 있고, 한쪽에는 대화를 나눌수 있는 테이블이 있는데 ‘생각하는 의자' ‘뜻밖의 대화' ‘실험의 지도' 등 흥미를 끄는 제목이 붙여져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함께 3층 공간을 쓰고 있는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것들, 결과물도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온더레코드는 다양하게 벌어지는 교육 실험과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저는 러닝랩의 매니저 혜지님, 키님을 알고 나서 C Program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 곳은 어떻게 실험하고, 어떻게 기록해나가는 걸까? C Program 엄윤미 대표님을 만나 직접 여쭤봤습니다. 최근 ‘언유주얼 페스티벌’에서 소셜 섹터에서 일하는 것에 관해 연사로 참여하기도 한 엄윤미 대표님과  C Program의 일하기, 그리고 커리어 전환의 일하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의 영역을 정하고, 팀을 만드는 일



Q: 안녕하세요. 엄윤미 대표님. 저는 공공그라운드 콘텐츠 매니저 여름입니다. 우선, C Program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A: C Program은 2014년에 세워진, <실험에 투자하는> 펀드에요. 다음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기금을 다른 방식으로 투자해 보자는 의도로 시작했어요. 두 개의 펀드를 운영하는데, 플레이 펀드는 어린이들이 환대받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지속시키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 러닝 펀드는 새로운 배움의 실험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공공그라운드에 입주한 온더레코드는 러닝 펀드에서 운영합니다.


 온더레코드는 이제까지 해 온 실험을 아카이브하고, 저희와, 저희가 투자한 파트너들의 안목으로 큐레이션한 책이 있는 도서관이자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온더레코드는 서가만큼 중요한 것이 테이블이에요. 커다란 일들도 작은 작당에서 시작되니까요.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고 싶은 선생님, 부모님, 학생들, 누구나 모여서 얘기할 테이블은 편하게 쓰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온더 레코드가 실험을 기록하고 그것을 공공에 열어주는 공간이라면, 그 옆의 온에어 공간은 저희가 생각하는 최신의 교육실험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곳입니다. 지금 온에어에 입주한 거꾸로 캠퍼스가 그런 곳이죠. 


Q: 굉장히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C Program의 많은 일중에서 윤미님은 어떤 일을 맡고 있나요?


A: 플레이 펀드와 러닝 펀드는 각각 프로젝트 매니저인 신혜미님과 한성은님이, 컨텐츠를 만드는 일은 김정민님과 러닝랩의 황혜지, 문숙희님이, 경영지원은 박진희님이 맡고 있어요. 제가 한 일은 우리가 하는 일의 영역을 정하고, 이 팀을 만들어 온 일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누가 매니저고 대표고 할 여력도 없는 두 세명의 작은 회사였어요. 현장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지켜보고, 파트너들과 미팅하는 대부분의 시간도 함께 했어요. 근데 어느 지점부터는 우리가 하는 일이 조금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조금 떨어져서 팀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하고, 팀을 만들고 팀을 지켜보는 게 저의 중요한 일이 됐고요. 두번째는 각자가 보고 있는 영역에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으니까 전체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 세 번째로는, 각자 하시는 일 말고 남는 일을 제가 해야죠. (웃음) 




Q: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새로운 실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처음 C Program에 합류했을 때 기억 나세요? 초기에 어떻게 일을 꾸려가셨는지 궁금했어요.


A: 처음 이 일을 해보겠다고 했을 땐, 주제도 없고 실험이란 키워드도 없었어요. 자원이 모일 거라는 것만 결정되어 있었어요. 그 자원을 모아 주신 분들이 모두 창업을 해서 회사를 키워 내신 리더들인데, 그분들을 뵙고 굉장히 새로웠어요. 이 분들하고 이사회에서 함께 일하는 기회는 귀한 기회일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부터 다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해야지, 했어요.(웃음) 


  제가 이전의 경험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답이 없어 보이는 커다란 질문을 받았을 때, 그걸 어떻게든 잘라서 생각하고 풀어가는 방법이에요. 컨설팅 회사에 다녔다고 하면 보고서를 쓰고 분석을 할 줄 알 거라고만 생각하지만, 제가 컨설팅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모든 문제가 하나의 커다란 질문으로 시작한다는 점이었어요. 문제를 정의하고, 큰 질문을 일단 잘라보자. 차근차근 잘라서 하나씩 풀어 가면서 언제 누구와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 그렇게 계속 연습해왔던 게 의외로 도움이 됐어요.


  그렇게 이사회를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서 하나씩 정할 수 있었는데, 그때 감사했던 게 이사님들께도 제가 낯선 사람이잖아요. 처음엔 분명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을 텐데, 일단 믿어주시는 게 감사했어요. 첫번째 투자할 프로젝트들을  제안했을 때, 우선은 호의적으로 다 해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라면 이렇게 이 일을 처음 해 보는 사람한테 알아서 해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C Program과 공공일호의 실험





Q: 공공일호도 실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온더레코드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온더레코드 입장에서는 공공일호 공간에서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A: 공공일호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았으면, 거꾸로 캠퍼스 교실이나 온더레코드의 오프라인 공간을 이렇게 시내 한가운데에 전대하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공간이 있다면 이런 걸 해봐야지, 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공공일호에 공간이 생겨서 어떻게 해볼까 고민했기 때문에, 온더레코드와 온에어는 공공일호가 촉발시켜준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요. 


  막상 들어오니 일단 거꾸로캠퍼스가 안정됐고요. 학생들 입장에서도 유서깊은 건물에서 생활하는 게 의미가 큰 것 같아요. 거꾸로 캠퍼스는 주말에도 선생님이 모여 캠프를 자주 여는데, 그때 접근성도 너무 좋고요. 온더레코드도 기획할 때 이상으로 의미있는 공간이 됐어요. 예전에는 특별히 미팅을 잡지 않으면 저희를 찾아오기 어렵고, 저희도 누군가 만날 때 조심스러운 게 있었는데, 공공의 공간이 생기고 나니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Q: 윤미님은 다양한 실험을 지켜보셨을 텐데요. 공공그라운드가 의미있는 공간을 매입해 진행하는 공간 실험은 어떻게 보세요?


A: 공간부터 덜컥 만들고 시작하는 실험은 위험하다고들 하잖아요. 컨텐츠랑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에 저도 공감하는데, 반대로 콘텐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안정적인 공간을 찾는게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월세 뿐 아니라 집주인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점이 공간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기도 해요. 저희도 거꾸로 캠퍼스도 비영리로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곳에 과감하게 입주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 건물주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에요.  


  입주를 결정할 때 선생님들이 해주셨던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어차피 월세를 내야 하는데, 우리의 돈이 실험에 기여한다면 저희도 보람있겠습니다.’라고 하셨거든요. C Program이 하려는 학교든 미술관이든 좋은 입지에 들어가고 싶지만, 시장의 논리에서는 큰 돈을 내는 쪽에 손을 내밀잖아요. 그런데 먼저 C Program에 손을 내밀어주고 입주할래?라고 묻는 공공그라운드가 있다는 건 굉장히 든든한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공공그라운드 실험이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Q: 이제 2018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C Program의 가장 가까운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지난 4년 동안 30-40개 정도 진행했던 투자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에요. 올해는 공격적으로 해오던 투자를 멈추고, 투자한 프로젝트들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했어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연말에 이사회를 거쳐 내년에는 시즌 2를 시작해보려는데, 그 시작을 잘하는 게 목표입니다. 


  다음 목표는, 적어도 몇 개의 프로젝트는 ‘모델을 찾았다’ 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험에 투자할 때 목표로 하는 것은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운영해 갈 모델을 만드는 단계에 이르는 것인데, 그 단계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거든요.  C Program 이라는 자본이 빠져나갔을 때도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그게 반드시 매출을 통해서만 담보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상 비영리의 형태여야 한다면, 좋은 스토리텔링을 통한 모금이든 크라우드 펀딩이든, 비영리를 위한 자원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프로젝트가 계속 갈 수 있겠구나, 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Q: 시즌 1 기간 동안 여러가지 실험을 했는데, 그 실험을 정리하는 제목을 붙인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A: “부지런히 해보았다.”(웃음) 




새로운 일을 하기 앞서, 나는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Q: 지난 ‘언유주얼 페스티벌’ 세션에서 ‘언유주얼 커리어’ 라는 주제로 이야기도 하셨잖아요. 윤미님의 커리어에서도 C Program은 큰 전환인 셈인데요. 전환의 차원에서 어떻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한 회사가 더 좋은 회사가 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꽤 오래 됐어요. 저는 초반부터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제가 하는 일의 방식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긴 했는데, 임팩트 투자라든가, 한상엽 대표님의 ‘넥스터스’, 아름다운 가게가 시작되는 일들이 흥미로웠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저런 영역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어요. 관련 책을 읽고, 회사에서 프로보노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손을 들고, 그 정도였지요. 


  그 무렵 몇 분과 같이 여성기업가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 그때 만나는 분들이 너무 새로웠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기가 만드는 사람들이었거든요. 2013년만 해도 지금처럼 창업이 붐이었던 시기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너무 신선했고, 그때 새로운 선택지가 제 머릿속에 생긴거죠. 제가 하고 싶었던 사업은 저처럼 전환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을 위한 부트캠프를 만드는 거였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역량도 있지만, 일상이 바빠 고민을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자극을 주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사표를 내고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 우연히 C Program에 기금을 모아 주신 분들이 대표를 찾고 계셨고, 그렇게 전환을 하게 된거죠. 


  이전에는 너무 우연한 전환이라 누군가에게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일을 하고 보니까 제가 읽었던 책들, 프로보노, 자원봉사 하면서 만났던 분들이 다 여기서 동료가 됐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보면 전환 자체는 우연하고 그 순간 별들이 늘어서서 도와준 기분이지만, 그 전에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해왔던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모여서 전환을 이룬 것 같아요. 


Q: 주변에도 실제로 새로운 커리어 전환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는데요. 계속 해오던 일이 있는데, 다른 영역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A: 내가 뭘 할줄 아는 사람이고,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제 20대 시절에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게 유행이었던 시기가 있었는데(웃음) 꾸역꾸역 일을 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디에 관심있는지 촉을 세우는 일 못지 않게 내가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할 때 내놓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돼서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 중에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분이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커리어 전환을 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요.”라고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꼭 10년씩 일해야 해,는 아니지만 이왕 뭔가가 관심있어서 그 조직에 들어가셨으면 거기서 이런 경험을 쌓았어,라고 할 수 있게요. 


  20대에 페이퍼라는 잡지를 좋아했어요. 황경신 편집장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저는 언젠가 이런 것도 하고 싶고 저런 것도 하고 싶은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을 말했는데 그분이 해주신 말씀이 너무 의외였어요! 페이퍼 편집장이시고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저한테도 ‘원하는 일을 하세요!’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같은 일을 3년을 해보기 전에는 안 보이는 것이 있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1,2년 일하신 것 같은데 3년을 쌓아보세요.’ 정말 3, 4년 후가 지나니까, 같은 회사에서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걸 저도 경험했거든요. 편집장님은 아마 기억 못 하겠지만(웃음) 전 감사하고 있어요. 


Q: 윤미님도 20대 때 그런 고민을 하셨다니!(웃음) 20대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어디서 일하지?’가 최대의 고민이었는데, 30대가 되니까 ‘어떻게 일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일을 하다보면 시기 마다 다른 고민에 부딪히는구나,라고 최근에 생각한 적이 있어요. 윤미님은 20대, 30대 시절에 일에 관해 어떤 고민을 하셨어요?


A: 20대 후반에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커리어와 내 삶에 대한 큰 결정들이 너무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었어요. 결혼도 해야하고, 유학도 가고 싶은데, 회사에서는 다른 기회가 있고. 20대 후반에 가장 머리가 복잡했어요. 저희 남편이 공대생 출신이라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닌데 가끔 중요한 이야기를 해줄 때가 있거든요. 그때 그러더라고요. “뭐라도 해. 고민만 하지 말고. 유학갈 수 있는 점수는 있어? 만들어놓고 고민해. 하나하나 풀어.” 그래서 공부를 해서 유학갈 준비부터 했어요.


 그 당시 저한테 주어진 선택지는 결혼을 하고 서울에 있거나, 남편과 함께 유학을 가거나, 혹은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유학을 가거나 이 정도의 옵션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시하는 선택지가 다 마음에 안들었어요.(웃음) 결혼을 하고 한달 만에 혼자 유학을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아.(웃음) 한국에서 일에 욕심이 있고, 결혼도 하고 싶은 여자로서, 기존에 사람들이 ‘이래야 돼'라고 제시하는 선택지에서는 만족스러운 걸 고르기 힘들구나, 그때 깨닫게 됐어요. 그렇게 20대 때는 꾸역꾸역 일을 했고, 30대 때는 밸런스를 위해 고민을 했죠. 진짜 내가 가져가고 싶은 커리어가 뭘까? 일과 아이와의 시간을 어떻게 쓸까? 


Q: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세요?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에 관해 알려주세요.  


A: 대부분의 관심사가 일과 관련된 것이 많아서요. 요즘은 일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특히 여성의 일에 관련해서. 자기 기준이 높은 여성 후배들 생각도 많이 하고요. 열살이 된 딸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 긴 시간,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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