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활짝 핀 홍매화가 내리던 봄이었어요. 블루메미술관에 관람객으로 <초록엄지-일의 즐거움>이라는 전시를 보러왔어요. 당시 8살, 6살이었던 아이들과 블루밍메도우(미술관 중정)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놀았어요. 정원 앞에 세미나실이 있고 그 안에서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었어요.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며 가끔씩 세미나실을 들여다보았어요. 창으로 이루어진 문에 햇살이 반사돼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저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따뜻한 햇살 속에서 상대적으로 어둡게 자리 잡은 공간이 궁금했어요.
전시해설사로 일하게 되면서 이제는 정원에서 세미나실을 바라보는 일보다 세미나실에서 정원을 볼 때가 많아졌어요. 고작 몇 걸음 차이일 뿐인데도 겉으로 보는 미술관과 안에서 보는 깊숙한 미술관은 다른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반전의 매력이랄까요. 관람객으로 전시를 보러 다닐 때는 미술관이 마냥 정적인 곳인 줄 알았어요. 소리 없이 날갯짓하며 날아다니는 나비 같은 인상이었어요. 새하얀 벽에 보기 좋게 걸려 있는 작품처럼 이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지요.
세미나실 문턱을 넘고 보니 웬일인지 이곳에는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 있어요. 직원들은 서류 뭉치를 뒤적이느라 바쁘고요. 서류에 빼곡히 누워있는 글자들은 빠뜨리지 말아야 하는 항목들을 알려줘요. 해당 사업의 목적과 내용, 예산, 기대효과, 홍보방안 등 세세한 항목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은 시간을 달리며 회의를 해요. 이제는 정원이 다르게 다가와요.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직원들은 수십 페이지가 넘는 서류와 씨름하느라 뭉친 어깨와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정원을 본다는 것을요.
미술관이 만드는 두툼한 서류는 집의 도면을 설계하는 것과 같아요. 한 해의 미술관 살림을 짜기 위해서는 매년 연말 즈음 이듬해에 어떤 전시와 교육, 서비스를 할지 기획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는지 알려야 해요.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그 더미 속에서 핵심이 보이고 신기하게도 하얀 종이 위에 미술관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각종 지원서와 신청서, 중간보고서, 최종보고서, 포트폴리오 작성 등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일 뒤에는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담은 서류들이 버티고 있지요.
올해는 새롭게 온라인 콘텐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집콕생활이 이어지면서 미술관이 더욱 멀리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미술관에 오지 않아도 이곳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기로 했지요. 우리의 진심과 의지를 <정원문화를 해석하는 블루메미술관의 온택트(on-tact) 프로젝트>라는 서류에 꾹꾹 눌러 담았어요.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구상하려니 익숙한 땅 위가 아니라 물속을 허우적거리며 걷는 것 같았어요. 온라인 콘텐츠의 핵심은 결국 미술관이 오프라인과 대면으로 보여주었던 감성을 어디서든 보여주는 것이 되겠지요.
실장님의 진두지휘로 우리가 만든 <온택트 프로젝트> 서류들이 행진을 시작했어요. 설계한 대로 하나씩 모습을 갖추는 콘텐츠들. 블루메미술관이 새롭게 짓고 있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