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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집에서 집으로

“멸치가 짜지도 않고 맛있어요!”


매일 점심시간이면 미술관 직원들은 세미나실에 모여요. 도란도란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꺼내 먹어요. 실장님이 만든 멸치볶음을 맛보던 한 선생님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해요. “쉬워요. 진짜 금방 할 수 있는 반찬이잖아요. 기름에 멸치를 볶다가 미향과 다진 마늘을 넣고 자작하게 졸여요. 그리고 아몬드와 올리고당!” 실장님이 딱딱하지 않게 멸치를 볶는 비법을 전수해줘요. 



도시락 통에 소담히 놓인 반찬들을 살펴보면 같은 이름이라고 해도 맛과 모양새가 달라요. 어떤 직원은 고추장에 강황가루를 버무려 매콤한 멸치볶음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잣을 넣어 잔멸치를 바삭하게 볶기도 해요. 취향과 손맛에 따라 ‘단짠’의 범위와 깊이가 달라져요. 반찬의 가짓수는 요리하는 사람 수만큼 많을 거라는 걸 도시락을 먹으며 생각해요. 


세미나실에서 걸음을 옮겨 전시장으로 내려와 볼까요? 이번에는 집을 통해 직원들의 또 다른 일상을 엿보려고 해요. 지금 전시장에는 오늘의 집과 내일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집에서 집으로>전시가 진행 중이에요. 현대미술작가와 건축가가 미술관 안에 설치해 놓은 6개의 작품들은 형태나 주변 환경에 따라 혹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 따라 변주되는 집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유연한 집에서 매일이 쌓이는 집으로, 고요한 집에서 창문이 열려 있는 집으로. 집에서 집으로 이동하듯 작품을 둘러보다 보면 관객이 직접 만들어 보는 '최소한의 나다운 집'에 다다르게 돼요. 이곳에 선 관객들은 예술작품에서 느꼈던 집의 정서를 떠올리며 여러 사물들이 놓인 선반에서 가장 나다운 세 가지 물건을 고를 수 있어요. 같은 물건을 집어 든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집과 삶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를 거예요.


미술관 직원들은 어떤 사물들을 고를까요? 집에서 가져온 반찬만큼 직원들이 고르는 사물들도 제각각 다른 집을 보여주겠지요. 먼저 사진으로 순간을 기록하는 한 선생님은 주저 없이 카메라를 들었어요. 이어 턴테이블과 향초를 골랐어요. 손에 쥔 사물들을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는 사진을 찍는 사람에서 찍히는 사람이 된 상황이 어색한지 두 발을 꼿꼿하게 세워 앉았어요. 그간의 경험상 그는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이를 위해 미동 없는 피사체가 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카메라와 음악플레이어는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사물이에요. 매일 함께하기도 하고 만약 이게 없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향초는 지금 제 관심사예요. 나든 집안이든 공간을 채우는 좋은 향을 찾고 있어요.” 카메라를 메고 음악을 들으며 즐겁게 향초를 고르는 작은 어깨를 떠올려 봐요. 언젠가 그의 곁에 섰을 때 그를 보여주고 보호하는 집과 같은 향이 나리라 생각하면서요.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인턴 디자이너 도현 씨가 오랜만에 미술관에 들렀어요. 고운 분홍치마를 입은 그는 조용히 필기구와 찻잔세트, 인형을 골랐어요. “저에게 집은 모든 기능을 하는 곳이에요. 오피스이자 카페, 또 영화관이기도 해요.”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그리거나 메모하고 쉴 때는 차를 마시며 인형의 포근함에 잠시 기대기도 하는 집. 그에게 집은 정해져 있는 덩어리가 아니라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찾아 리듬감 있게 흘러가는 과정이지 않을까요.



며칠 후 관객참여공간에 선 학예실장님은 자신을 찾지 않아서 마음이 가는 식물을 위한 물조리개와 음악으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턴테이블을 두고 끝까지 고심했어요. 그러다 최소한의 나다운 집안에 탁상 조명과 커피 그리고 베개를 놓았어요. “집은 가족들과 함께 하지만 순간이라도 혼자일 수 있는 장치가 늘 필요해요. 차나 커피의 향, 초나 램프를 켜면 빛이 비추는 그 시간과 공간에서는 혼자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집에서 내 삶의 중심을 잡아보게 되는 혼자인 순간. 일과 사람들이 파도처럼 덮쳐오는 낮의 시간을 지나 모두가 잠든 고요한 집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해방감을 느낄 때가 있지요. “가장 중요한 건 잠의 시간. 잠을 허락하는 밤의 집이 중요해요. 타인과 현실에서 벗어나 혼자 말도 안 되는 꿈을 꿀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거든요.” 아늑한 빛과 향으로 내려앉은 밤의 시공간에는 걱정 없이 편안함만 놓이기를 바라게 돼요.



지금 집을 한 번 둘러보세요. 나를 감싸고 있는 오늘의 집은 어떤 말을 들려주나요? 이불 안에서, 식탁 곁에서, 소파 위 일상에서 나는 어떤 내일을 꿈꾸고 있나요? 세 가지 물건들로 들여다보는 N개의 나다운 집과 삶. 앞으로 교육팀장님, 에듀케이터 선생님, 새로 들어온 인턴까지 또 다른 미술관 직원들이 보여주는 맛깔난 집 이야기가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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