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너를 처음 만난 날, 세상의 색깔이 바뀌었다

by 다시 자라는 어른

1. 무채색의 도시, 건조한 일상

나의 세상은 오랫동안 무채색이었다. 회색빛 콘크리트 숲으로 출근하고, 형광등 아래에서 서류 더미와 씨름하며, 해가 지면 가로등 불빛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궤도. 그 안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소설 속 수식어나 타인의 SNS 속 필터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솔직히 말하자면 기쁨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누군가의 우주가 될 자격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초음파 사진 속 흑백의 점은 여전히 낯설었고, 아내의 배가 불러오는 과정조차 내게는 현실감이 부족한 정지 화면 같았다.



2. 고요를 깨는 첫 번째 파동

병원의 복도는 차가웠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시간, 나는 처음으로 신의 존재를 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간호사의 손에 들린 작은 뭉치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아빠예요."


그 순간, 병원의 소음이 일시에 소거되었다. 내 품으로 건네진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동시에 믿기지 않을 만큼 묵직했다. 붉다 못해 투명한 피부, 쉼 없이 꼼지락거리는 아주 작은 손가락. 그리고 이내 고요를 깨고 터져 나온 아이의 첫 울음소리. 그것은 정체되어 있던 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파동이었다.



3. 망막에 새겨진 낯선 빛깔들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기적처럼 세상의 명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들이 눈앞으로 쏟아졌다.


아이의 뺨에서 감도는 분홍빛은 단순히 혈색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고, 배냇저고리의 하얀색은 세상 그 어떤 눈(雪)보다 눈부셨다. 창밖으로 비쳐드는 오후의 햇살은 이제껏 내가 알던 누런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의 속눈썹 끝에 매달려 반짝이는 금색 입자였고, 세상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축복의 색이었다.

무채색이었던 나의 망막에 '너'라는 존재가 닿자, 빛은 굴절되고 분산되어 수만 가지의 감정으로 분화되었다. 노란색은 경이로움으로, 초록색은 평온함으로, 파란색은 무한한 책임감으로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



4. 새로운 계절의 시작

아이는 나의 품에서 비로소 고요해졌다. 작은 숨소리가 내 가슴팍을 일정하게 두드렸다. 그 박자에 맞춰 나의 심장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의 계절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그저 '존재'하고 있었지만, 너를 만난 지금의 나는 비로소 '살아가기' 시작했다. 너는 나의 무채색 일상에 쏟아진 가장 선명한 물감이었다.



"안녕, 나의 작은 우주."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푸르렀다.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진짜 세상의 색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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