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인간, 이야기의 귀환- 구술, 1인미디어&..

리터러시 아카이브 #7

by 해성 김수경

프롤로그


AI 시대에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잘 읽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읽기가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면,

말하기와 이야기는 인간을 서로 연결한다.


1. 인간은 왜 ‘이야기하는 존재’인가


인간은 본래 이야기하는 존재다.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인간은

경험을 말로 전했고,

삶의 지혜를 이야기로 남겼으며,

공동체는 이야기를 통해 유지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이야기꾼」에서

이야기의 본질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경험(Experience)

전통(Tradition)

구술(Orality)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건네는 행위이며,

듣는 사람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경험이다.


그래서 벤야민은

고독한 개인의 내면에서 탄생하는 소설가

공동체의 경험을 전하는 이야기꾼을 대비시킨다.


“책은 실제적 언어의 죽음이다.”

— 발터 벤야민, 「이야기꾼」


그는 대서사적 이야기야말로

책이라는 형식에서 해방될 때

본래의 힘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2. 말하기는 쓰기와 다른 표현이다


우리는 흔히

쓰기와 말하기를 같은 표현으로 묶지만,

두 표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쓰기는 사유의 응축이다.

말하기는 관계의 생성이다.


쓰기가 생각을 구조화한다면,

말하기는 생각을 타인에게 건넨다.


말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나오고,

상대의 반응 속에서 수정되며,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그래서 말하기에는

글쓰기에는 없는 온기와 즉흥성, 일상성이 있다.


3. 1인 미디어는 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는가


숏폼, 유튜브, 팟캐스트, 라이브 방송.

이 모든 것은 1인 미디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은

숏폼과 유튜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선정성

자극성

얕은 정보

사고의 단순화


그러나 이것만으로

1인 미디어의 폭발적 확산을 설명할 수는 없다.


1인 미디어가 충족시키는 인간의 욕구

1인 미디어는

인간의 다면적 욕구를 동시에 건드린다.


경험의 대리 만족

→ 내가 겪지 못한 삶을 대신 경험한다.

소속감과 연대감

→ “나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한다.

일상의 공유

→ 위대한 이야기보다 사소한 이야기에 끌린다.

관계의 환상

→ ‘혼자 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


유튜버는

고독한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공동체의 중심 인물, 때로는 영웅이 된다.


이는 벤야민이 말한

이야기꾼의 귀환을

디지털 네트워크가 대리하고 있는 장면이다.


4. 네트워크 시대의 이야기꾼들


오늘날의 유튜버는

현대적 이야기꾼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일상의 감정을 공유하며

구독자는 그 이야기에 반응하고

댓글과 후원으로 다시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는

더 이상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상호작용적 순환 구조를 갖는다.


물론 이 과정은

왜곡과 과장, 상업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인간이

이야기와 관계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날 소설 읽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은

단순히 ‘독서량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OTT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으로

이야기는 더 빠르고, 더 강렬한 이미지와 소리로 소비된다.

영화관은 줄어들고, 서사는 영상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이야기를 ‘읽는 존재’에서 ‘보는 존재’로 옮겨가는 이 변화는

인간의 사유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이야기의 소멸이 아니라,

이야기 방식의 이동에 가깝다.


5. 말하기는 자기 이해의 통로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이해는 타인을 아는 데서 온다.”

(Self-knowledge comes from knowing other men.)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만의 사유로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말하고,

들려주고,

반응을 받는 과정에서

나는 나를 다시 알게 된다.

그래서 말하기는

표현 이전에 자기 이해의 과정이다.


6. AI 시대, 말하기 리터러시는 무엇이 다른가


AI는 글을 써줄 수 있다.

이미지도, 영상도 만들어준다.

그러나 AI는

경험을 살지 않는다.

목소리를 갖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


AI 시대의 말하기 리터러시는

단순한 발화 능력이 아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왜 말하는가

누구에게 말하는가

이 말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말하기는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된다.


에필로그

- 이야기하는 인간으로 남기 위하여


읽기는 인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말하기는 인간을 서로 연결한다.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과제는

더 빨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인간답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AI가 쓰는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리터러시는 결국

읽고, 말하고, 듣는 인간의 이야기다.



#이야기꾼#발터 벤야민#구술문화#문자문화#1인미디어#유튜브와 인문학



다음 글 예고

리터러시 아카이브 #8

독서치료 — 읽고 말하며 삶을 다시 구성하는 힘

읽기는 사유의 시작이고,

말하기는 치유의 통로다.

삶 속에서 리터러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AI 시대, 융합형 리터러시로 인간과 기계의 화음을 그려가는 리터러시 연구자”

해성 김수경(海星 金水卿)/리터러시아 수경(literasia Sookyoung, Kim)

해성(海星)은 마리스텔라(maiesrella)라는 가톨릭본명을 한자로 쓴 것으로,

마리스텔라가 바다의 별이라는 의미처럼

별처럼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는 존재를 지향하고자 한다.

‘리터러시아(Literasia)는 Literacy 와 Asia 의 결합어로,

지식의 민주화와 배움의 권리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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